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영리법인화, FTA와 '따로 또 같이' 간다

현정희,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기업에게 팔고 있다"

2002년 11월 경제자유구역법이 국회를 통과 했다. 국회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노동, 보건의료 단체들은 '보건의료 영역의 시장화'를 반대하며 법안을 반대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에만 한정한 ‘외국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이 허용됐다.

2005년 1월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제자유구역내 외국 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이 세운 영리법인의 병원에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 진료도 허용한, 이용 대상을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005년 11월 4일 '제주특별자치도' 법안이 입법예고 된지 보름만에 '일사천리'로 국무회의를 통과, 올 7월 1일 부터 시행됐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외국인’의 영리법인이 허용됐고, 외국 병원의 ‘내국인 진료’도 허용됐다. 그리고 외국인이 설립한 의료기관은 외국인 환자의 소개, 알선행위도 가능하게 했다.

2006년 7월 24일 재정경제부는 다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내용은 경제자유구역의 외국 병원 설립 주체를 ‘외국인’에서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설립한 국내법인’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추가 절차를 밟아 이르면 올 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개정안을 공포해 내년 하반기에 시행될 예정이다.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와 경제자유구역의 근거 법은 다르다. 그러나 의료 부문의 법안 개정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내용들이 점점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속된 법 개정을 통해 '병원의 영리법인'허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현정희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병노협) 집행위원장은 “경제자유구역법이 재정될 당시 결국 이런 수순을 밟지 않겠냐 우려했던 부분이, 몇 년 만에 현실화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종착역은 ‘영리병원’, 관련 법안을 정비한다

국민들의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병원 영리법인 도입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2008년 이후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외국계 영리병원인 뉴욕장로회병원(NYPH)의 운영 성과와 제주도에 설립 될 외국 영리병원의 진료 행태와 투자 성과 등을 지켜본 뒤 이 제도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마치 병원의 영리법인 도입 논의를 중단하기로 한 것 처럼 들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같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5월 ‘영리법인 의료 기관 도입’ 방안을 검토의제로 공식 채택해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또한 영리법인도입 결정은 연기하 되, 의료관련 산업 육성 등을 위한 기타 대책, 수익사업 허용, 회계투명성 강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리법인 도입이라는 종착역을 앞두고 관련된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수순이다. 정부의 병원의 영리법인 도입 계획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상황이다.

눈여겨 봐야 한다. 재경부의 입법예고 다음날 한 경제지는 사설을 통해 “의료계 불황이 깊어지면서 병원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며, “병원도 기업이어야 한다. 의료 평등이 병원 경쟁력 확대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며 ‘영리법인화 도입’에 소리를 높였다. 국내 병원들의 '영리법인 허용'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다소 연기됐다 하더라도 '의료산업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노력과 이런 자본의 요구가 계속되는 한 결국에는 '병원의 영리법인화'가 도입될 것임은 명확하다. 처음에는 경제자유구역 내 한정 됐을 지라도 법개정을 통해 진료대상이 확대되는 것 처럼, 경제자유구역이 늘어나는 것 처럼 종착지를 향해 과정을 정비하며 단계를 밟아 도입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재경부의 입법예고 안에 대해 현정희 집행위원장은 “사실상 국내 의료에 대한 영리법인의 허용”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동안 정부는 병원의 영리법인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확대하지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정부의 ‘거짓’을 집중 추궁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에는 '외국인이 투자한 국내 법인'의 근거가 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외투법) 상의 10%' 기준 때문이다. 외국인의 투자가 10% 이상이면 외국인이 설립한 국내 법인으로 구분된다. 외국자본 유치라는 명분과 10%라는 기준은 오히려 외국자본의 외피를 뒤집어 쓴 국내 자본들의 실질적인 영리병원 운영을 보장하는 셈이다.

현정희 집행위원장은 “국내 기업중에 외국인 투자가 10% 이하인 기업들이 몇이나 되나?”를 반문했다.

