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정치운동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넘어야"

[노동운동,어깨를펴고](4) - 산별과 지역(2)

금속 산별 완성 대대에 대한 소회

지난 12월 20일 이미 한차례 연기되었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장장 40여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금속산별 완성 대대가 막을 내렸다. 최대의 쟁점이었던 조직체계와 관련하여 한시적 기업지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안이 지역지부 또는 지역본부를 주장했던 안에 비하여 약 6대4의 비율로 통과되었다.

물론 이것을 결정하는 회의 절차나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이 결정에 대하여 ‘한시적 기업지부가 인정되는 순간 기업지부는 어떤 근거를 들어서라도 더 연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기업지부의 장기적 존속과 유지는 기업별 이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관료형 산별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가 결코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만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역사속에서 한시적으로만 인정하기로 했던 기업지부관련 규약을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도지부는 지금까지도 한시적 기업지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 결정을 기업별 노조의 장기적 존속과 그 쌍생아인 관료형 산별로 나갈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지나친 절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절망보다는 오히려 산별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번 대의원대회는 한계를 넘어 더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산별 전환이 총단결 총투쟁을 통한 계급의식의 확장 속에서 이루어지기보다 거의 ‘묻지마 산별’의 기치 속에서 산별 총투표에만 매달렸던 작년 상반기 금속연맹의 사업은 기업별 노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어디에도 보여 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40%에 육박하는 지역지부에 대한 찬성률은 또한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것을 정파적 이해관계로만 바라보는 것은 대의원들의 의식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직까지 현장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단초라고 생각된다. 바로 금속 대의원들은 집행부에 의해 지명되거나 또는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현장 조합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의원이라는 점이며 이들은 현장조합원들의 잠재적 지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금속노조 대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수의 대공장 소속 노조 대의원들 역시 산별노조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산별 대의원들의 높은 계급의식이 정파적 이해를 뛰어넘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지향이 단지 지역지부에 대한 찬성만이 아니라 소수자 할당제, 배치전환이나 현장 통제와 관련한 현장으로의 파업권 보장, 기업별로는 교섭권을 위임하지 않기로 한 것 등으로까지 확장돼서 높은 찬성률로 통과된 점은 이후 금속산별을 희망과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하는 분명한 근거이다.

왜 지역중심의 산별노조여야 하는가?

금속산별과 관련하여 이후에 희망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서라도 무엇 때문에 산별노조가 지역중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히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묻지마 산별’과 같이 산별 만능주의로부터 출발하는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문제라는 점이 분명하다. 지역 중심에 기초한 산별노조는 그동안 기업별노조가 노정하였던 한계를 넘어 금속노동자의 계급적 구심으로 서고자하는 분명한 문제의식속에서 제출된 것이다.

첫째, 단위사업장을 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는 지역으로부터 시작되며 중앙의 관료화를 억제하는 것도 지역이기 때문이다.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체계가 처음부터 한계를 노정한 것은 아니었다. 87년 대투쟁 이후 전국에서 들풀처럼 번져갔던 민주노조는 물론 그당시 노동법제도의 틀에 기인하겠지만 대부분이 기업별노조였다. 하지만 당시에 민주노조는 이런 법제도적 틀을 넘어서 단위사업장의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차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투쟁의 기풍을 만들어냈었다. 폭압적인 국가권력과 악질적인 자본가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방대나 선봉대가 지역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조직되었으며 또한 이 지역 투쟁의 성과가 지노협으로 그리고 전노협으로 모아졌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에 이런 민주노조의 연대와 단결을 깨뜨리기 위하여 자본은 신경영전략으로 대응하였으며 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여 현장에 대한 공격과 함께 지불능력을 근거로 노동조합의 투쟁을 관리가능한 경제투쟁으로 가두어두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대기업 노동조합은 누가 집행부를 장악하던지간에 적당한 실리의 보장과 함께 임단투가 마무리되는 것이 거의 공식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97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통과된 이후 사업장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증가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정규직으로 한정된 기업별노조는 자본의 차별화 전략에 대해서 의미있는 대응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을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 정도로 사고하였으며 그결과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를 위하여 적극적 연대와 단결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90년 이후 기업별노조의 투쟁은 자본의 입체적 공략에 막히면서 기업별 노조주의라는 실리주의와 정규직 중심주의라는 쌍생아를 낳았던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투쟁이 기업별 노조주의를 낳았던 물적 토대였다면 기업별 노조주의는 기업별노조를 더욱 강고하게 유지시키는 이념으로 작동하였다. 87년 이후 노자투쟁의 대리적이며 상징성을 갖고 있었던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결국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사측의 구사대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기업별노조의 투쟁과 기업별 노조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재생산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에 다름 아니다.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노조주의를 넘는 길은 무엇인가? 본인은 산별노조가 유일한 극복 대안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산별노조가 노동자 투쟁을 발전시키는 계급적 구심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또 한 측면에서는 지나친 중앙 집중성 속에서 아래로부터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는 관료형 산별로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유럽식 산별의 모델에서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직형식만을 놓고 보았을 때 산별노조를 넘어서는 조직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조직 구성만을 보았을 때 한국의 기업별노조나 서구에서 산별노조의 전신이었던 직종별노조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별노조가 정규직으로 한정된 노조였다면 직종별노조는 숙련공으로 한정된 노조였던 것이다. 산별노조는 정규직이던지 비정규직이던지 숙련공이던지 비숙련공이던지를 가리지 않으며 해고자와 이주노동자 등 소수노동자까지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기업별 노조에 비해 한걸음 진전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곧바로 산별노조에 걸맞는 투쟁과 계급의식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산별노조라고 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면 그에 걸맞는 계급적인 투쟁을 조직해야만 산별노조에 걸맞는 토대의 구축과 함께 계급적 의식 역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에 걸맞는 산별노조를 구축해야 할뿐 아니라 서구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계 역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지역에 중심을 둔 산별노조이다.

