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토론회...

[기자의눈] 한미FTA 강행,저지 여론 선점 쟁탈전 돌입

국회의원들이 한미FTA 협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미FTA가 2월 2일 공청회를 기점으로 전계급적인 이슈로 부각되어온 과정을 돌아보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3월 28일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하던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강 건너 불 구경하고, 부문별공대위가 뜨고, 탄핵과 퇴진 요구 목소리까지 나왔지만 약속이나 한 듯 함구해왔다. 미디어도 한미FTA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미디어가 한미FTA 문제를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데는 범대위 출범 이후 4월 15일 범국민대회를 위한 각계의 노력이 당연히 영향을 미쳤겠지만, 정태인 전 비서관이 보인 태클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겠다. 3월 27일 CBS 라디오방송 대담프로그램, 레디앙 창간 인터뷰 등에 출연한 정태인 전 비서관은 한미FTA 졸속 추진을 문제삼으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국회 토론회 '한미FTA 토론회'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안 된 지금 한미FTA는 국민적인 이목을 끄는 이슈가 되었다. 며칠 전 '한미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모임'이 만들어졌다. 이 의원모임이 토론회를 하나 마련하는데 제목이 '한미FTA토론회'다. 토론회 제목도 참... 어떻게 하면 이렇게 건조한 제목이 나올 수 있나. 어쨌든 제목과 관계없이 국회의원들은 한미FTA와 관련한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앉혔다. 물론 한미FTA를 저지하자는 범국민적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당대 최고의 선수들도 이 자리를 피해갈 수 없는 정세가 이런 자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게 맞겠다.

김종훈 한미FTA협상 수석대표가 경과보고를 하고,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한미FTA 찬성 발제를,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반대 발제를 했다. 여기에 정태인 전 보좌관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지금 한미FTA를 놓고 꼽을 수 있는 가장 대가 센 네 사람이다.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고진화, 권영길, 채수찬, 최재천 등의 토론자는 체면치레 차원에서 자리를 했고, 또 예상한 대로 체면치레 수준의 발언을 했다.

국회의원, 협상 대표, 연구원장... 토론회는 이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공개 석상에 나오게 하기까지 지출한 사회적 비용을 산출하는 것은 뒤로 미루자. 좀더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2월 2일 한미FTA 공청회를 기점으로 반대 세력이 찬성 세력을 몰아친 지 한 달, 찬성세력이 반격에 나선 지 3주 정도 경과하는 시점이다. 불행하게도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은 더 천문학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오늘 토론회는 한미FTA를 놓고 추진하는 세력과 저지하는 세력의 싸움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FTA와 관련 초기에는 찬성과 반대세력이 각각 지지와 저지의 점 하나 두고 흑백과 같은 대립각을 세웠다. 그런데 지금은 지지 쪽이나 저지 쪽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점에서 예의 흥미로운 형국이다. 최초 전략대로 주어진 일정에 맞춰 협상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 졸속 추진은 안 되므로 국민적 합의를 거쳐 개방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 자유무역협정은 중단해야 하고 원점에서부터 살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중첩되어 있으면서 또 널리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각각의 주장이 공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이렇게 펼쳐지는 주장들 중 어느 주장이 여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것인가에 있다. 누가 여론을 틀어잡느냐 여부가 한미FTA 싸움에서 누가 이길 지를 규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다. 황우석 사태 때 충분히 경험했지만, 사실과 주장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 해도, 여론으로부터 밀릴 때 느끼는 그 곤혹감이란 짜증 자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힘이 곧 사회 여론의 힘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목도하며 살고 있을 따름이다.