국민기업이라는 주장되는 삼성전자의 경우 2006년 7월 현재 외국인 지분 비율이 51.3%에 달한다. 국민은행의 경우 2006년 현재 외국인 지분현황이 84%를 넘었다.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40.1%(2004년)로 사실상 외투법상의 10%라는 기준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러니 “사실 정부는 처음부터 영리법인 도입 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렇게 하지 않을 것 처럼, 지역을 한정하고 연달아 법을 개정해 국내 법인도 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국내 기업'들에게 '영리법인'의 길을 열어주면서도, 정부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어 현정희 집행위원장은 “병원의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지적하며 수순처럼 민간의료보험이 확대 될 것임을 경고한다. 또한 “정부의 이런 방식의 의료 산업화 정책 강행은 국민들을 의료 사각지대로 내모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건강과 의료에 관련된 분야를 재경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관련해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의 한 관계자는 “'영리법인 도입 연기' 내용을 대통령 께 보고했음"을 강조하며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또한 그는 보건복지부 내에서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음을 들었다.

그는 “외국인이 설립한 병원의 경우 현행법으로는 문제가 있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료제출의 의무 등을 명시한 법률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자본의 비율 문제의 경우도 이 특별법이나 재경부의 법안에 첨부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경부와 복지부의 2라운드 인가

언뜻 보면 약제비 적정화 방안처럼 보건복지부와 외교통상부/재정경제부의 의견차 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영리법인 허용에 조심스러운 보건복지부와 '영리 법인'도입을 통해 고비용의 '의료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재경부의 엇갈림 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정이 다를 뿐 같은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현재 개인의원이 아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특수법인 등 비영리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비영리법인은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없으며 △설립자도 이익을 가져갈 수 없고 △법인을 청산할 때는 모든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다. 생명을 담보로 영리를 취할 수 없게 제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은 비영리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사회 공공적 성격을 갖게 된다.

또한 보건의료 영역의 특성상, 의료를 이용하는 이용자가 선택권을 갖기 보다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의 일방적으로 제공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이용자의 의지와 별개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특성이 있다.

현정희 집행위원장은 “병원의 이런 특징 때문에 기업처럼 상장해서 주주의 이윤을 위해 운영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병원이 공공성을 포기하고 이윤을 중심으로 운영하기 시작한다면 병원 종사 노동자들은 당연히 구조조정 될 것이고, 환자로 부터 더 많은 수익을 챙기기 위해 과잉진료나, 고가의 의료 서비스를 강요 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건의료 영역은 산업화와 상업화가 되어서는 안되는 영역”이라는 강조가 지나치지 않는다. 생명과 건강이 돈 놀음에 놀아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한미 FTA와 관련해 그간 영리법인 의료기관 도입 문제가 의료분야 쟁점인 것처럼 잘못 오해되고 있으나, 미국 측에서는 이미 1차협상시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음을 명확히 밝힌 바 있으며, 정부도 국내 의료체계의 발전 차원에서 검토한 문제”라고 밝혔다.

두가지 점이 남는다. 하나는 현정희 집행위원장의 지적처럼 “재경부의 법개정 과정만 봐도 국내 영리법인 설립도 가능해 지고 민간의료보험 활성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다, 반대여론이 높은 한미FTA 협상에서 국민 반대 여론을 등에 얹고 '영리 병원'의 협상 의제를 다룰 필요가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건복지부, 정부의 주장대로 “국내 의료체계의 발전 차원에서 검토한 문제”란 주장은 정부가 스스로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의료 산업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고, 그 노력은 계속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은 같다. 정부가 '의료 시장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주식회사 병원'의 등장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현정희 집행위원장이 덧붙인다.

“사실 재경부의 발표의 내용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기 어렵다. 누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겠나. 특히 보건 의료와 관련해 재경부가 발표하고 있으니 더욱 관계가 그러하다.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의 상황이 된다면 공분은 대규모로 확산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많이 늦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국민 건강을 책임지지 않고 기업에 팔아 넘기려는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