지역 중심성은 87년 이후 노동자 투쟁과 함께 지노협,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구심이었기 때문에 다시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며, 지나친 중앙 집중성속에서 관료화된 서구의 산별노조에 비해 지역으로의 권력 분산속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촉발할 수 있는 의미있는 거점이기도 한 것이다.

둘째, 지역중심성속에서만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재 금속노동자 170여만 명 중에서 조직된 노동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합쳐도 30만이 채 안 되며 비율로 보았을 때 18%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 내면을 보게 되면 300인 이상의 사업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 노동자들에 이르게 되면 조직률은 극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내용으로 보았을 때에도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기업별 노조의 임단투는 더 이상 전체 금속노동자의 계급적 대표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차원에서 이를 극복하여 명실상부한 계급적 대표체가 되기 위해서는 미조직 비정규 사업을 다음과 같이 전국과 지역 수준에서 전개해야 한다.

전국 차원에서 산별 협약을 미조직된 사업장에까지 적용하기 위한 투쟁을 비롯하여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삼권 쟁취 투쟁, 산별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원청사용자성 인정투쟁등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조직화와 관련해서는 기업별노조로 조직해들어갔던 기존의 관행을 깨뜨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해들어가야만 효과적 조직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별 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았을 때 일정정도 규모 이상이 되어야만 효과적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중소 영세 비정규 사업장의 노동자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체계하에서는 위력적으로 조직되어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역을 기초로 한 일반노조나 금속노조등의 조직화 방식이 곳곳에서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커다란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에 걸맞는 인력이나 예산이 투입되고 또 대규모적인 사업계획과 실천이 전개되어야 했지만 거의 대개가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인력과 예산을 집중하여 산별 지역 지회나 일반노조 등의 형식으로 조직화를 진행하였을 때에만 현재의 수공업적인 조직화를 넘어 실재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하는 유력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셋째, 노동조합운동을 넘어 정치세력화 및 정치적 노동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방식 역시 현장 -지역으로 나가는 흐름이어야 한다.

산별노조는 단위 사업장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에서 나아가 전체 사회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활동과 투쟁에 적극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기업별노조를 골간으로 하면서 업종을 중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연맹체에서는 조합주의적 정치활동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또한 현재의 기업별노조는 일상적 정치활동속에서 정치의식을 성장시킬수 있는 틀이 되지 못한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수차례 진행된 바 있는 정치 총파업이 지속적인 축적구조 속에서 일상적인 정치활동으로 발전하지 못한채 일회적인 투쟁에 그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단투나 현장투쟁으로 표현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경제투쟁이 사용자나 사용자의 대리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현장의 관리자에 대한 대항관계에서 발전해나가듯이 정치운동과 정치투쟁은 정치권력에 대한 대항관계 속에서 발전해나간다. 정치권력은 현재 노동조합 체계와 같이 산업, 업종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골간으로 하여 전국으로 집중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운동이 정치 권력에 대한 대항관계로부터 발전되는 것이 역사적 흐름이라면 노동자의 정치활동 역시 현장으로부터 지역으로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며 이로부터 정치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축적구조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지역에 근거한 정치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임금에 머무르지 않고 단협과 관련하여 생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영역을 점점 더 확대해나가고 이를 현장투쟁으로 적극 추동해들어가야 한다. 배치전환, 비정규직채용, 생산라인 이전 등에 대한 개입의 확대를 둘러싼 현장투쟁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장투쟁이 곧바로 정치투쟁으로 상승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투쟁은 정치권력에 대한 목적의식적인 대항관계 속에서 이를 투쟁으로 전개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지역에 중심을 두고 있는 산별노조야말로 일상적 정치활동을 통해 정치적 성과를 축적할 뿐 아니라 전국적 수준의 투쟁을 지역 민주노총과 힘있게 추동해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정치운동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정치조직과 결합의 수준을 높여나가는 문제이다. 산별노조가 대중조직인 이상 정치활동과 관련해서는 정치조직의 선도와 추동이 필요하다. 산별노조가 의미있는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만의 배타적 지지를 넘어 여타의 정치조직과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지역차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역 중심의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금속산별노조의 탄생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시적 기업지부가 정말 한시적으로 끝나게끔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영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산별노조 내부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한시적 기업지부로 끝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중심성의 산별 사업을 끊임없이 추동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대공장의 인력과 재정을 지역으로 이전될 수 있도록 강제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산별완성위 회의나 대의원대회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강력한 내부의 반발에 부딪칠 것이 자명하다. 이 반발을 뚫고 올바른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집행권력을 포함하여 모든 사업과 관행에서 철저한 혁신이 필요하다.


산별노조가 혁신인 것만큼이나 이를 추진해나갈 수 있는 주체 역시 내부에서 온갖 낡은 관행과 사고, 행동에 맞서 철저한 내부투쟁을 전개하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산별노조를 세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지역 중심성에 입각한 금속산별을 세워내기 위한 주체의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획] "노동운동, 어깨를 펴고"

1회차(1월10일) 시론 : 노동운동의 의제설정 과제
2회차(1월10일) 산별과 지역(1)
3회차(1월11일)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이후 대응
4회차(1월12일) 산별과 지역(2)
5회차(1월15일) 민주노총 연대운동 짚어보기
6회차(1월16일) 사회연대전략 어떻게 할까
7회차(1월17일) 연금 개악 대응은
8회차(1월18일)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교섭 전술이 남긴 것
9회차(1월19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10회차(1월22일) 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현장을
덧붙이는 말

김혁 님은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