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통계' 근거한 의료급여법 개정 철회해야”

정부, 선택병의원제 도입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을 대상으로 지정된 병의원을 이용할 때만 급여를 지원하는 선택병의원제 도입과 기존의 세대별 종이 의료급여증을 개인별 플라스틱 카드로 대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29일 입법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19일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고,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과 빈곤 관련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선택병의원제 도입․의료급여증 변경

이번에 입법예고 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희귀난치성질환, 정신질환, 만성질환 등의 질환으로 연간 급여일수가 365일을 초과한 수급권자들을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 1곳을 선택하여 이용토록 하고, 그 의료기관에 한해 의료급여를 지원토록 했다. 단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경우 2차 또는 3차 의료기관을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복합질환자의 경우에는 선택병의원 1곳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는 “2006년 1~3월 진료분 분석결과 중복처방비율이 18.5%에 이르고, 병용금기 의약품 처방 발생건수가 건강보험가입자는 1.5%인 반면, 의료급여 수급자는 8.13%에 이르는 등 중복처방, 병용금기 약물 복용으로 인해 약물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수급권자의 건강관리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선택병의원제 도입 배경을 밝혔다.

또 개정안에는 건강보험증과 마찬가지로 종이 재질로 되어있던 의료급여증을 플라스틱 카드형으로 바꿔 외관상 차이를 두도록 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건강생활유지비 선지원을 통한 1종 수급권자에 대한 소액 본인부담제 실시 △선택병의원제 도입에 따른 본인부담 면제자 여부, 선택병의원 적용 대상 여부 등의 자격 확인 △건강생활유지비의 남은 금액 확인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건강권 침해와 사회적 차별 공식화하는 조치“

이미 보건의료단체 및 빈곤 관련 단체들은 지난 달 보건복지부가 1종 수급권자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가난한 사람들의 필수적인 의료이용을 제한하여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며,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며 “노인이 많고 중증질환을 많이 가져 의료이용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의료수급권자에게 의료이용을 제한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 기존 건강보험증과 외관이 다른 플라스틱 카드형 의료급여증 도입에 대해 “사회적 차별을 공식화하는 반인권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이들은 보건복지부가 이번 의료급여제도 변경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는 건강보험대상 자 대비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총 진료비가 높은 것과 관련해 “의료급여대상자의 경우 건강보험대상자에 비해 노인인구가 3.4배, 장애인 6.1배, 정신질환자 4배, 희귀난치성질환자가 25배”라며 “만성질병, 중증질환이 건강보험대상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의료급여대상자들과 건강보험대상자들을 단순 비교한 오류”라고 지적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도 이 같은 진료비 관련 통계 오류를 인정하고, 각 언론사에 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의료급여 및 건강보험 의료이용 비교자료’ 내용을 정정하기도 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19일 본인부담제 도입과 관련해 “1종 수급권자의 1인당 진료비가 성, 연령, 중증도가 유사한 건강보험가입자에 비해 3.3배나 높다는 점에서 수급권자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의식을 갖게 하여 적정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1일 배포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보도자료.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19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통계자료를 정정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1일 배포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보도자료. 성별, 연령, 질병중증도상의 차이를 고려해 보정한 진료비 비교 자료. 건강보험가입자를 '1'로 놓고, 수급권자의 진료비와 입내원일수를 비교한 자료로 1종 수급권자의 질병건당 외래진료비가 '1.48'로 표시되어 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1종 수급권자의 1인당 진료비가 성, 연령, 중증도가 유사한 건강보험가입자에 비해 3.3배나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일 배포된 자료에서 보건복지부는 “19일 배포한 보도자료 중 ‘의료급여 및 건강보험 의료이용 비교자료’는 통계인용 과정에서 성별, 연령, 질병군에 대한 보정을 하기 전의 자료를 인용하였기에 정정한다”며 1종 의료수급권자가 건강보험가입자에 비해 진료건당 외래진료비는 1.48배 높고, 진료건당 1일 외래진료비는 1.05배, 진료건당 1일 입원진료비의 경우 1종 의료수급권자가 0.87배, 2종 의료수급권자가 0.89배로 오히려 낮게 나타난 것으로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이 근거로 제시한 통계 오류에도 불구하고, 선택병의원제와 플라스틱 카드형 의료급여증을 도입하는 내용의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료급여제도 변경을 밀어붙이고 있다.

“엉터리 통계로 빈민들 죄인으로 몰아붙이는가”

이에 대해 빈곤사회연대는 3일 성명을 내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비판의 날을 정조준했다. 이들은 “의료급여법 개정안의 근거로 활용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1인당 진료비와 질병 건당 진료비가 잘못되었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과한마디 조차 없다”며 “엉터리 통계에 근거하여 의료수급권자들을 ‘도덕적 해이’에 물든 죄인으로 몰아붙이고도 이에 대한 반성은 커녕 뻔뻔하게 개악안을 밀어붙이는 행태를 자행하면서도 어찌 국민들의 삶과 복지를 책임지는 주무 부서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3일 논평을 통해 “유시민장관에게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을 요구한다”며 “잘못된 통계자료를 제시하여 이를 정정할 경우에는 최소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기본양식이며, 잘못된 통계자료를 기초로 입안된 정책은 포기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등 보건의료․빈곤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의료급여개악안저지공동대책위는 오는 4일 국회에서 ‘치료권 박탈인가, 의료급여 개혁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이들은 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이번 개정안을 철회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