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 독재유산과 유착된 한국 기업들

[인도네시아 현지리포트](2) - “군비즈니스 부패를 조장, 활용해”

민중언론참세상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일본네트워크(NINDJA; Network for Indonesian Democracy, Japan) 및 재일 연구자 이영채, 박근호 박사와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인도네시아의 한국 기업 투자 및 노동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 결과는 총 네 차례에 걸쳐 실릴 예정이다. 이번 글은 그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 인권단체인 콘트라스(Kontras)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콘트라스는 지난 몇 년간 인도네시아 군부 비즈니스와 다국적 기업 간의 관계를 조사해왔다.- [편집자주]


군의 경제장악은 수하르토 독재의 유산

인도네시아 군이 경제와 기업을 직접 장악한 것은 오래된 뿌리를 갖고 있다. 콘트라스 활동가 무프티는 인도네시아 군 비즈니스는 오래된 뿌리를 갖고 있다며, “50년대 수카르노가 대기업의 국유화를 시작했을 때, 국유화된 기업이 군대에게 주어졌고, 여기에서 군의 비즈니스가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수하르토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군이 경제를 지배하는 조직으로 커져갔고, 군이 직접 경제를 장악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하르토의 개발주의 아래서 군은 “지휘계통을 이용해 개발프로그램을 직접 집행했고, 군을 전면에 내세워 개혁과 개발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군은 “독자적인 비즈니스, 독자적으로 화폐 기능을 하는 표를 발행하고, 주차장에서 디스코텍 경영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프티는 “지금도 스라베시 군항 사령관의 정보담당 보좌관은 군 임무와 함께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보통 군을 그만두고 비즈니스에 전념한다. 지금도 그 회사에서는 군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프티는 작년 한 NGO에서 국가 채무보다 군의 재산 및 수입이 더 많은지 여부를 조사하려고 했으나 “현재까지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며 군의 재산이 추산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임을 시사했다.

독재 협력자들이 한국기업의 간부로

수하르토 시대의 행방불명자 및 탄압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왔던 콘트라스의 활동가들은 최근 한국 기업들이 군부와 밀착해 기업을 유지 확장해 감으로써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발전을 발목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콘트라스 활동가 무프티는 한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자동자 재벌의 합작법인인 K기업에서 인도네시아 군사독재 협력자들이 일하고 있다며 한국의 기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전 인도네시아 국가정보원장이자 인권활동가 살해사건의 관련자, 군 정보기관의 담당자 등 인도네시아 인권유린의 장본인들을 K 기업에서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스만은 “각 공장에 군의 사령부 관계자가 주둔하고 있어서 공장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군에 돈을 낸다. 가라오케, 축제 비용 및 수당 등을 군에 지불”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무프티는 수하르토 퇴진 이후 지방자치와 민주주의가 진행 중이지만, 중앙권력 대신 “지방권력이 착취”하는 형태로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무프티는 인도네시아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지역에서 군 및 자치정부와 유착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분쟁지역에 군을 끌어들였다는 의혹도 제기

콘트라스 활동가 이스라는 몇 년 전부터 분쟁지역에서 “어떻게 한국의 다국적기업이 이윤을 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림벌목 합판제조기업인 한국의 A기업의 사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조차도 직접 조사하는 데 여러 가지 신변의 위협이 있어 현지 단체의 이름을 빌려 가명으로 조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스라는 A기업이 분쟁지역인 파푸아의 보헨비구르 지역으로 진출했을 때 “주민과의 아무런 교섭 없이 정부와 치안부대가 주민들의 토지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파푸아 지역에는 다수의 민족그룹이 있어왔는데, 토지는 그 민족의 소유로 여겨져 왔다. 또 오랜 기간 동안 파푸아 지역에서는 자유파푸아 운동을 해왔던 '자유파푸아운동(OPM)'이 있어왔는데, 자유파푸아 운동이 있다는 것도 몰수의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이스라가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파푸아뉴기니 국경에 있던 치안부대가 A기업의 진출과 함께 파푸아 내륙지역까지 진출했다는 점이다. 파푸아 내륙지역으로 군이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이 지역에서 A기업의 한국인 직원 3명과 현지 직원 11명이 납치되는 사건이었다. “원래 이 지역에는 치안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 이후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업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군을 내륙지역까지 진출시킨 것”이다.

