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되려면 박사학위 따지 마라?

노동부, 비정규 관련 법안 시행령 비정규직 확대만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vs “더 유연하게 만들어라”

노동부가 올 7월 시행을 앞둔 비정규 관련 법안 시행령을 20일 입법예고 한 가운데 노동계는 “노동부는 시행령을 통해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경제계는 노동계와는 상반된 입장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당초의 법 제개정 취지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에 발표한 시행령을 5월 첫째 주 경에 노, 사 등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한 후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공부 많이 하면 정규직 못 돼


노동부가 발표한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 시행령을 보면 박사학위자, 공인노무사, 변호사, 약사, 의사 등은 기간제 2년이 지나도 정규직이 될 수 없다. 시행령에서는 2년 초과해 사용해도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지 않는 ‘기간제 특례’로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 △기술사 등급의 국가기술자격을 갖춘 자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 △변호사, 의사, 한의사, 공익회계사 등 전문자격(국가자격 16개)를 갖춘 자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포함되었다.

이는 지난 13일과 16일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노사정 정책실무협의에서 제시된 정부 안보다는 그 범위가 축소되긴 했지만 노동계가 비판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성과 직업능력이 높은 전문 직종은 기간제한을 통해 보호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유연성을 확보해도 된다”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박사학위 자체가 직장에서 지위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님에도 학위 자체의 취득만으로 기간제법 보호의 필요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결국 공부 많이 하면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정규직으로 일하려면 오히려 박사학위를 받으면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는 모두 다 비정규직

또한 ‘기간제 특례’에는 정부가 복지정책이나 실업대책 등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도 포함되었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영구적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재 정부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 영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23일 사회서비스 일자리 보고회를 통해 올 해 2조 2703억 원을 투자해 20만 개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한 바 있다. 노동부가 밝힌 기간제법 시행령을 적용하면 이는 모두 영구적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지게 된다.


제조업 생산 공정까지 파견직 확대

파견직 노동자들은 더 많이 늘어난다. 노동부는 시행령이 실시되면 파견법 적용 대상 규모가 약 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종전의 26개 허용업무를 2000년 신분류에 따라 재분류했다. 이에 총 29개 업종으로 확대되었으며, 세세분류로 나누면 종전의 138개 업무에서 187개로 대폭 확대 되었다. 민주노총은 “파견법 상의 전문적 지식, 기술, 경험을 필요로 하는 업무 보다는 인건비 절감과 인력수요의 원활함을 위하 파견노동이 광범위 하게 활용되게 되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파견법 시행령은 그간 금지되어 있던 제조업 부문까지 파견직이 허용되어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산전화통신 기술공의 경우 전기전자 및 기계공학 기술종사자로 확대하면서 제조업 부분까지 파견직은 확대되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의 경우 파견이 금지되어 있지만 일시 · 간헐적 업무일 경우 6개월 한도 내에서 사용할 수 있어 기업이 얼마든지 파견 노동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비판했다.

불법파견 인정 더욱 어려워진다

한편, 정부는 파견법 시행령에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포함하려 했으나 “입법 기술상의 문제가 있어 이번 개정에서는 제외키로 했다”라고 밝혔다. 대신 노동부 · 법무부 · 검찰이 참여하는 TFT를 구성해 통일적인 ‘파견 · 도급 구별 지침’을 마련했다.

지침은 “사업주로서 실체를 갖추고 있는 지 먼저 판단한 뒤 유령회사로 판명 날 경우 사용사업주와의 직접고용관계를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기존 노동부가 노무관리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의 독립성 중 어느 하나라도 불법일 때 불법파견으로 인정해 왔던 기준보다도 훨씬 후퇴한 것으로 이는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기간제와 파견직 노동자의 무한 확대를 골자로 한 이번 노동부의 시행령에 노동계는 “비정규 법안 즉각 폐기”를 요구하며 다양한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공공운수연맹은 19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공공운수연맹은 집회에서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시도하려는 파견허용업무와 기간제법 예외조항 확대는 반드시 철회돼야 하며 더 나아가 비정규법은 폐기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와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20일,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민주노총과 사회단체들도 서명운동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 6월을 집중투쟁의 기간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