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프랑스 대선, 비제도 좌파 다시 약진할까

좌파 단일후보 선출에는 실패

결선투표에 누가 진출할지 모르는 상황
중도 우파 사르코지 선두 지켜


프랑스 대선이 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2명의 후보들은 막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부동층이 42%로 이른바 빅4로 불리는 중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집권 대중운동연합),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프랑스 민주연맹), 중도좌파 세골렌 루아얄(사회당), 극우파 장 마리 르팽(국민전선) 중 누가 결선에 진출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판가름이 나지 않고 있다.

사르코지는 현재 30% 전후의 지지율을, 루아얄은 22-24%, 바이루는 19-20%, 그리고 르팽은 13-16%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4월 22일 투표를 통해 과반을 넘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5월 6일 결선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 출신의 사르코지는 프랑스 사회경제 시스템에 미국식 자유경제를 적극 도입하고 노동유연화,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 근로시간 연장, 파업권 제한, 감세 정책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도입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이민자에 대해서 강력한 제한을 해야 한다는 발언 등으로 젊은 이민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루아얄은 ‘더 공정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사회보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루아얄은 최저임금 인상, 저소득층 연금 수령액 인상, 주 35시간 노동제 강화, 임대주택 증설 등을 내세우고 있다.

바이루는 이번 프랑스 대선의 최대 변수 중 하나로, 좌와 우를 모두 불신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반사 이익을 얻으면서 등장했다. 바이루의 등장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루아얄로 사회당 내부에서는 “우파의 승리를 막기 위해 바이루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지만, 루아얄은 바이루는 “항상 오른쪽에 있었다”며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을 알려졌다.

르팽은 2002년 대선 당시 사회당 후보인 죠스팽을 제치고 결선투표에 올랐던 인물이다.

2002년 대선, 극우파의 바람과 비제도 좌파의 약진

2002년 대선은 극우파 바람과 비제도적 좌파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사회당은 프랑스 사회의 뿌리 깊은 실업문제를 비롯한 구조화된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선회한 결과 2002년 대선에서 결선진출에 실패하는 참패를 거두었다. 대신 극우파인 르팽이 막판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결선에 진출했다. 세계 언론은 이를 두고 ‘프랑스의 수치’ ‘세계인의 수치’라며 프랑스의 극우화 바람을 경계하기도 했다. 실업 등 사회 경제적 위기로 한편에서는 사회운동의 폭발적 고양이 나타났지만, 그 이면에서는 이민자 및 세계화에 대한 국수주의 바람이 거셌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은 비제도 좌파의 약진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되기도 한다.

1차 투표에서 극우파가 본선으로 진출한 것과 동시에 프랑스 3대 좌파인 노동자투쟁(LO),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노동자당(PO)이 모두 후보를 내 각각 5.72%, 4.25%, 0.67%의 지지를 얻어, 좌파 전체로 본다면 10% 이상을 확보했다. 여기에 프랑스 공산당이 3.37%를 얻은 것을 고려한다면 전체 13%를 얻은 셈이었다. 기존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을 제외하고 제도 밖에 있던 좌파들이 약진한 데에는 실업자 운동 및 반세계화 운동의 폭발적 고양이 배경라고 평가된다.

EU헌법 부결, 최초고용제(CPE)저지 투쟁의 성과
그러나 좌파 후보 단일화는 실패


19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노동자투쟁(LO)-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선거연합을 통해 5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한 성과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의 약진, 2005년 EU헌법 부결, 최초고용제 저지투쟁 승리는 비제도 좌파 투쟁의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며 좌파 단일 후보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그러나 2006년 토론과정에서 프랑스 좌파는 단일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소위 빅4 외에도 좌파에서는 마리 조르주 뷔페(공산당), 아를레트 라기에(노동자 투쟁:LO), 올리비에 브장스노(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그리고 반세계화 운동가로 명성이 높은 조세보베가 출마했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사회당의 실정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의 선회로 의미 있는 좌파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반 자유주의 연합 후보를 내는 데 실패한 것은 정치적 패배”라고 단일화 실패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단일 후보를 내는 과정에서 사회당에 대한 관계 및 참여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입장서를 통해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사회당과 공동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며 여전히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과 공동정부 또는 참여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또, 조세 보베도 단일 후보 선출과정에서 프랑스 공산당 후보인 마리 조르주 뷔페와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후보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통합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은 마리 조르주 뷔페를 대선 후보로 결정하면서 조세 보베의 제안을 거절했고,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도 “대안적 좌파가 혁명적 정당이건, 대안적 정당이건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당 없이 느슨한 네트워크만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조세 보베를 후보로 내는 것을 거절했다. 조세 보베는 지지정당 없이 일부 녹색당 좌파 및 좌파 활동가들의 지지만을 받고 있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조세 보베에 대해서도 기존 좌파 정당에 대한 “로비 압력”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민주의적 좌파 정당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는 조세보베를 후보로 선출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외에도 최저임금 문제, 핵에 대한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해 조세보베, 프랑스 공산당, 공산주의혁명동맹 간의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대선, 비제도적 좌파 다시 약진할까?

좌파 후보 통합에는 실패했지만,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을 비롯해 비제도 좌파는 이번 선거에서도 1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좌파 통합 후보를 내는 데 실패한 원인에 대해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프랑스가 “사회운동이 폭발적 양상을 띠고 있으나, 그 역사가 대단히 짧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정당정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은 동시에 지적하면서 여전히 프랑스 정치에서 비제도 좌파의 정치 세력화라는 과제가 유효함을 지적했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후보로 나선 집배원 노동자 출신의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25세 이하 유권자로부터 시라크 대통령 다음으로 많은 표를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선거 결과도 주목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비제도 좌파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적 대안으로서 좌파의 정치세력화도 다시금 탄력을 받으며, 비제도 좌파 내에서의 지각변동을 예상해 볼 수 있다.

2002년 우파정권 집권 이후, 2003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금개악저지 투쟁의 실패, 2004년의 의료보험 개악, 2005년 교육개악 등 신자유주의 공세에 연이은 패배를 경험한 프랑스 좌파가 EU헌법 부결, 최초고용제 저지투쟁 승리로 우파 정부를 코너로 몰아갔던 프랑스 좌파가 이번 대선을 통해 다시금 정치적 대안으로서 대중에게 인정을 받을 것인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