한미FTA 각 입장, 여론 우위 선점 쟁탈전

그런 점에서 한미FTA 강행을 주장하는 논리나, 국민적 합의를 거쳐 개방정책을 펴야 한다는 논리나, 원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논리나 현재로서는 어느 한 논리가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한미FTA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 계급계층들의 날 선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쟁탈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경태 원장이 발표한 '한미FTA 의의와 기대효과' 발제글은 상당히 매력있는 글이다. 정태인 전 보좌관이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한미FTA를 다루는 국책연구소가 이 정도의 글을 글이라고 들고 나왔냐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글 자체로만 보면 상당한 호소력을 갖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한미FTA를 지금처럼 추진해야 하는 당위성을 분명히 정리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고용 창출이 필요하고, 따라서 적극적 개방을 통한 경제시스템의 선진화를 꾀해야 한다는 요지이다. 왜 지금 FTA를 미국과 추진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짚고, 그로부터 발생할 기대이익이 무언지에 대해서도 빠뜨림 없이 적시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대논리에 대한 의견'도 실렸다. 제2의 을사늑약론, 대미종속론, 공공서비스 몰락, 문화정체성 상실, 절차상의 문제, 양극화 심화, 나프타 이후 멕시코경제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주장 등이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정태인 전 보좌관이 토론문으로 제출한 글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는 지금 정태인 전 보좌관이 어떤 고민을 하는 지, 어떤 정체성을 갖는지가 잘 반영된 글이다. 오늘(24일) 프레시안에 실린 글과 맥이 같다. 정태인 전 보좌관은 이경태 원장의 글을 역시 조목조목 짚는다. 예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 글에서 졸속성 논쟁, 통계 조작 논쟁 등 소모적인 논쟁은 끝내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과 관련해서는 토론회 자리에서 이경태 원장과 명예훼손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정태인 전 보좌관은 한미FTA를 분명히 반대한다. 지금처럼 한미FTA가 가면 '개방-경쟁에 따라 경쟁력이 강화되지도 않을 것'이고 '미국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대한국 외국인직접투자(FDI) 증가도 불투명'하며, '양극화 완화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미국 경기와의 동조화가 우려'되며, '외교 안보적 문제도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이 시점에서 정태인 전 보좌관이 한미FTA를 반대하지만 연이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살피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발제문 '한미FTA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김종훈 수석대표와 이경태 원장의 약점을 지적하는 여러 데이터가 잘 반영한 글이다. 토론회 진행 중 적시적때에 요점을 짚는 자료로 잘 활용되었다. 물론 '저지 후'와 관련된 토론은 한참 더 필요하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8쪽짜리 경과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융단포화같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내용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발언으로 4시간짜리 토론회를 버티는 장관을 연출했다. 수석대표감인가 싶었다. 한미FTA 협상 자리에서도 통할 지는 잘 모르겠다.

김종훈 90점, 정태인 80점, 이경태 70점, 이해영 60점

토론회는 스펙타클했다. 오픈된 쟁점은 더 많은 논란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이날 토론회의 승자는 네 사람 중 누구일까? 주관이긴 하지만, 김종훈 90점, 정태인 80점, 이경태 70점, 이해영 60점을 메기고 싶다.

김종훈은 빈 손으로 와서 하고싶은 이야기 다 하고도 별 타격을 입지 않고 돌아갔다. 경과보고에 기초해서 향후 일정을 계속 가져간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도 했다. 넥타이와 양복을 입었지만 자신도 한국 사람이라며 장내를 진정시켰다. 그래서 90점. 정태인은 자신의 목표 두 가지를 호소하기 위한 기지를 십분 발휘했다. 사실 정태인은 3월 말부터 많은 말을 쏟아놓는데 너덜너덜한 이야기를 다 빼고 나면 요점은 두 가지다. '동북아균형론'을 복구해야 하고 그 연장에서 한미FTA 졸속 추진은 안 된다는 것과 키에프 같은 국책연구소가 어떤 배경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공격하는 것 해서 두 가지. 이번 토론회에서도 이 두 가지 미션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80점. 이경태 원장은 양질의 발제문을 제출했지만, 7.75% 실질 GDP 증가와 47억 달러 무역수지 악화 수치가 사기 조작이라는 정태인의 결정타에 맞아 휘청대 보였다. 최소한 이 대목은 후유증이 커보이는데, 명예훼손 운운까지 가 있어 이후 대응이 기대된다. 70점. 이해영 교수는 정태인의 인파이팅과 호흡을 같이 하며 예리한 아웃펀치를 날리곤 했지만, 타격 효과는 미지수다. 언론도 많이 못 타고... 그래서 좀 인색하지만 60점.

