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제조업은 괜찮다고?

'한미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공청회 열려


13일 오후 2시 금속연맹이 주관하는 '한미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는 이 주제로 프로젝트 팀을 꾸려 연구해온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 이승협 중앙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등이 발제를 맡아 발표하고,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김성혁 금속노조 정책실장, 함재규 기아차노조 정책실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공청회의 사회를 본 김혁 금속연맹 정책국장은 "올해 초부터 각계에서 한미FTA 저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데 비해, 정부나 자본이 이야기하는 비교우위론 때문에 제조업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두 달간 연구한 결과 제조업에서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더 심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용 증가한다는 정부 주장은 거짓말"

  이승협 중앙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이승협 연구원은 '한미FTA가 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정부에서 주도하는 대로 협상이 체결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모든 지표에서 단기적으로 고용이 감소한다고 보여지며, 중장기적으로도 증가한다는 것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꼬집으며 "막대한 미국자본은 서비스나 금융의 인수합병 위주로, 즉 고용창출 효과가 없는 자본투자로 들어올 것이므로 고용 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오히려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이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하는 제도 개편을 요구할 것이라며 "복수노조 하에서의 단일 대표제라든가 쟁의행위에서의 대체인력 허용 등을 들고나와 지속적인 압력을 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노무관리체제와 성과주의의 확산이 강요될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의 노사관계 재편은 1987년 투쟁 이후 확산된 조직된 노동자의 힘을 분쇄시킬 것"이라는 우려이다.

"적자 증대, 임금 하락, 물가 인상"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
백일 교수는 한미FTA와 관련한 정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백일 교수는 "정부에서는 자동차 시장에 대해 '대형차와 고급차 중심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 점유율은 0.52%라서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지적재산권, 서비스, 농산물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제조업은 비교우위에 있다, 1조 7천억 원의 미국 시장을 노릴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에 대해 "대부분의 연구보고서에서 타결시 무역수지가 실제 적자이며 각종 의혹이 많다"고 지적한 후 "자동차 관세율이 우리가 10%이고 미국이 2%라, 무역 규모가 늘더라도 적자만 늘어날 뿐"이라고 비판했다.

백일 교수는 제조업 노동자의 피해에 대해 "NAFTA의 경우, 적게는 몇%에서 많게는 30%까지 임금이 하락했으며 이에 반해 초국적 기업의 잉여가 올라간다"고 지적하는 한편 "각 나라에서 비교우위 산업으로 구조조정이 행해질 것이므로 중요 핵심산업은 미국으로 재편되고 그렇지 않은 산업, 1차 산업품이나 열등한 기계들은 한국이나 멕시코에 편재될 것"이며 "이에 따라 물가인상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자동차 산업과 연계된 모든 협상에 주목"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이종탁 부소장은 한미FTA가 특히 한국자동차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이종탁 부소장은 "한미FTA가 체결되는 미국산 수입차의 판매가 늘어날 것이고 한국산 자동차의 판매가격도 일정 낮아지는 효과가 있지만, 미국 현지공장을 통해 현지생산을 강화하려는 한국 자동차 자본의 계획으로 볼 때, 국내 자동차 생산 증가 효과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대형 승용차와 화물차 분야에서 미국산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면서 이 분야의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은 자동차 '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한정된 것이므로 이렇게만 접근해선 안된다"고 경계한 후 "한미FTA에서 다루게 될 투자와 금융서비스, 지적재산권, 글로벌 스탠다드 등의 내용도 직간접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자동차 산업 노동자 전체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둔 노동배제적 기술 도입 등이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에게 지금보다 더한 구조조정을 강요하게 되므로, 자본의 입맛에만 맞는 산업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한미FTA를 결코 수용해선 안된다"는 결론이었다.

"NAFTA형 FTA는 세계적 대세 아니다"

토론자로 나온 함재규 기아차노조 정책실장은 "노동자에게 한미FTA가 미칠 영향은 한일FTA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며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노동 관련해 요구한 '60일 전 해고통지를 30일로 축소', '기업의 고용과 해고의 자유', '퇴직연금을 확정기여형으로 변경',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처벌', '노사 분쟁을 현행 형법에서 민법으로 조정', '파업 찬반투표 금지'등을 들어 우려를 표명했다.

