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업체 이익 위해 생존권 포기할 수 없다”

부동산 광풍 속에 짓밟힌 세입자들의 ‘생존권’


성동구 서울 숲 인근 성수1가동. 차도를 지나 주택가가 형성된 골목으로 들어서자 악취가 진동한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크게 훼손된 건물이 없었으나, 조금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자 부수어진 집들이 흉물스레 방치되어 있다. 곳곳에는 건물잔해와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아파트 건설로 땅 값 500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치솟아

성수1가동 570번지 일대 1만 2천여 평 부지에는 ‘서울숲 두산위브’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으로 최근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민간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수 십 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세입자들에게 아무런 주거대책 없이 철거가 진행되고 있어 세입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성수1가동에 민간개발업자가 아파트 건설을 위해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때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의 토지매입과 철거를 맡고 있는 남경아이종합개발주식회사는 5년 전부터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 곳에 두산중공업의 ‘두산위브’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땅 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5년 전만 해도 평당 시세가 500-600만 원 선이었던 땅 값이, 최근에는 3천만 원 선까지 치솟았다. 그야말로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옥주들은 당연히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에 따르면 남경아이종합개발 측에 초기에 땅을 팔았던 지주들은 2천만 원을 채 받지 못했다. 이들이 땅 값을 더 받기 위해 ‘파업’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찌되었든 가옥주와 지주들은 부동산 광풍타고 한 몫 챙기게 되었으니, 민간개발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세대위, “보상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

문제는 이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거주해 온 집 없는 세입자들이다. 부동산 ‘광풍’이라고 하지만, 늘 그렇듯 있는 사람들에게는 순풍일 따름이고, 없는 이들에게만 칼바람일 뿐이다. 집주인들과 지주들은 개발로 적게는 4배 많게는 8배 이상 챙길 수 있게 되었지만, 세입자들은 보상 한 푼 못 받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세입자들은 지난 해 6월 성수1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세대위)를 결성하고, 임대주택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50여 세대가 세대위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오랜 싸움 끝에 많은 세입자들이 떠나고 이제는 19세대만이 남았다.

이수경 세대위 간사는 “남은 세입자들은 대부분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우리의 요구는 단순히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개발업체의 이익을 위해 생존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업시행사․구청, “보증금 주고 나가라는데, 나가지 않는 게 말이 되나”

그러나 이들의 ‘생존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업시행사인 지주들로 구성된 주택조합과 남경아이종합개발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보증금 외에 임대주택 마련 등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업자가 땅을 매입해 벌이는 민간개발이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할구청인 성동구청 건축과 이재원 주임 역시 “세입자들이 임대보증금을 받으면 나가야 하지 않는가? 그냥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보증금을 주면서 나가라고 하는데 나가지 않고 버티는 게 법치국가에서 말이 되는가”라며 오히려 세입자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또 이재원 주임은 세입자들의 임대주택 요구와 관련해 “구청에는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임대주택 공급은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며 공을 서울시에 넘겼다. 이재원 주임은 “구청에서는 시에다 보고만 하고, 시에서 담당한다”며 “구청 건축과는 인허가 부서지, 우리는 임대아파트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서가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인간으로서 권리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이수경 성수1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 간사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개발을 밀어붙이는 사업시행사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맞서고 있는 세입자들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지난 9일 세대위 사무실 철거과정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개발업체의 폭력적인 사업 추진에 대해서 세입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수경 세대위 간사는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구청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임대주택을 넘어서 우리는 지금 인권을 유린당하고,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며 “여기에 우리가 항의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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