거리에 나온 영화인들, "스크린쿼터 지켜야!"

'영화계 문제 국민들과 함께 풀고 싶다' 절절한 외침

8일 영화인들이 광화문 매서운 칼바람 속에 '문화침략 저지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잘 알려진 영화배우를 비롯해, 영화 제작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 영화학과 대학생들 등 7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은 집회 이후 명동성당까지 거리 행진을 하며 '스크린 쿼터'가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많은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집회 내내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찍는 개인들이 수도 없었고, 배우의 이름이 호명 될 때마다 간간히 비명 아닌 비명도 들렸으나 집회 내내 참가자들을 비롯한 주변인들도 엄숙함을 잊지 않았다.

집회 내내 양윤모 영화평론가는 항의의 표시로 FTA가 씌여진 쇠창살 감옥 속에서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한편 다수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만을 주요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며, 배우들의 이름을 외치는 모션을 주문해 찍거나 디카 사진 찍는 장면을 연출해 줄 것을 요구해 참가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권회승 기자

  양윤모 평론가가 FTA 감옥에 앉아 항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권회승 기자

스크린쿼터, 한-미FTA의 제물이었다.

이날 집회는 양기환 영화인대책위 대변인의 사회로 진행됐다. 양기환 대변인은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을 두고 볼 수 없어 영화인들이 나섰다. 정권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며 "오늘은 영화인들이 중심일지라도 17일에는 모든 시민단체들과 함께 영화인들도 그 길에 설 것"이라며 향후 투쟁이 계속될 것을 예고했다.

이후 안성기 공동대책위원장의 개회 선언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한편 안성기 공동대책위원장에게는 집회 내내 기자들의 질문 공세와 카메 인터뷰가 쇄도 해 집회 밖에서 따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영화인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연일 철야농성에 결합하고 있는 배우 정진영 씨의 경과 보고가 이어졌다. 지난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서부터 이어진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발표와 영화인들에게 통보됐던 과정과 그 과정을 겪은 영화인들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정진영 씨는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좋은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승리하는 싸움을 할 것"이라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민웅 성공회대학 NGO대학원 교수는 "자식들에게 줄 떡을 들고 고개를 넘는 어머니에게 호랑이는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라고 말하지만 그 떡 하나를 주기 시작하면 가진 떡 모두를 내 놓고도 자기 목숨도 내 놓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할 우리 정부는 떡 하나 정도가 아닌 가진 떡 전부를 내놓으며 진상하듯 호랑이를 섬기고 있다"며 전례동화에 빗대 한-미FTA를 설명했다.

이어 바통을 받은 최진욱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과 황철민 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이날 집회에 더욱 힘을 보탰다. 스크린쿼터가 '문화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는 제도'라는 비판에 대한 영화계의 시각과 논리가 이들의 시선과 입을 통해 전해 졌기 때문이다.

최진욱 위원장은 "진작에 농민,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어야 하는데 송구스럽다. 이제부터라도 적극 연대하겠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최진욱 위원장은 "스크린쿼터는 상업, 비상업 등 영화계의 내부 다양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내, 영화 정책의 문제이다. 오히려 영화 산업을 본다면, 정부 정책 부족의 문제이지 스크린쿼터와 연결성이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영화가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아직 영화스텝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경쟁력의 대답은 허구이다. 다양성을 키워내고 한국영화가 진정 경쟁성을 갖을 수 있게 영화계의 문제들을 국민들과 함께 풀고 싶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황철민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지난해 '프락치'라는 영화로 전세계인들을 만났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최근 외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들을 들며 한국인으로 '자부심이 든다'는 말을 전했다. 문화를 지켜야 우리의 자부심도, 우리의 정신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권회승 기자

연대 발언을 한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군사, 식량, 문화 모두를 팔아먹고 있는 이 나라, 정부가 주권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수입쌀이 식용으로 판매될 3월에 농민들이 대규모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고, "한-미FTA 반대 투쟁의 단일한 전선에 힘차게 연대하자"며 두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방송시장 개방이라는 또 다른 짐을 안고 있는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은 "스크린쿼터가 밀린다면 이제 더 이상 공영방송 체제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라며 "TV 방송, 라디오에 제한되어 있는 방송 쿼터제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무분별한 외국 문화와 방송들이 들어올 것을 경고했다. 또한 "자국의 문화와 다양성을 지키는 스크린쿼터와 방송 쿼터제가 사라질 마당에 집단 이기주의라 호도하며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국제적인 외교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표 연설을 한 노회찬 의원은 "거센파도를 막는 방파제를 배가 좀더 튼튼해 졌다고 해서 부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예를 들며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킬 바에는 현 정부의 임기를 축소시키자"라고 말해 참가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기도 했다.

이날 광화문 앞에서의 집회는 이병헌 ,이준기, 문근영 등 영화 배우들의 성명서 낭독 이후 전체 참가자들이 종로를 지나 명동성당으로 행진 한 후 마무리 됐다.

