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차별받는 청소용역 노동자

여성연맹, 고 전영숙 씨 사망 관련 철도공사에 진상규명 요구

지난 12월 14일 오전 8시경 경인선 부천역 선로 옆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고 전영숙 씨와 관련해, 여성연맹이 한국철도공사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천경찰서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용역 노동자인 고 전영숙 씨는 13일 저녁 6-7시경 전동차에 충돌한 것으로 추정되며, 충돌 이후 부천역 선로변 풀숲에 떨어져 있다가 14시간만인 다음날 오전 8시경 선로반원들에 의해 발견됐다.

청소용역업체 (주)SDK 소속인 고인은 13일 오후 2시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경 동료들과 상하행선을 나누어 일을 시작했으나 곧바로 동인천역에서 용산역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선로에서 이같은 참변을 당했다. 최초 발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의 시신은 신발과 청소복이 벗겨지고 머리와 얼굴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고 한다.

  고인의 시신 발견 당시 사진. 고인은 사망추정 시각 14시간 후인 14일 오전 8시경 선로변 풀숲에서 옷과 신체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 사망 장소인 부천역은 쓰레기 수거장이 역 구내에 설치돼 있지 않아,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불법을 감수하고 4개 선로를 무단 횡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출처: 여성연맹 제공]

사고 현장인 부천역, 쓰레기 수거 위해 선로 4개 지나야

여성연맹은 고 전영숙 씨의 사망과 관련해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면서 철도공사의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먼저, 부천경찰서의 조사대로 고인이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한 것이라면 기관사가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바로 조치를 취했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유독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역 구내에 있지 않은 부천역의 환경 탓에 4차선에 달하는 선로를 무단 횡단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구조도 지적했다.

고 전영숙 씨의 참사와 관련해 철도공사의 안전대책 미비, 환풍시설도 없이 플랫폼 계단 참에 위치한 대기실, 용역업체 최저가 낙찰제도와 저임금 등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다시금 환기되고 있지만, 철도공사는 이번 사고가 '본인과실'이라는 입장이며, 용역업체인 (주)SDK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철도공사에서 가입한 손해보험에 따르면 사망시 정규직이 2억 원, 비정규직이 1억 원의 보험금을 받게 되어 있지만, 공사는 '간접고용이라 보상할 수 없다'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며 "철도공사는 용역업체에 가서 얘기하라고 하고 안전대책도 용역업체 책임이라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소하는 밑바닥 인생은 죽어서도 위로 못받나요"

고 전영숙 씨의 막내동생인 전영배 씨도 26일 오후2시 서울역에서 열린 '근본적인 안전대책마련 촉구 한국철도공사 규탄대회'에 참석해 진상규명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영배 씨는 "사고가 난지 2주가 흘렀는데 철도공사나 용역회사나 보상이나 안전대책은 고사하고 유감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 누님도 가정에서 소중한 사람인데, 지하철에서 청소하는 밑바닥 인생이라고 사람취급도 안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셨는데도 위로하는 사람 없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여성연맹 조합원들은 "잘릴까봐 눈치만 보고 죽어서도 인간대접 못받는다, 이대로 보낼 순 없다"며 내일도 서울역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철도공사의 진상규명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여성연맹 조합원들/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