이 납치 사건의 범인으로는 자유파푸아 운동이 지목이 되었으나, 이스라는 이 유괴사건이 군대를 진출시키기 위한 군부의 조작이 아닌지를 의심하고 있다. “당시 유괴를 한 사람들은 파푸아뉴기니 국경지역에 있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내륙으로 들어와서 길러진 사람들이었다. 이 그룹들은 당초 인질비용을 요구했는데, 이 요구가 점점 바뀌더니 마지막에는 파푸아 독립의 요구로 바뀌었다. 이 지역에 군이 들어오는 것과 관련된 A기업과 어떤 공작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하나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이 납치 그룹들이 W라는 인물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는데, 실상 W는 마을에서 자유파푸아 옷을 입고 다니며 행정업무를 보았지만, A기업으로부터 돈과 물품을 제공받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2001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점이라고 이스라는 덧붙였다.

벌목과 이윤을 위해 마을 공동체를 파괴

콘트라스 활동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현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주중에 진행되는 종교의식에 참가하기 위해 휴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요일에 종교의식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기도 해 “신앙심이 두터운 마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벌목 등으로 인해 파괴된 산림을 재생하거나 마을 공동체에 피해를 입혔을 때 복원해 주거나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역의 토양과 전혀 맞지 않는 종을 논에 심어주고서는 주민들이 재배하지 않는다고 ‘게으름뱅이’로 현지인들을 매도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이윤을 위해 부패를 조장하고 활용
“주재원들의 매춘행위 실태도 조사해 달라”요청


콘트라스 활동가들은 조사팀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여성운동 단체들과 만나 주재원들이 여성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조사해달라”고도 주문했다. 매춘이 많은 T지역의 경우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주 고객이라며, "밤 11시 이후 외출하는 여성은 매춘부로 여겨 체포하는 법이 만들어질 정도"라며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군이 매춘의 수요가 있는 지역으로 여성들이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콘트라스 활동가들은 한국 기업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한국의 기업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사람들을 찾아서 자신의 창업과 경영의 기반으로 사용한다. 정치가가 아니면 군이다.
둘째, 노동문제를 일으킨다. 정치엘리트, 군의 사람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자보다 강하고 압력이 가능해진다.
셋째, 환경을 파괴한다.
넷째, 관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섯째, 법을 위반한다. 정부에서 의무사항으로 하고 있는 공동체의 재생문제나 세금문제를 회피한다.

끝으로 코린도 활동가들은 “인도네시아는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어가는 이행기, 과도기에 있다. 한국기업이 부패한 군과 지방정부를 지탱하고 있다. 천연자원, 환경 등 군과 관료를 중심으로 부패에 기반해서 개발을 해 나간다. 아무리 정책을 바꾸려 해도, 인도네시아의 시민들이 요청을 하더라도, 기업들은 자신의 활동을 원활하기 위해 부패를 조장하고 활용한다”고 한국의 기업들을 비판했다.

무프티는 “한국의 활동가들이 (군 비즈니스와 유착하고 있는) 한국기업에 압력을 가한다면, 콘트라스가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운동과 바로 연대하는 것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현지 한국 기업의 행태에 주목하고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덧붙이는 말

자유파푸아 운동(OPM): 인도네시아 파푸아 섬의 서쪽에 위치한 이리안 자야 지역은 1954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아래 있었으나, 1962년부터는 인도네시아가 유엔의 위임을 받아 통치하다가 1969년 무력 합병한 곳이다.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멜라네시안계에 속하는 이리안 자야 지역 주민들은 1967년 이래 자유파푸아 운동을 전개했다. 수하르토 독재 하에서 독립운동은 소강상태를 유지해 왔지만, 1975년 파푸아뉴기니가 독립하면서 무장투쟁이 본격화되었고, 1998년 수하르토 퇴진 이후 분리독립 운동이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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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 현지 한국 기업 , 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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