문화침략 저지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 결의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하려면 한국영화부터 죽이고 오라!”

이 오만한 미국의 요구에 노무현 정부는 무릎을 꿇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영화계를 괴롭혔던 정부의 92일 축소안과 연동제 제안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는가를 명명백백히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스크린쿼터가 한미FTA와 별개라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영화 죽이기를 즉각 중단하라!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이제 국제적인 모범이 되었다. 세계 영화시장은 미국 영화의 독과점 지배 때문에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 영화산업의 공세에 대항해 자국의 영화산업을 지켜내기 위해서 스크린쿼터와 같은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전세계 148개국의 지지를 받으며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이라는 성과를 끌어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엄청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시장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제거해야할 최우선 대상이다. 스크린쿼터를 제거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영화산업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미국과 정부는 50%를 상회하는 관객점유율을 근거로 한국영화가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를 줄여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미국영화 시장의 단 5%라도 점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시아 영화시장에서 미국영화와 경쟁하는가?

스크린쿼터를 바탕으로 오직 한국시장에서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이야기하려면 자동차, 휴대폰 등의 일반적인 상품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헐리우드 영화인 ‘킹콩’한편의 제작비 규모는 한국영화 전체의 1년 제작비와 대등하다. 영화 한편 한편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자본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자본 규모만이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산업이 수십년간 축적된 안정된 자본을 바탕으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을 쏟아내는 반면 한국영화산업의 자본은 지극히 불안정하다. 지난 10여년간 수많은 자본이 영화산업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길 반복하고 있다. 기술력과 산업 인프라를 고려하더라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앵무새처럼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미국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단지 한국시장내에서의 점유율만을 바라보며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당장 한국영화가 망하기야 하겠느냐는 근시안적인 주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향후 1, 2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화산업에 일정한 싸이클이 존재하듯 현재 가파른 성장국면에 놓인 한국영화 역시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할 때, 마지막 안전판이 되어야 할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면 무엇으로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헐리우드의 물량공세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우리 영화인들은 영화산업이 21세기 국가경제를 끌어갈 문화컨텐츠 산업의 동력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근시안적인 판단으로 미래 산업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정부의 우매한 정책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정부는 한미 FTA의 협상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정부는 한미 FTA가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 말하지만, 정부 추산에 의해도 확실한 부분은 우리 국민소득의 0.5%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마저 농업, 서비스업, 제조업이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한미 FTA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극소수 재벌 기업의 경영주들뿐이다. 2001년 미 국제무역위원회와 2004년 미 국제경제연구원은 자료를 통해 한미 FTA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밝힘으로써 우리 정부의 주장을 비웃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

우리는 한미FTA가 어째서 국익에 도움된다는 것인지, 그로인해 발생하게 될 문제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듣기를 원했다.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피해를 입게 될 산업에 대한 대안과 이해를 요청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관심은 오직 한미FTA의 체결, 그 자체뿐이다.

영화계에 제시한 ‘4000억 지원’역시 구체적인 대안의 마련과 그를 통한 예산의 책정이라는 상식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즉흥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로 야기될 한국영화 산업의 몰락은 4000억이 아니라 4조를 들여서도 복구할 수 없다. 정부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집단이기주의자’들 이라고 욕하기 전에 스스로의 근시안적 사고와 즉흥적인 정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재경부와 외통부의 친미관료들, 무능하고 소신없는 문화부, 자기들만의 대한민국을 위해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무한경쟁 아래 쓰러져 죽어가도 상관없다는 전경련, 지배집단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기만하는 숫자놀음에 여념이 없는 관변 연구소, 이 매국 논리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극소수 언론. 이들이 한국영화 말살이라는 미국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으며, 민족 최대의 명절을 하루 앞둔 기습발표, 악랄한 여론 조작을 일삼으며 기어이 이번만큼은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나선 듯하다. 이러한 친미세력의 가상한 노력에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수고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미국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은 엄청난 선물이라며 반기고 있다. 우리는 저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영화를 장악한 이후의 수순이 방송과 애니메이션, 대중음악과 같은 시청각 분야 전반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방송 진흥과 공공성을 위한 여러 문화정책과 대중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컨텐츠 진흥정책이 무너지고, 방송이 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의 지배아래 넘어가는 재앙이 현실이 된다면, 더 이상 우리말로 우리의 정서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참혹한 일제 식민지시대 위정자와 매국노에 의해 나라를 잃었던 고난 속에도 꿋꿋이 지켜온 문화이다. 반만년을 지켜온 정신과 얼을 자유무역과 호혜적인 통상협력의 허울을 쓴 문화침략 행위에 포기할 수 없다. 문화주권을 팔아먹으려는 친미사대세력에 호소한다. 대한민국의 혼과 얼을 팔아먹지 마라. 역사 앞에 죄를 짓지 마라.

우리는 오늘 한국영화와 문화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투쟁을 선포하며, 간곡히 호소한다.

