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협상 결렬, 합의를 위한 단계일 뿐

[2차협상쟁점](6) - 신약 확대, 비위반제소 등 내부거래 주목해야

한미FTA 2차 본협상에서 의약품 분과 협상이 결렬 됐다. 모든 언론이 협상 결렬의 배경과 의미를 해석하고 향후 예측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미 협상단의 미팅 일정까지 연결시켜 해석한다. 무관하다 할 수 없으나 전적인 거 같지 않다.

미 협상단이 강조했던 의약품 분과의 비중도에 비해 협상의 파장이 적다. 이들이 단지 퇴장만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건 한국 협상단을 ‘종이 조각’으로 봤거나 또는 각각의 분과마다 분리된 협상전술을 구사하는 것일 게다. 물론 두 경우 모두일 가능성도 있다.

협상 중반 퇴장, 이어진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

한미FTA(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 의약품과 의료기기 작업반이 협상 이틀째인 11일부터 협상을 시작했다. 당일 협상 중반에 퇴장 했던 미 협상단은 이날 오후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는 후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12일 일방적인 협상 불참을 통보했다.

미국 협상단이 ‘협상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보건복지부의 ‘5.3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시스템’ 도입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발표 이후 웬디 커틀러 미 협상 수석대표는 1차 협상 당시 유감을 표명했고, 국내 진출한 다국적 제약회사를 대표해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모 호텔에서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심지어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는 지난 10일 기자브리핑에서도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에서 포지티브 리스트 등 중요한 문제들이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물러섬이 없었다. 이미 의약품/의료 기기 작업반의 진통은 예상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협상 결렬의 배경과 향후 예상되는 결과가 뭔가인가의 문제이다.

5.3 약가 정책, 포지티브 리스트가 뭔가

보건복지부의 ‘5.3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모든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으로 등재했던 관리방식(네거티브리스트)을 효능과 가격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평가와 가격 협상을 거쳐 선별 등재하는 방식(포지티브리스트)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방안을 통해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29%를 차지하고 있는 약제비를 적정화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내실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동일성분의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치료적,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등재함으로써 합리적 약제비 지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보건의료단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드는 신약들이 모두 효과가 우수한 약제가 아니”라며 “새로운 약을 등재시킬 때 비용과 효과를 따져서 기존 약에 비해 우수한지를 판별하여 등재를 할 것인지,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판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조속한 도입을 촉구한 바 있다. (참세상, 6.15)

이 제도는 오스트리아,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 에서도 도입했고, 미국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미국 협상단, 포지티브 압박 장외 전술

물론 미국 협상단이 한국 정부가 도입하려는 ‘포지티브 리스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가 오히려 4대 선결과제 중 하나였던 ‘새로운 약가개선 방안 도입 금지‘와 관련한 사전 합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그간 인터뷰에서 빼 놓지 않고 발언했을 만큼 의약품에 상당한 비중을 둬 왔다.

일부에서는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의약품 선별 보험 등재제도’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기도 한다. 포지티브리스트가 결국은 가격대비 효과 좋은 약에 보험 혜택을 준다는 것인데,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혁신적 신약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가격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험제도와도 맞물린다. 절대 긍정적 의미가 아님을 전제로 미국은 민간보험이 활성화 되어 있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약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공보험 체계를 근간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조건이 까다로와 지는 상황에서 공단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사실상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보험적용은 못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건복지부의 5.3약가정책에 다국적 기업들이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제네릭에만 유리한 쪽으로 제도가 운용 될 것이라는, 신약을 중심으로 이익을 취해온 그들의 주머니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쟁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발표된 5.3약가 정책은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나열해 놨을 뿐 이행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상황이다.

천문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은 “미국 협상단이 의약품 협상에 무게를 실은 것에 비한다면 협상 결렬 전술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전술이다”라고 분석했다.

다른 것을 얻어내기 위한 우회전술

천문호 회장이 협상결렬이 갖는 의미를 예로 든다. “미국 협상단이 ‘그래, 포지티브 리스트를 들어 줄께’ 식으로 한발 물러서면서 비위반제소와 혁신적 신약의 범위를 넓혀 달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를 압박 카드로 사용하면서, 혁신적 신약의 범위 확대, 신약의 특허 보호권 강화, 특허와 시판 허가 연계, 보험등재와 가격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 강제실시권 해제, 비위반 제소 등 다른 더 큰 카드를 챙기려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비위반제소(Non-violation complaint)는 정부의 어떤 조치가 협정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협정에 따른 합리적이고 기대하는 이익이 무효화 되거나 침해되는 경우 분쟁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다. 원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적용되는 조항이나 미국은 FTA협상을 통해 ‘지적재산권’도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전문평가위원회가 신약을 대상으로 ‘혁신적 신약’의 분류를 결정하고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는 신약 중에서 소수의 제품만이 ‘혁신적 신약’으로 분류되어 있다며 '혁신적 신약의 범위를 넓혀 줄 것'에 매년 압력을 행사해 왔다.

만약의 가정이 붙는다. 혁신적 신약의 범위도 넓어지고 비위반 제소가 도입된다면, 천문호 회장은 “약가 정책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단언한다. 천문호 회장은 “지금은 혁신적 신약이 몇 개 안되지만 범위가 넓어지면 숫자도 늘어나게 될 것이고 기대이익에 대한 다국적제약회사들의 관련한 소송도 다수 제기 될 것”이라며 “이는 역으로 포지티브 리스트의 안전성도 흔들게 될 것”이라고 관계를 설명했다.

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다 하더라도 투자 분쟁 조항에서 '투자자의 국가 제소'를 우려해 국가의 공적 정책이 위축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설령 한미FTA 협상에서 포지티브 리스트를 지켜냈다 하더라도 소송이 제기되고, 사회적으로 문제의 쟁점이 되거나 설령 벌금을 부과 받는다면 당연히 문책이 이어질테니 제도를 바꾸거나 편법을 쓰는 방식이 만연화 되지 않겠는가를 반문한다.

천문호 회장은 “미국 협상단이 포지티브 리스트 때문에 의약품 협상을 안하겠다가 아니라, 다른 것과 교환의 여지가 남겨져 있음에 따라 협상 전술을 쓰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어 “정부는 포지티브 리스트를 지켰다는 명분을 챙기되 미국 협상단은 신약범위 확대, 특허-허가 연계, 비위반 제소 등 실리를 챙길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미국 협상단이 챙기는 실리 속에 포지티브 리스트 또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 또한 높다.

이런 논지와 연결해 본다면 한국 협상단이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일 공식 브리핑에서 김종훈 수석 대표는 “정부의 개혁 방향을 수용하지 못한다 하는 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5.3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어 “다만 미국의 신약 처리 어떻게 할 것인가는 논의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신약을 통한 돌파구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설령 보건복지부가 강고한 정신으로 개혁 정책을 고수해 결렬 시킨다 해도 ‘결렬’ 내지는 '정책을 지켜냈다'의 의미보다 협상 내용으로 무엇을 주고받는가가 더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천문호 회장은 “사실 2차 협상에서 결렬 된 것이 합의된 것 보다는 낫다”고 의미를 두며 “그런데 액면 그대로 결렬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이번 협상을 통해 상호 교감을 확인하고, 국내 정치용으로 의약품에 대한 ‘결렬’과 걸림돌로의 ‘5.3약가정책’을 부각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9월에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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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순

    기사 중 천문호회장 이름이 어느 순간 최문호로 바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