김성혁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협상단 사이에 전문성의 차이가 크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훨씬 불리할 뿐 아니라 협상 내용도 3년간 비공개한다고 한다"고 비판하면서 "자동차의 경우 한국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라는 요구나 다름없으며 협상을 통해 비관세 장벽을 철폐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에 끌려가는 협상'에 대해 지적했다.

  (왼쪽부터)함재규 기아차노조 정책실장, 김성혁 금속노조 정책실장,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국장도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제조업을 4개로 분류해 조사한 결과, 9만 5천여 명의 제조업 노동자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며 고용이 오히려 감소될 것이라 전망했다. 서준섭 정책국장은 "정부는 고용 증가 가능성이 있는 섬유산업을 언급하지만 선반 용접공이 미싱을 돌릴 순 없는 일"이라 일축했다.

또 '무역조정 지원'이라는 미국의 무역피해에 의한 실업 지원제도를 언급하며 "전반적으로 취약계층, 연령이 높고 기술숙련도가 높고 근속이 오래된, 또 남성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더 피해를 보게 되며 오랜 기간 후 재취업 시에도 13%의 임금 감소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FTA 흐름에 대해 한국 정부는 '세계적 대세'라고 주장하지만 서준섭 정책국장에 따르면 "190개 가량의 FTA 중 70%가 소련연방 해체 후 동구권 국가들간의 필요에 의해서나 유럽연합(EU)간 체결된 것이고, 90%는 이런 식으로 근접 국가들끼리 체결한 것이다. NAFTA형 FTA는 절대 대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미FTA로 대북문제 해결? 미국의 이익? 중국 견제?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발표가 끝난 후 주로 제조업 현장 노동자들이 참석한 플로어에서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대략 '노무현이 급작스럽게 한미FTA를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본자동차가 한국에 들어와 미칠 영향', '제조업 중 철강산업에 미칠 영향', '지자체 선거가 협상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질의응답과 토론이 진행됐다.

이승협 연구원은 정부의 한미FTA 추진 배경에 대해 "일반적으론 정권이 내부 개혁의 장애에 부딪힌 후 돌파를 위한 시도로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다고 보고, 다른 설로는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거래가 아니냐는 제기도 있다"고 추측했다. 서준섭 정책국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2년 전부터 움직임이 있었고, 노무현의 독자적 결단이라기보다 관료들이 청와대를 장악한 결과일 것"이라 진단했다.

  금속산업연맹과 화학섬유연맹이 꾸린 <한미FTA 제조업 연구팀>이 <한미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대해 백일 교수는 "부시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펴는 것에 대해 완화시키고 정치적 고립 상태에서 대북문제를 해결해 탈출구로 삼고자 한 정치적 거래라는 대북해결설, 전세계 국가중 약 3백억 달러라는 가장 높은 FTA 수익국이라는 미국이익설, 경제력이 확장될 중국 대신 한국을 통해 견제하자는 중국견제설이 있다"고 설명하고 '미국이익설'을 타당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이종탁 부소장은 "한미FTA 자체는 정치적이 아닌 경제적 행위에 기반하며 한국 경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제 종속성 속에서 한국 자본이 자기 이익을 실현할 주요한 통로를 미국과의 관계로 삼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 '자본'에겐 어떤 식으로든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므로 정권이나 정치세력의 이익보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의견과 토론으로 서준섭 정책국장의 "정권이 한미FTA가 무산됐을 때 궁색해지는 경우를 대비해 한EU FTA 협상을 꺼내는 것일지 모른다", 백일 교수의 "한미FTA 체결 이후 IMF처럼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악화와 양극화 때문에 그 이상의 고통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이 있었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그동안 정부의 '비교우위론'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대응한 감이 있는 제조업 노동자들로선, '제조업'에 국한한 분석 보고서가 제출된 점에서 연구와 공청회의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청회에 대해 이시욱 금속연맹 부위원장은 "그동안 우리 금속 노동자들이 한미FTA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 보고서를 발표하고,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알게 된 만큼 금속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FTA를 막아내야 할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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