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민간신용정보업자 실명인증 허용 논란

“법률위반이자 전면적 인터넷실명제 효과 불러올 것”

5.31지방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언론사와 포털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인터넷 실명제(선거실명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민간신용정보회사의 정보망을 이용한 실명인증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선거실명제 근거법인 ‘공직선거법 제 82조의 6’에 따르면 이번 선거기간 동안 해당 인터넷언론사들은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공하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즉 인터넷 언론사들은 행정자치부가 제공하는 실명인증시스템만을 설치해야 하고, 이를 통해 네티즌들이 선거와 관련된 댓글 등을 남길 때 마다 실명 확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 실명인증을 ‘행정자치부장관이 제공하는 방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언론사와 포털사이트 등 민간기업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을 규제하는 한편,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행자부의 주민등록전산망을 이용함으로써 개인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작년 6월 선관위, ‘인터넷언론사 개인정보 수집권 부여’에 우려 제기

선거실명제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선관위도 민간기업에 개인정보 수집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해 온 바 있고, 그 의견이 반영돼 현재의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지난 해 6월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김용희 선관위 선거관리실 선거관리관은 인터넷언론사의 자체적인 실명인증에 대해 “인터넷언론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운영자에게 강제적으로 사실상 개인정보 수집권을 부여한 꼴이 된다”고 우려를 나타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게시하고자 하는 자가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전산자료에서 본인 여부 확인을 한 후에 인증서를 가지고 글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공직선거법은 이에 따라 실명인증 방법을 ‘행정자치부장관이 제공하는 방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언론사는 당해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서 글을 게시하고자 하는 자에게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할 것을 요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 앞둔 선관위, 460개 언론사 민간신용정보회사 통한 실명인증 허용

그러나 선관위가 최근 대형 포털사이트와 언론사에 민간신용정보회사 데이터망을 이용한 실명인증을 허용한 것으로 드러나 정보인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는 현재 언론사와 포털업체 등 460개 사에 대해 민간신용정보회사의 데이터망을 이용한 실명인증을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실명인증시스템을 구축한 전체 언론사는 700여 개 사인데, 절반 이상이 민간신용정보회사의 데이터망을 실명인증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네이버 등 대형포털사이트와 조선·중앙·한겨레신문 등 주요 종이신문 사이트들이 자체적인 방법으로 실명인증을 할 예정이고, 이미 몇몇 언론사들은 시행시기 보다 앞서 게시판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김정우, “선관위의 자의적 민간실명인증 허용은 법률위반”

문제는 선관위가 공직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공하는 실명인증방법’ 이외의 민간기업의 실명인증방법까지 임의로 허용함으로써 개인정보유출·명의도용 문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이와 함께 민간신용정보회사를 통한 실명인증을 인정한 선관위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의 전면적 인터넷실명제를 허용한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정보인권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선관위의 이번 선관위 조치에 대해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선관위가 민간실명인증을 허용함으로써 인터넷언론사들은 단기간의 규제된 형태가 아니라, 아예 로그인을 하지 못하면 글을 쓸 수 없도록 하는 전면적인 인터넷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선관위는 이번 선거실명제가 선거 시기 동안만 시행되는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결국 이번 조치로 모든 언론사들의 게시판의 실명인증 시스템은 선거가 끝나도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선관위가 공직선거법에서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실명인증방법을 넘어서서 자의적으로 민간실명인증까지 허용하는 것은 법률위반이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조치”며 “원칙과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민간 기업에게 개인정보의 수집권을 넘겨줌으로써 정보인권을 침해함은 물론이고, 리니지 사태 때처럼 대량의 명의도용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은우 변호사, “청소년들은 글 쓸 기회조차 박탈”

이은우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에서 실명인증방법을 행자부장관이 제공하는 것으로 제한한 이유는 그나마 행자부 망이 가지고 있는 완결성 때문”이라며 해킹과 명의도용 등에 노출될 수 있는 민간 기업에 의한 실명인증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 이은우 변호사는 “사실 행자부의 자료는 모든 국민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민간신용정보회사 등의 데이터는 전 국민의 데이터를 포괄할 수 없다”며 “결국 계좌정보가 없거나,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은 실명인증을 받지 못해 아예 글 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관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이 있었다”

민간신용정보망을 이용한 실명인증 방법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 윤석근 선관위 조사국 사이버조사팀장은 “인터넷언론사들을 조사해 보니 이미 200여 개 언론사들이 회원제 또는 민간기업에서 제공하는 실명인증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었다”며 “이 언론사들의 인증방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조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석근 조사국 사이버조사팀장은 민간기업을 통한 실명인증에 따른 개인정보유출, 해킹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