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도입하느니 차라리 인터넷을 없애라”

145개 인터넷언론사 및 인권사회단체 선거실명제 폐지 촉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월 31일 지방선거 관련 게시판 실명확인제도(선거실명제)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이 정면으로 반발하며,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전국 104개 인터넷 언론사와 31개 인권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선거실명제폐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선거운동 방지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선거 게시판 실명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와 디지털 시대를 거슬러 과거로 가자는 퇴행적 조치”라고 주장하며 선거실명제 폐지를 국회와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터넷언론사 관계자 및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이번 선거실명제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 침해를 침해함은 물론, 명의도용 문제와 그에 따라 제도적 실효성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은 익명성에 기반한 공간”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원석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은 “수십만 개의 인터넷 사이트들 중 몇 백 개를 골라내 실명인증을 받도록 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고 개탄하며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했다.

선용진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발언을 통해 인터넷 공간이 익명성에 기반한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인터넷 공간이 통제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을 그 특성으로,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네티즌들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밝혔다.

선용진 사무처장은 이어 “정부는 선거실명제를 통해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무시하고, 인터넷을 인터넷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느니 차라리 인터넷을 없애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민주노동당을 대표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지성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민주노동당의 경우 선거 때가 되면 ‘빨갱이 정당’이라며 흑색비방 선전에 시달리지만, 인터넷 실명제는 반대한다”며 “국가는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언론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실명제, 전면적 인터넷 실명제의 신호탄?

유영주 민중언론 참세상 편집국장은 “인터넷 실명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침해 등 여러 수준에서 문제제기 되어온 바 있고, 최근에는 무분별한 주민등록번호 이용으로 각종 명의도용과 개인정보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선거실명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번 선거실명제는 전면적인 인터넷 실명제 시행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며 “정부가 이번 선거실명제를 계속 추진한다면, 이에 맞서 불복종 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 네티즌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고 밝힌 박수영 시민의 신문 기자도 “선거실명제는 집회에 참가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 이름표를 달고 하라는 것과 같다”며 “현재는 인터넷언론사에만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이후에 선거실명제는 일반 블로그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박수영 기자는 이날 “선거실명제에 항의하는 뜻으로 블로거들이 연대해 인터넷언론사 기사에 트랙백을 거는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선거실명제, 국회의원들 국민들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 자임한 것”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국민들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함에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공대위는 공동성명서를 통해 “선거실명제가 시행되면 국민들은 자신이 올리는 글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사전에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인터넷 실명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들의 입과 귀를 봉쇄하는 그 어떤 정부의 정책보다도 위헌적인 조치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인증은 대량의 명의도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행정자치부와 선관위가 문제의 실명인증 시스템을 인터넷 언론사들이 설치하도록 제공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또 이후 공대위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선거실명제 폐지를 위한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