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죄' 진 이들의 자화상

[현장] 성수1가동 세대위 사무실 철거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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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점퍼에 군화를 맞춰 신은 유난히 덩치가 큰 청년들은 연신 주먹과 발길질을 하며 외쳐됐다.

“끌어내, 밟어, 죽여... XX년들이..”

용역철거반원들에게 머리를 잡힌 채 세입자대책위원회사무실에서 질질 끌려 나오던 한 할머니는 울부짖었다.

“우리가 집 없는 죄 말고, 무슨 큰 죄를 졌다고 이러는 겨”

어디나 그렇듯 쫒아내려는 자들과 남아 살고자 하는 이들의 투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또 늘 그렇듯 이런 싸움은 대개 승부가 정해져 있다.

“때리지 말라”고 소리치는 할머니, 두들겨 패는 용역철거반원들

  철거용역반원들이 세대위 옆 건물 옥상에서 소화기를 뿌리고 있다. 이날 세입자들은 화염병을 비롯해 화재발생의 우려가 있는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1층 대문이 열리고 있다. 세입자들은 2층과 3층에서 계속 물을 퍼붓고 있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위에 세입자들이 물 바가지를 들고 용역철거반원들을 막고 있다

9일 성수1가동에 위치한 성수1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세대위) 건물. 3층 주택인 이곳은 민간업체의 재개발로 갈 곳이 없어진 세입자 19세대가 사무실 겸 공동생활공간으로 쓰고 있는 집이다. 옥상에는 15미터 높이의 철탑이 세워져 있다.

오후 2시 35분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용역철거반원 300여 명이 대문을 부수기 위해 달려들었다. 세대위 옆 건물 옥상에서는 용역철거반원들이 세입자들을 향해 소화기를 발사한 후 물대포를 쏘아댄다. 각 층에 머물고 있던 세입자들은 물과 ‘똥물’을 뿌려보지만, 역부족이다.

대문 옆 담장에 바리케이트로 놓아두었던 폐가구들이 10여 분 만에 치워지고, 용역철거반원들이 담을 넘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계단에 서서 대문을 ‘사수’하던 할머니들이 용역철거반원들에게 연신 두들겨 맞는다.

용역철거반원들은 닥치는 대로 세입자들을 마구 때린다. 할머니들이 “우리가 물 뿌린 거 말고, 뭘 했다고 이러느냐”며 “때리지 말라”고 소리쳐보지만 소용없다. 실신을 했는지 사지가 들린 채 끌려나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세입자들이 바깥으로 끌려나왔지만, 용역철거반원들의 폭행은 계속된다. 용역철거반원들은 이들을 한 데 몰아놓고, 무릎을 꿇고 앉게 한다. 몇몇 세입자들이 끝까지 항의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발길질뿐이다.

  한 용역철거반원이 세입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세대위 건물에서 끌고 나오고 있다


  완전히 바깥으로 끌려나온 세입자들에 대한 폭행도 이어졌다. 한 할머니가 세대위 건물 바깥으로 끌려나온 후 머리채를 붙잡힌 채 뒤로 끌려가고 있다

“차라리 포기하기를...”

용역철거반원들은 건물 1층 내부 창문과 집기 등을 다 부수고, 2층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부수기 시작한다.

‘저 문이 열리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차라리 세대위사무실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나오는 게 죽지 않는 길처럼 보인다.

  2층 출입문을 부수고 있는 용역철거반원들

이번에도 채 10분이 안 지나 출입문이 열렸다. 용역철거반원들이 진입하고, 또 다시 아수라장이 된다. 2층에 머물던 20여 명의 세입자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머리채를 잡힌 채 계단으로 내려온다. 할머니들을 비롯해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계단 옆으로 용역철거반원들이 도열한 채 내려오는 세입자들을 폭행한다. 맞지 않기 위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머리를 숙인 채 세입자들이 바깥으로 끌려나온다.

