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커틀러 그리고 김종훈의 ‘감귤’

감귤 농가는 표정관리 중?..협상 중단의 기치 유지해야

한미FTA 4차 협상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협상장 안팎으로 시끌시끌하다. 제주 전역은 경찰들로 들끓고 있고, 협상단이 있는 중문단지는 마음대로 다닐 수조차 없다. 한미FTA협상을 반대하는 국민들은 제주 전역 각지에서 산발적이고, 집중적인 협상 저지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협상 이틀째인 24일 급기야 경찰의 폭력 탄압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경찰이 ‘폭력집회를 유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협상장이 있는 중문단지 안이 출입통제로 고요한 반면 중문단지 밖은 곳곳에서 시끌벅적하다. 이 와중에 한미FTA 협상과 관련한 굉장히 낯선 행사가 개최됐다. 협상 첫날이던 23일 오후 3시, 신라호텔 한식당에서 양측수석대표와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의원 3명이 함께 한 면담자리가 바로 그 행사다.

사진촬영 시간 외에는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자리에서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와 미국 협상단에게 ‘감귤’을 제외시켜 줄 것을 호소했다. 이날 면담자리에 양대성 제주도의회의장, 강창일 열린우리당 의원, 김재윤 열린우리당 의원도 함께 했다.

호소한 게 뭐가 잘못됐을까?

첫째는 시기의 문제다.

제주는 1차 산업 비중이 14.7%로 전국 평균 3.5% 보다 4.2배 높으며, 제주도 전체 3만 6천 농가 가운데 감귤 농가가 3만 1천 농가로 86%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감귤 조수입은 6천억 원 수준으로 도 전체 농업조수입의 51%를 차지한다. 말 그대로 제주의 기간산업이 ‘감귤 농사’이다. 그렇게 절절하게 호소할 정도로 절실했다면 한미FTA 협상 개시 전부터 나섰어야 함이 상식이다. 최소한 양허/유보안 교환 전에는 이런 생색내기 행사를 했어야 했다.

제주도 개최지 변경을 요청할 만큼 부정적 여론이 있다. 도지사는 좌불안석하며 ‘지역 여론이 나쁜 상황’임을 강변했고, 기자간담회, 담화문 발표를 통해 여론 달레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붙은 '한미FTA‘ 협상 반대라는 선명한 선전물 조차 지역 경찰이 함부로 철거할 수 없을 만큼 지역 감귤 농민들은 한미FTA 협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상품(공산품) 협상이 23일 오전에 결렬됐음을 고려할 때 이날 오후 마련된 만남의 자리가 참이나 의심스럽다. 혹시 4차 협상 제주도 개최 결정의 사전 약속은 아니었을까.

둘째는 양국 협상단이 마치 짜고 나온 것처럼 그 이전까지 말도 않던 '감귤'을 협상의제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제주 지역에서 특히 민감한 만큼, 지역 신문 기자가 웬디 케틀러 수석대표에게 간담회 결과를 질문했다. 웬디 커틀러 대표는 “제주도지사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고 중요성을 이해하게 됐다. FTA 협상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주 감귤의 민감성을 고려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김종훈 수석은 브리핑 내용 본문에 “웬디 커틀러 미 측 수석대표와 함께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의원 3명과 함께 만나 간담회를 가졌고...”라며 구구 절절한 설명에 이어, “저도 한미FTA 감귤 문제를 충분히 잘 인식을 하고 있고 민감성이 협상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말씀 드리겠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렇게 민감성을 잘 인식했다면 이전 협상에서도 거론 됐어야 했다. 면담 자리를 통해 환기하게 됐다면, 그간 협상단은 말 그대로 농민, 노동자, 한미FTA 협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무시해 왔다는 얘기다. 왜냐, 반대의 근거로 제주도지가사 강변한 근거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협상 이전까지 ‘감귤’은 별 비중없는 품목중 하나였다. 그런 감귤이 제주도 협상에서 주요 모든 의제를 제치고 다른 협상 분과 만큼이나 중요하게 무게감이 실렸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깊게 들으면 알맹이가 없는 무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는 ‘고려해 나가겠다’고 말했고, 수석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 답했을 뿐, ‘예외’라거나, ‘민간품목’으로 하겠다는 확언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수석대표가 '쌀'만을 지키겠다고 공언한 것과 사뭇 대조 된다. 결국 이 말은 현재의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빈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내용상의 문제다.

설령 협상을 잘해서 민감품목으로 지정됐다고 해도 단지 시기와 시간이 달라질 뿐이다. 근본적인 정부의 농업 정책이 변하지 않는 이상, 관세 유예는 조삼모사의 대안 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농산물 분야 품목의 경우 ‘예외 없는 관세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쌀'의 경우는 예외시키겠다고 하지만 이미 양국은 지난해 쌀 수출입과 관련한 협상을 이미 진행 한 바 있다.

정부 국책연구원인 한국농촌경제원의 자료에서도 한미FTA가 타결 될 경우를 전제로, 관세를 완전히 철폐된다면 향후 10년간 감귤 조수입은 최대 2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용역자료에서는 민감 품목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관세 감축 5년의 경우 감귤 재배면적이 36%, 조수입은 61%가 각각 줄어들어 연간 피해액이 2천억 원에 달하고 연간 고용감소도 1만4천6백25명으로 추정됐다.