노무현 정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을 철회하라! 더 이상 우리를 정권퇴진 투쟁의 험난한 길로 내몰지 마라. 그리고 재경부, 외통부, 문화부 장관은 현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노무현 정부는 부디 우리 영화와 문화를 팔아먹은 치욕스러운 정권으로 역사에 남지 말기를 엄중히 경고한다.

또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요구한다. 행정부의 반문화적 쿠데타를 더 이상 묵과하지 말고 국민의 뜻을 입법화하라! 의무 상영 일수를 영화진흥법에 명기하는 영화진흥법 개정이야말로, 미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정부를 돕고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우리는 오늘, 정부와 미국, 친미관료들과 극소수 언론의 여론조작이 힘을 잃어 가고, 한국의 영화를 지키고, 문화침략을 저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당한 투쟁이 국민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확신한다. 국제적인 연대의 메시지,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와 연대, 우리의 1인 시위에 호응하는 시민들을 통해 그것을 확인한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고 한국의 영화산업을 말살하고자 하는 미국과 한국의 참여정부, 관료집단 등은 국민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여세를 몰아 우리는 오늘, 우리의 이 투쟁을 전 국민의 투쟁으로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한다. 오는 2월 17일 광화문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및 한미 FTA 저지에 뜻을 함께하는 국민과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10년 전, 이곳 광화문을 다시 기억하고자 한다.
그날 이곳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영정을 자신의 손으로 들고, 거장들은 허옇게 센 머리카락을 잘라 바쳐, 그리고 한국 영화 죽이기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분노의 함성과 통한의 눈물로 스크린쿼터를 지켜냈고, 지금의 한국 영화의 영광을 만들었다.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때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온 영화인이 온몸을 다 던져서, 온날을 다 바쳐서 문화주권을 지켜내고, 스크린쿼터를 지켜내고, 한국 영화의 영광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한국 영화 만세!!!

2006년 2월 8일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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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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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영화

    [ 염 치 ]


    김규항 (씨네21 1999년 3월)


    알고 보면 이번 스크린쿼터 파동이란 골 때리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된 셈이다. 내막은 문화 의식이 결여된 한국 공무원들이 '공정 무역'이라는 채찍과 '5억 달러 투자'(외자 유치!)라는 당근으로 꼬드기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은근슬쩍 땅문서(스크린쿼터라는) 내주려다 소란이 난, '실화'보다는 '야담'에 가까운, 그런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싸웠냐 하면 '자신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다. 두 달이 넘게 계속된 영화인들의 싸움은 공무원들이 꼬리를 빼고 국회 결의안이 관철되고서야 일차 마무리되었다. 농성을 풀며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싸웠던들 국민들이 외면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민망한가.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자본'으로 해석하는 참신함을 보인 영화인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도왔던가.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길거리를 헤매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번도 사회적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과연 공정한가.


    이번 싸움을 통해 개발된 영화인들의 자기 논리가 전례 없이 정교함에도, 이번 싸움의 열기가 밥그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소하고 일상의 우연에 천착한다는 지성파 감독까지 연단에 오르는 이변이 생길 리 있었겠는가.('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나는 영화인들의 '경제 투쟁'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경제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지 않기를,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열정이 남의 밥그릇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울함과 고통을 이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재발견하여야 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싸움을 통해 지켜낸 스크린쿼터가 오로지 영화라는 업종에만 주어지는 소중한 혜택임을, 그들의 장사가 매우 특별한 장사임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이자 예술의 문제지만, 오히려 '염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 : 이 만큼 말하고도, 내 속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상식선'의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 바이오

    아무래도 요즘 참세상이 이상하다..
    대중들이 가면 참세상도 그냥 따라가는 건가?
    대중적인 운동만 하려면 굳이 참세상 할 필요가 없지 않나.

  • 스크린쿼터 문제가 영화인들의 반발로 다른 FTA의 문제는 제쳐두고 이슈가 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집회취재'라면 매우 잘~ 하시는 참세상에서 집회보도 하는 게 뭐 문제가 되냐 싶기도 하지만.
    이 집회 그냥 팩트만 전달하려 했다는 의도라해도 불필요한 기사지 싶습니다. 그것도 맨위에 떡하니 종일 떠 있는데....마지막에 유명배우 이름 거론하며 행진했다는 마무리 참 기가 찹니다. daum기사랑 똑 같군요.

  • 찌질이

    [그래서]

    김규항 2006.02.08 Wed

    "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는가?"

    물론 아니다.
    내 식구가 얄밉다고 남에게 넘길 수야..

    Posted by gyuhang at 08:09PM

  • 취래원

    양극화의 가장 우두머리에 있는 자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는 일이지 안티 아메니카,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의 의미나 알고 있는지... 작년 12월 농민들이 살이찢겨나가고 피가 터지도록 "살 협상 비준반대"를 외칠 때 코빼기 하나 비친 연애인이 있나... 그래고 문화주권이라는 명분에 동조해야 하는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