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 중 NAFTA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FTA가 지난 6월 5일 1차 협상에 이어 7월 10일 서울 본협상을 앞두고 있다. 한미FTA 체결로 비정규직이 더욱 양산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삶이 한미FTA 이후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여성위원회, 한국노총여성위원회 등 총 15개 각 계 여성단위들로 구성된 한미FTA저지여성대책위와 한미FTA저지교수학술공대위가 공동주최하고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주관한 ‘한미FTA와 여성노동의 변화’ 토론회가 28일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렸다.
여성노동, 비정규직 더욱 확산-이주노동으로 나머지 반쪽짜리 시민권마저 박탈
이날 토론회에서는 FTA가 총체적인 여성의 삶과 맞물려 있다고 보고,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을 중심으로 한미FTA 이후 여성노동의 변화를 고찰했다. 이는 주로 한미FTA 체결 이후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여성 일반에게 미치는 영향을 토론하며 앞으로의 투쟁 방향과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미FTA 체결 이후 여성/남성의 노동 영역의 장벽이 제거되고 재구조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더욱 공고해지는 것과 맞물려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가 심화되고 이에 대한 정부지원 역시 삭감되면서 여성들이 기존에 하지 않던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게 될 것 즉, 여성에게 사회서비스, 복지부분의 몫을 떠넘기게 될 것이라는 것에 참석자들의 이견이 없었다.
또한 상품과 함께 노동 역시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고 기업이 이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용절감방법의 하나로 이주노동을 활용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반쪽짜리’ 시민권만을 획득한 여성이 열악한 노동을 넘어 구조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돼 그나마의 시민권마저 박탈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문은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에서도 '노동'만을 고민했던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오늘의 토론회 중심에 이주노동을 포함한 것도 시민권 중에서도 노동권에 대한 우리의 고찰이 필요한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재생산 영역이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전가
이날 토론회는 문현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과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가 발제를, 심문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위원장, 황지원 소화아동병원 간호사,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손영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사무처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문현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남성이 시장활동을 중점적으로 하는 반면 여성이 비시자활동에 더욱 치중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사유화를 통해 공적 서비스 영역이 민간부분으로 떠넘겨지면서 이것이 여성의 비시장활동의 영역으로 떠넘겨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현아 연구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간병인 이용경험 중 89.3%가 가족들에게 간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가족 중에서도 여성이 돌봄노동 영역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동기도 육아나 가사에 의한 것이 상대적으로 많아 재생산 영역이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현아 연구원은 “여성이 부담하고 있는 육아나 가사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무역관련 정책은 여성의 무급노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의 여성노동의 역할에 대한 고려나 재평가 없는 정책은 여성에 대한 현존하는 가부장적 상차별 구조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 전체로서 여성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현아 연구원은 “빈곤의 세계화, 빈곤의 여성화를 넘어 여성적 빈곤의 원인에 몰두해야 한다”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가부장적인 성적 불평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열악하고 시민권마저 없는 이주노동의 증가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FTA는 자본의 극대화이자 노동의 극소화”라며 “기업이 경쟁력 확보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비롯해 하청 외주, 비정규직 고용과 더불어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비용절감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미FTA 이후 실업, 비정규 노동, 이주노동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천응 대표는 “인종차별, 갈등, 혐오증, 법적 배제, 인권 침해 등 이주노동을 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배제정책, 그 중심에 이주여성이 있다”며 “값싼 노동력으로서 경제적 도구가 아닌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과 그에 따른 권리를 가진 사회적 존재로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천응 대표는 기존의 운동과정에서 주장하던 '국경 없는 시민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토론자들은 노동자, 농민으로서의 여성노동에 대한 현재의 가치절하 상황을 전달하며 한미FTA 이후 여성노동력의 주변화가 심화될 뿐만 아니라 일하면서도 빈곤한 절대빈곤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지원 소화아동병원 간호사는 “대통령 산하 의료산업선진화위원에 황우석 박사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정이 포함되었던 사실에서도 보여지듯이 자본과 국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국민의 동의구조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한미FTA의 핵심은 노동유연화 뿐만아니라 노동권에 대한 박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