다른 용역자료에서는 10년 관세 철폐 시 1조 1천억, 15년 장기 철폐 시 7천 500억 정도 피해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유예나 민감품목 지정이냐는 끓는 물 속에 있는 살아있는 개구리 처럼, 언제 결정적 순간이 올지 모르나 그 과정은 서서히냐 지금 당장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지막은 이들의 ‘면담’ 그 자체이다.

그간 한미FTA 협상을 반대한 단체들은 수많은 채널을 통해 '협상 대상이 아님', ‘협상 예외’, 및 ‘유예’를 요구했다. 그 대표적인 주자들은 사실 영화인들이었다. 최종 타격의 대상도 영화인들이었고, 이후 그만큼 열심히 싸웠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강행 추진했다.

4차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 공항에서 만난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해 당사자 간의 대화”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제안은 한미FTA 개시 선언을 이전 부터 , 그리고 개시 이후에도 계속된 제 노동사회단체들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범국본 출범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근거도 비슷하다. '감귤' 농가들이 '예외'내지, '민감품목'으로 구분되지 않을 시 농가, 농민, 지역 경제가 사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지적이나, 범국본 및 한미FTA 협상을 반대하는 단위들의 논리나 같다. 한미FTA 협상은 '감귤' 뿐만 아니라 전 사회 영역에 걸쳐 그런 결과를 몰고올 것이라는 것이라고 경고했고,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공격적으로 미 협상단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의 근거는 비슷하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더욱 심각한 피해를 온몸으로 체감해야 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다. 그들의 그런 절박한 목소리는 외면한 체 의원들과 면담자리를 가졌고, 그 몇십분 되는 경험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래서 그들의 지나친 감귤에 대한 애정 표현이 불편하다. 너무나 정치적인 냄새가 짙다고 할까.

제주도의 분위기는 한미FTA에 우호적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만약 협상 첫날 이 둘이 나서서 ‘감귤’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일정 또한 어떻게 됐을 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23일 일정에서 제주도 농민들이 일부 철수 했던 것도 이런 여론만들기 작업이 효과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24일 진행된 집회에서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는 한 여성 농민은 “자신은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표현할 정도로 안도감과 다른 농민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그렇게 희망적이고 낙관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상황임을 제주 농민들은 분명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분명하다. 지역 여론이 좋지 않은 상태이고, 관련 농민들의 대규모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마책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양측 협상단 모두가 ‘뚜렷한 약속’은 아니더라도 지역 농민들이 ‘혹’할 수 있는 정치적 멘트들을 날려준 셈이다.

지역 여론 달래기에 나선 도지사와 의원들. 제주도에서 협상하려면 이정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냐는 것. 협상장을 위한 모종의 거래라 할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지역 의원들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보라 제주도를, 의원이면 양측 수석대표한테 이런 발언들을 유도해 낼 만큼, 이정도 힘은 써야 할 거 아니냐고.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확언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감귤을 예외 내지는 민감품목으로 분류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고, 고려했는데 결과가 예외 없이 관세 철폐가 됐다면 그저 ‘미안하다’가 되는 전례의 반복이 될 수 있다. 4차 협상 직전까지 정부 관계자는 '민감품목'으로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 감귤이 예외 내지는 민감품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일찌감치 그런 희망을 버려주길.

두 가지다. 도지사가 면담으로 이끌어 낼 정도의 정치력이라면 전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는 한미FTA 협상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감귤' 제외만 받아 낸다면 한미FTA 협상 진행해도 될까? 그것도 역시 아니다. 제주도 농민들에게 감귤만, 농업만 이란 축소된 범주는 없다. 한미FTA 협상은 쓰나미 같이 사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협상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협상 중단’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UR 이후에도, 수 많은 시장 개방의 의제에서 그들의 말 한마디에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순진하게 속아 왔다. 기만적인 대책 발표도 수차례 봐 왔다. 한미FTA 본질은 양국의 사회 문화적 이해를 고려한다고 해서 배려 해 줄 만큼 친절한 무역협상이 아닌 먹고 먹히는 경제협상이다. 특히 안보와 경제를 패키지로 엮는 미국과 진행하는 무역협상의 경우, 한국과 같은 조건은 더욱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김태환 도지사와 양국 협상단의 갑작스런 ‘감귤’사랑은 이런 한미FTA의 본질에 물타기 시도다. 도민 여론 달래기다. 대부분의 원정투쟁단이 24일과 25일 자신의 현장으로 복귀함을 고려할 때 감귤 농가들이 협상장으로 진격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일 뿐이다. 도지사가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책일 뿐이다. 별다른 결과가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 결과는 27일 협상 협상 보고에서 확실히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감귤 농가들 혹시 표정관리 하고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 그들이 상식이 있고 인지상정이 있다면 국민들을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먹어야 할 환경에 내몰지 않을 것이며, 4대 선결과제를 내던지며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점을 상기해 봐 달라.

말 그대로 헛된 희망을 걷고 확답을 끌어내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그들의 입만 믿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미FTA 협상 중단만이 감귤 농가도, 전체 농업도, 온 국민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을 다시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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