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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랄라, 암살위협 뚫고 대중 집회에 모습 드러내

[한상진의 레바논통신](2) - 헤즈볼라, 정권창출 본격 행보 나서나?

나스랄라, “눈물로는 레바논을 지킬 수 없다”

베이루트 남부의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지역 인근에서 헤즈볼라가 조직한, 시아파 주민들 수십만이 모인 승리대회(victory rally)가 22일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는 이스라엘의 암살을 피해서 시리아에 피신해 있던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가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레바논 사람들 사이에서는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암살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스랄라가 과연 참석할지는 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스랄라는 모습을 드러내었고, 한 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나스랄라가 모습을 보이자 집회에 참석한 군중들이 환호하고 있고, 이에 나스랄라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삼엄한 경호 속에 연설을 하고 있는 나스랄라

이 대회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레바논인들이 참석하여 나스랄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외신을 인용 한국 언론에도 그가 연설한 내용들이 대충 보도된 것으로 알고 있기에 그의 연설을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가 국제사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도움을 호소했던 것을 빗대서 “눈물로는 레바논을 지킬 수 없다”고 조롱하면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가 강해지기 전까지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는 또한 정부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엊그제 보내드린 보고서의 마지막에 전망하였듯이 헤즈볼라가 본격적인 정권잡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에 질세라 레바논 정부군도 다음 주말에 전쟁에 희생된 레바논 군인들을 추도하는 대규모의 집회를 개최하겠노라고 나섰습니다. 정부군 측에서는 최대 10만 명이 대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때 시아파 내에서 헤즈볼라와 주도권을 다투다가 지금은 헤즈볼라와 손잡고 대이스라엘 항전을 하고 있는 아말 민병대의 지도자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레바논판 파워게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레바논이 정치적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레바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앞으로 전개될 혼란이 또 다른 외부의 개입이나 내전으로 비화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한 헤즈볼라 멤버들이 묻힌 공동묘지. 순교자들을 위한 묘역을 따로 만들었다


  레바논 남부지역 도시의 파괴된 가옥, 파괴된 가옥의 이런 모습은 이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렸다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난민 40만 명에 달해

레바논에는 유엔에 의해서 공식으로 인정된 12개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고, 유엔에 의해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14개의 소규모 난민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 난민촌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모두 40여만 명에 이릅니다. 이는 레바논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많은 숫자입니다.

유엔에 의해 인정받은 난민촌은 그나마 유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당장 밥을 굶을 어려움은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엔의 인정을 받지 못한 난민촌은 그 얼마 되지 않는 도움도 받지 못해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엔의 도움을 받는다는 난민촌도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레바논 정부는 난민촌 주민들을 위해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살다 온 한 쿠르드족 출신의 레바논 사업가 친구가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들을 돕고자 나선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난민촌 주민들은 아무도 이 친구를 믿지 않고 뭔가 자신들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라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더군요. 지금까지 레바논 정부나 레바논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외부의 지원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최근 심해진 이스라엘의 공격에서 고통 받고 있는 가자지구의 동포에게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조그마한 과자종류를 들고나와 팔고있는 어린아이들. 아이들까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사정을 짐작케한다

어제는 베이루트 인근의 사브라와 세틸라라는 두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다녀왔습니다. 이 두 난민촌은 1982년 내전 중에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던 기독교 민병대 남부레바논군(SLA)에 의해 2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학살당했던 것으로 유명한 난민촌입니다. 당시 이 난민촌에서 학살당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숫자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적게는 3백 명을 주장하는 통계부터 많게는 4천 명을 주장하는 통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 2천여 명을 주장하는 통계가 가장 믿을만해 보입니다.

당시 학살은 내전의 다른 무장세력으로부터 남부레바논군을 보호하기위해 이스라엘군이 학살 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당시의 학살은 이스라엘 책임이라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은 내전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레바논 전체가 전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쨌든 레바논 사람들의 어려움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고 이들을 돕기 위한 국제회의까지 개최되고 있습니다. 반면 레바논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완전히 잊혀진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이곳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뿐 아니라 인근 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들어왔거나 자국의 국내 사정 때문에 이곳까지 피신해온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베이루트에서도 가장 열악한 슬럼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났고, ‘때국물’이 흐르는 아이들은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냄새는 온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새까만 손으로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살고 있었고, 베이루트의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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