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차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그곳, 군대

국방부, ‘동성애자 유입·확산 차단대책 미비’ · ‘이성애자 희망 시 적극 지원’

“군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창동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1개월 반 정도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처음 후송되던 날, 나는 안경을 뺏기고, 옷을 벗고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발로 채이며 욕설을 들어야만 했고, 3일간 독방에서 가부좌 자세로 격리되었다.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 약을 매일 먹어야만 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군대에서 어떤 죄를 지었기에, 아니면 어떤 병에 걸렸기에 A씨는 욕설을 듣고, 정신병원에 가둬지고,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 약을 먹어야 했을까? 아마도 큰 죄를 지었을 터이다. ‘몹쓸병’에 걸렸을 터이다.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금기와 침묵을 넘어 동성애자 차별의 성역 군대를 말한다’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군대 내에서 죄인이나 ‘몹쓸병’에 걸린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처한 인권침해 상황을 짚어보고, 이들의 인권보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지난 2월 동성애자 박기범(가명) 씨가 군대 내에서 겪은 심각한 인권침해 실태가 인권단체들의 폭로로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박기범 씨의 경우 당시 부대 내에서 다른 이들에게 의해 성적지향이 알려지게 되었고, 물리적·정신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해당 부대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전역시켜주겠다’며 P씨에게 성관계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9일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군대는 제도적으로 동성애자 사병을 차별하고 언어·신체적 폭력을 용인하는 곳”이라며 “자신의 성정체성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신변을 위협당할 만큼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군대는 인권보장이 아닌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폭력을 관련 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게 정욜 활동가의 주장이다.

군법, 동성애는 ‘계간’(鷄姦)· 동성애자는 ‘변태적 성벽자’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보장’하고 있는 관련 군 법령으로는 군형법, 장병신체검사규칙, 군인사법시행령 등이 있다. 국방부령 제 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동성애를 ‘성 선호장애’로 규정하고 있어 군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동성애자들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 또 동성애자들은 군인사법시행령 제 56조 2항 4호에 따라 ‘변태적 성벽자’로 분류돼 자발적 선택에 의한 직업군인이라 할지라도 강제적인 전역절차를 밟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군형법 제92조 ‘추행’ 조항에서는 동성애를 ‘계간’(鷄姦)이라고 표현하며,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鷄)자가 닭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군대는 동성애를 동물적 행위로 규정하며, 법적인 처벌대상으로 정해 놓고 있다.

이 같은 군 관련 법령에 대해 정욜 활동가는 “동성애자들은 사회에서 규정해 놓은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성폭력을 유발할 수 있고, 군 기강을 해이하게 할 수 있는 ‘비정상적’ 집단쯤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성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잠정적인 위험집단이자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는 군형법 추행 조항과 관련해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동성애는 개인의 영역에 있는 지향의 문제일 뿐 국가가 당연히 범죄로 규제하여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최강욱 변호사는 “동성애자이기에 앞서 엄연한 인권을 지닌 주체인 한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 보다 ‘군사회의 기강 문란 및 전투력 약화, 개인의 성도덕 관념과 성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벌’한다는 입법 목적 내지 보호법익이 우선한다는 사고는 도저히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관련 군 법령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국방부 관리지침, “동성애자들 병영 내 유입·확산 차단대책 미비”

정욜 활동가와 최강욱 변호사의 지적대로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는 제도적으로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2월 박기범 씨를 통해 군대 내 동성애자들의 인권침해 실태가 폭로된 이후 지난 달 국방부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관리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 내용 또한 동성애자 보호는커녕 국방부의 조악한 동성애관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관리지침에서 “최근 사회문화적 환경변화와 더불어 동성애자 인권보호가 주요 관심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이번 지침 시행 배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군대 내 동성애자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국방부는 관리지침을 통해 “동성애자들의 병영 내 유입·확산 차단대책 미비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전역 조치 시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히고 있어 시행 배경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 국방부 관리지침은 세부적인 ‘지침’으로 “인성검사결과 ‘동성애 성향 잠재자’로 분류 시 집중관리”하고, “보호 및 관심병사로 선정”해 동성애자 사병을 특별관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정욜 활동가는 “동성애를 단지 행위로서만 접근하고 사고하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라며 “이는 곧 동성애자를 조기 식별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그자체로 충분히 인권침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자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정정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국방부,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

국방부의 관리지침 부분 중 ‘압권’은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한다”는 부분이다. 국방부는 군대 내 동성애자 병사가 이성애자로 ‘전환’을 원할 시에 “정신과 군의관·군종장교·전문상담인력 상담을 적극 주선”하고, “체육·동아리활동을 통한 성적욕구 해소”를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성애자로의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국방부의 이 같은 관리지침에 대해 정욜 활동가는 “‘전환’은 ‘이제까지의 방침이나 경향, 상태 등이 다른 것으로 바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즉 이 용어정의에 따르면 ‘동성을 향한 성지향이 이성으로 바뀌었다’고 해석된다”며 “역으로 이성을 향한 당신의 성지향이 동성을 향하도록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최강욱 변호사는 국방부의 관리지침과 관련해 “가슴이 답답해진다”며 “개인의 성적 지향은 그 자체로 헌법상 보호받아야 하며 국가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개인의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남성성폭력 가해자, 동성애 혐오 정도 깊은 이성애자”

한편,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자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의 특성’이라는 토론문을 통해 “성폭력의 속성은 단순한 성적 욕구가 아닌 권력욕, 지배 욕구를 반영하는데, 상대방을 지배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성폭력이 사용된다”며 “남성 간 성폭력 역시 권력이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행하는 폭력행위이며, 위계적 사회인 군대의 경우 계급차이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주 활동가는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화’하고 있는 국방부의 태도와 관련해 “한 사회에서 성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은 권력을 행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소수자이면서 차별 받는 입장에 있는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를 가해하는 권력을 가지기란 힘들다”며 “오히려 동성애자의 경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그룹에서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주 활동가는 남성 간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많은 연구들에서 보여지 듯 남성 성폭력 가해자의 일반적 유형은 동성애 혐오의 정도가 깊은 이성애자로, 남성에 대한 성적 공격을 성적 욕구에 기반한 폭력 행위로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동성애 혐오증을 가진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의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해 성폭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대 내 성인지 교육 및 성적 지향성에 대한 교육 필요”

토론자로 참석한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자위원회 위원장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보장을 위해 △병사들에 대한 인권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 진행 △모든 병사에게 공히 적용되는 인권보호지침 마련 △차별적인 관련 군 법령 개정 및 폐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현숙 위원장은 “한국의 군은 가장 강력한 집단적 무력보유집단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집중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라며 “소위 군사문화라는 용어가 있듯 병영 내에서 이루어지는 장기간의 교육은 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내면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며 군대 내 성인지 교육 및 성적 지향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정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문제와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그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인권위의 판단구조는 사법적 담론과는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며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입증자료에만 의존하여 사실관계와 객관성의 이름으로 긴급구제 등의 경우와 같은 소극적 결정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갇힐 만큼, 원치 않는 에이즈 검사를 당해야 할 만큼, 온갖 욕설을 들어야 할 만큼, 독방에 갇힐 만큼 ‘몹쓸병’ 그리고 ‘죄’. 그 때문에 오랜 ‘고초’를 겪고, 전역을 한 박기범 씨도 이날 청중석에 앉아 참석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었다. ‘몹쓸병’을 치료하려는, 또 그를 ‘전환’시키려는 군대를 벗어나서인지 박기범 씨의 얼굴은 다행히도 건강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