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에 대한 입장을 둘러싼 정치권 기류가 심상치 않다. 천정배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민생정치준비모임이 한미FTA 협상 중단을 공식 천명하고 나섰다. 또 그 강도는 약하지만, 김한길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중도개혁통합신당모임(통합신당모임)에서도 한미FTA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민생정치모임, "한미FTA 즉각 중단하고, 차기 정부로 넘겨라"
민생정치모임은 13일 성명을 통해 한미FT의 5대마지노선’, 즉 △투자자-국가간 중재제도 도입 △광우병 우려 뼈조각 쇠고기 수입 △교육과 영화·방송 등 개방 △세이프가드 등 금융보호제도 붕괴 △미국 무역구제법으로 인한 수출 피해 등을 “정부가 지켜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적 토론을 거쳐 협상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지난해 2월 3일 국민적 의견의 사전수렴은 물론 여권 안에서조차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미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고, 쇠고기 수입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미리 양보함으로써 협상 주도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미국 측이 제시하는 협상양식과 일정에 맞춰 조기타결을 서둘러 왔다”고 협상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생정치준비모임은 8차 협상 결과와 관련해 “무역구제 등 핵심쟁점의 경우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 없이 고위급회담이라는 밀실회담을 통해 이른바 ‘빅딜’이라는 형태로 내주고 퍼주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그동안의 협상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관계부처들에게조차 무리한 양보안을 압박하여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 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태도는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하는 반의회적 행태이고,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국민의 이해와 동의 없이 졸속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반민주적 행태”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협상이라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명확해야 하고, 협상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대책이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전제들이 충족된 적이 없다”며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부당함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나라와 국민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료비 지출의 증가 등 서민생활의 불안정과 양극화의 심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민생정치준비모임은 이날 한미FTA 협상의 즉각적인 중단 및 차기 정부 이양을 요구하는 한편, 한미FTA 졸속협상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연석회의’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한덕수 총리지명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통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협상을 중단시키지 않고 현재와 같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협상을 계속할 경우 국민과 함께 협상중단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정부에 경고했다.
통합신당모임, “국회 비준과정에서 철저하게 심사하겠다”
한편, 열린우리당을 떨어져 나간 또 다른 한 축인 통합신당모임 소속 의원들도 ‘즉각 중단’ 수준은 아니었지만, 한미FTA 협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집행회의에서 “국익과 국민살림에 직접 영향을 주는 FTA에서 내용보다 시한이 우선시될 수 없는 것인데도 여전히 미국에 비해 한국의 양보가 더 큰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다”고 운을 뗀 최용규 통합신당모임 원내대표는 “정부는 협상 진행과정과 그 내용에 있어서의 향후 철저한 국회 비준과정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규 원내대표는 이어 “농업과 자동차 분야 등 주요 쟁점들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협의되어 가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협상 결과에 대해 국회 비준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사하여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내겠다”고 말해 국회 비준과정에서 한미FTA협상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종걸 정책위의장도 “부정적 효과는 비교적 확실하고 구체적인 데 반해서, 예상되는 혜택은 관념적인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 분명한 사실”이라며 “한미FTA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민노, “반대여론과 지지기반 고려한 ‘면피용’”, 사회당, “차별화와 세불리기용”
범여권 내부의 한미FTA협상에 대한 미묘한 입장 변화에 대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반응은 싸늘하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범여권의 한미FTA 반대론 대두에 대해 ‘면피용’이라고 일축했다. 김형탁 대변인은 “그들이 진정으로 한미FTA 협상이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거의 타결된 상황에 와서 어렵다고 하겠냐”고 반문하며 “한미FTA를 반대하는 여론과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 일종의 면피용”이라고 비판했다.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변인도 “통합신당모임이든, 민생정치준비모임이든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화가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들의 정치적 세몰이를 위해서 이제 와서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며 “정작 그런 생각을 했다면, 초기부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최광은 대변인은 “민생정치모임 등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협상 타결이 목전에 와 있는 시점에서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들을 끌어 모아야하고, 이 점에서 민생정치모임 등을 한미FTA저지범국본 등이 적극 추동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미 열린우리당을 박차고 나간 민생정치모임과 통합신당모임의 이 같은 행보는 일면 예상된 바였다. 특히 통합신당모임에 비해 개혁성을 보다 더 내세우고 있는 민생정치모임에게 있어서는 한미FTA야말로 현 정부와의 차별성을 극대화하는 히든카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끈 떨어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과 형식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선을 긋겠다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는 통합신당모임의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미FTA 반대론이 범여권 내부에 어떤 파장을 미치고, 반대로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이 한미FTA 협상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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