이날 토론회를 기점으로 한미FTA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초기 범국민운동본부 측에서 내놓은 총론과 부문분야별 비판이 한 방향으로 쏟아지고, 4월 들어 정부와 자본 측에서 반박, 교란 논리가 등장하는 과도적인 과정을 거쳐, 이제 본격적인 공개토론이 불가피한 국면이 되었다.

정부와 자본은 국정브리핑이나 여타의 미디어를 가동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쏟아놓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 더 공세적으로 한미FTA 옹호 주장을 펼칠 것이다. 정태인 전 보좌관처럼 소신은 있으나 끈 떨어진 사람들은 마이너 미디어를 동원하는 가운데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반대 진영이 언제까지 우호적으로 어깨를 걸어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원점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는 사람들, 한미FTA 저지 싸움을 하는 주체들이 지금 여론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게 문제겠는데, 간단히 제안하고 싶은 건 '더 많은 토론회'다. 4-6월 주구장창 다양한 토론회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

한미FTA 저지, 더 많은 토론회를

토론회가 너무 많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데, 한미FTA 저지 실천의 빈곤함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맞는 이야기지만, 무턱대고 할 말은 아니다. 오히려 토론회는 양과 방식과 질에서 너무 빈약하다. 황우석 사태 때 전국민적인 토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상기해 볼 때다. 한미FTA 문제는 줄기세포 진위 공방이 미친 파급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사안이다.

황우석 사태가 생물학을 다룬 거라면 한미FTA는 경제학, 국제정치학을 다루는 문제라는 점에서 분야만 다르다. 어렵고 쉽고의 문제는 교양 문제다. 테라토마 모르는 사람 없듯 유에스티알, 티피에이, 팜빌, 엑슨플로리어법 같은 단어는 교양되면 그만이다. 다만 줄기세포가 과거의 진실을 캐는 문제였다면, 한미FTA는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문제라는 점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겠다. 조건이야 어찌됐건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서는 전국민적인 토론 준비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최악의 미디어 조건, 어떻게 여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을까.

획기적인 다른 방안이 없다면 현재로서는 더 많은 토론회가 딱이다. 범국민운동본부에서 국민보고서를 잘 만드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하나씩 맡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정말 좋은 글을 생산해야 한다. 교수학술단체공대위가 정책토론을 꾸준히 하는 것은 좋은 사례다. 부문분야별 공대위가 제 구색에 맞는 다양한 토론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안연대회의 토론도 좋은 때에 이루어졌고, 민주노동당도 시민단체도 토론회를 준비한다니 좋은 일이다. 더 나아간다면 격식을 갖추지 않는 다양한 부문분야 구성원들간 토론, 지역주민토론, 현장소모임토론 같은 짜임새 있는 토론회 기획이 필요하겠다.

최초의 전략대로 주어진 일정에 맞춰 협상을 가져간다는 주장, 졸속 추진은 안 되므로 국민적 합의를 거쳐 개방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의 맹점을 분명히 가려내는 일도 '더 많은 토론회'를 통해서 가능하다. 자유무역협정은 중단해야 하고 원점에서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을 더 발전시켜 노동자 민중의 국제주의에 입각한 대안협정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더 많은 토론회'를 통해서 가능하다. 국회에서 열린 김종훈, 이경태, 정태인, 이해영의 공방을 보며 느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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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주

    이 글의 부제로 달았던 '국회 토론회, 김종훈 90, 정태인 80, 이경태 70, 이해영 60점'은 뽑는말로는 과도함이 있어 '한미FTA 강행,저지 여론 선점 쟁탈전 돌입'으로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