  이날 세입자들의 '무기'는 물바가지가 전부였다. 옥상에서 물을 뿌리고 있는 세입자들

이제 남은 건 3층과 옥상에 머물고 있는 50여 명의 세입자들. 용역철거반원들의 살인적인 폭력 앞에서도 세입자들은 끝까지 비폭력적으로 맞섰다. 이들은 화염병, 벽돌 등을 던지거나 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과 ‘똥물’을 뿌릴 뿐이었다. 오히려 바깥에서 진입하던 용역철거반원들이 건물을 향해 벽돌 등을 던져 여기에 맞아 부상당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했다.

구타 당해 쓰러진 중학교 3학년 학생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는 용역철거반원들. 세입자들이 합판과 문짝 등으로 물대포를 막고 있다



3층 역시 10여 분 만에 진압됐고, 마지막 옥상에 남은 세입자들이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버텼다. 옆 건물 옥상에서 용역철거반원들이 물대포를 쏘고, 기다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어 옥상을 지키기도 쉽지 않았다.

용역철거반원들은 1층으로 진입한 지 40여 분이 채 되지 않아 옥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아수라장이 되고, 마구잡이 구타가 이어졌다. 박장수 세대위 위원장은 3시 15분 경 “옥상을 포기하고 철탑위로 올라가라”고 소리쳤다. 10여 명의 세입자들이 용역철거반원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철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철거하며, 철탑 꼭대기로 향했다.

한편, 이날 자신이 살던 집이 철거되어 세대위 건물에 머무르던 김 모 군(중학교3년)도 용역철거반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실신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 군에게 이날의 일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의문이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세입자라는 이유로,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고, 그것도 모자라 정체 모를 덩치 큰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현실. 이러한 폭력이 법원에 의한 법집행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하게 진행되었다는 현실.

  한 세입자가 실신한 후 용역철거반원들에게 사지가 들려 끌려가고 있다


  세입자들이 옥상을 포기하고 철탑으로 오르고 있다


  옥상에 남아있던 세입자들을 구타하고 있는 용역철거반원

경찰은 ‘수수방관’, 구청은 “책임 없다. 법원에 물어봐라”

이날 용역철거반원 300여 명의 살인적 폭력이 계속되는 동안 경찰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용역철거반원들의 살인적 폭력이 계속되던 이날 오후 2시 40분 경, 세입자들은 두 차례에 걸쳐 성동경찰서와 서울시경에 용역철거반원들의 불법적 폭력행위를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용역철거반원들의 ‘작전’이 끝난 후에야 성동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오전부터 철거현장 인근에는 경찰버스 10여 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성동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들은 용역철거반원들의 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용역철거반원들의 살인적 폭력이 시작되자, 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경찰은 이날 용역철거반원들이 세대위 건물 일대를 포위하고, 기자들과 지나가는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수수방관했다. 때문에 지역 케이블방송인 C&M뉴스 기자, 인터넷신문 민중의소리 기자 등이 용역철거반원들의 취재 방해로 현장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날 있었던 용역철거반원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해당구청인 성동구청 건축과 이재원 주임은 “당일 있었던 명도집행은 법원 주체로 진행된 것”이라며 “성동구청에는 당일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 법원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집 없는 죄 말고, 무슨 큰 죄를 졌다고 이러는 겨”

한 세입자 할머니는 묻고 있다. 이에 대해 ‘집 없는 죄 실로 크다’는 말 외에 무엇을 해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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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 철거민 , 두산 , 성수1가 ,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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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

    쓰레기같은 깡패새끼들 ㅉㅉ

  • 참나

    윗 분 // 단편적인 사진에 의한 사건의 나열만 보고서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기 있는 세입자들은 세입기간 만료로 전세금 등의 돈을 돌려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법적으로는 계속해서 저 곳을 점유할 정당한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소유자 또는 정당한 권리가 있는 제3자에게 명도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자, 소유자 또는 제3자의 신청(?)에 의해 법원의 대집행명령이 있었고, 명도의무가 강제집행 내지는 대집행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용역철거반원은 이를 실행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들을 너무 나무랄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세입자들은 법적으로는 더이상 저 땅을 점유할 정당한 권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법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세입자들이 심한 반항이 없었음에도 철거과정에서 철거반원들이 행한 심한 물리적폭력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점이며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세입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