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진보대연합’ 첫 공개토론회

빠르면 26일 중앙위서 선거연합 등 안건 제출 예정

당 안팎의 최대 이슈인 ‘진보대연합’에 대해 민주노동당에서 처음으로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동당 대선준비위원회는 17일 ‘대선·총선 승리를 위한 진보대연합 실현 방안’을 주제로 당내 공식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자는 정종권 서울시당 위원장, 김인식 서울 중구 위원장, 정성희 전 기관지위원장, 윤영상 전 정책위원회 부의장,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박민웅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치위원장, 이정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정치위원장으로, 당내 조직별 입장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앞서 대선준비위원회는 위 토론자들과 두 차례에 걸쳐 비공식 대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를 맡은 김성진 대선준비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대외협력 임무 중 으뜸이 진보대연합 실현이라고 생각한다”며 “위원장직을 임명받고 중차대한 임무를 맡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그만큼 진보대연합이 당내 민감한 사안이라는 반증인 것.

“진보대연합 하다가 당이 분열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람조차 드러내고 만난 적이 없었다는 김성진 위원장은 “진보대연합 추진은 당내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며, “진보대연합과 진보진영 단일후보 실현을 위해 당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진보대연합의 필요성과 기준 및 연합 범위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진보대연합에 찬성하는 토론자들은 △진보연석회의를 통한 선거연합 △반(反)한미FTA 선거연합 △대선 공조 선언 후 정치 협상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민중참여경선제(민중경선제)’ 재추진을, 윤영상 전 부의장은 진보대연합 논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마무리 발언에서 김인식 위원장은 “선거연합의 시계는 당내에서도 안개 속”이라며 “말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정치적 의심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준비위원회는 오는 19일 열리는 비공개 토론회에서 진보대연합에 대한 초안을 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26일 중앙위원회나 다음 중앙위에서 진보대연합의 구체적인 기준과 방식을 안건으로 제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2중대당’도 검토 가능”

당내 자민통계로 알려진 정성희 전 기관지위원장은 ‘대선 승리’의 조건으로 △한미FTA 투쟁 △민중참여 △진보대연합을 내걸었다. 진보대연합에 대해서는 바람직한 방식 순으로 △ 진보신당 창당 △선거연합 △정책연합을 제시한 뒤, “올해 대선에서 진보연석회의를 구성해 최소한 선거연합 형식의 진보대연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성희 전 위원장은 “민중참여 형식의 진보대연합은 안 해도 좋다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위기고 하면 도약”이라며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에 실망하고 돌아선 국민 층을 끌어당기지 못하면 중도개혁세력과 분파들이 이른바 ‘신(新) 비판적 지지’를 앞세우며 우리 텃밭을 공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보대연합의 전제에 대해 “한미FTA투쟁을 항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모든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진보총집결에 다시없는 호재이자 진보대연합에서의 민중참여를 보장하는 유력한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단식 이후 중앙당에서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다”고 당의 소홀한 대응에 대해 비판했다.

또 “민중의 자주적 참여 방안을 백방으로 강구해야 한다”며 “최고로 좋은 것은 당대회를 재소집해 민중경선제를 힘 있게 하는 방법이지만 차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민중경선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성희 전 위원장은 진보대연합의 범주로 △신자유주의 반대 △자주적 대북정책 △제국주의에 대한 자주적 태도 △국보법 철폐 등 일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들며 “우리가 고개를 너무 세우고 눈높이를 올리면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기존 정치권이나 개혁적 시민단체는 무조건 안 된다는 자세를 버리자. 정치단체도 좌로는 사회당, 노동자의힘부터 우로는 미래구상 좌파까지 열어놓고 살펴보자”고 말했다.

정성희 전 위원장은 진보진영이 ‘공세적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며 “필요하다면 미래구상을 우리가 깰 수도 있다, 분열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이 용의주도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한다면 ‘민주노동당 2중대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18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진보대연합'에 대한 당내 관심도를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네 번이나 바꿨는데 우린 왜 안 되나”

민주노동당이 ‘당대회 재소집’을 거부하면서 민중경선제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발언 중 “답답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대선이라는 아주 좋은 시기에,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좋은 후보들이 왜 4개월(민주노동당 경선이 9월임을 두고 하는 말)이나 시간을 허비하냐. 확고한 지지기반 마련을 위해 100만 명을 대상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하자는 데 안 받으니 민주노총은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노총이 현장에서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줄 수 없겠냐’는 정종권 서울시당 위원장에 주문에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격앙된 어조로 “선거법상 현재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고작해야 후보 명함 뿌리는 것이 전부다. (민중경선제를 하면) 축제 같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데 그건 안 하고 소총 들고 선거운동을 하자니 그런 바보 같은 운동이 어디 있나”고 반박했다.

토론자 다수가 제기했던 진보대연합에 대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직접 투표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페이퍼 정당’을 만들고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당을 탈당하고 페이퍼 당에 합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개방형 경선제 부결 이후 민주노총에서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다 급선회했다”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불확실성으로 대선에 임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노총이 조합원 총투표를 두 번 치르는 와중에 민주노총이 대선에서 손가락 빨고 있는데 이것 걱정 안 하느냐”며 “현실 가능한 논의를 하자. 한나라당도 (경선 룰을) 네 번이나 바꿨는데 우리는 한 번도 못 바꾸냐”고 말해, 민중경선제 재추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편 진보대연합의 기준에 대해서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쓰면 안 된다”고 못 박으며, “신자유주의 반대 대신 비정규직법 반대와 한미FTA 반대, 한반도 평화와 전쟁반대 대신 615공동선언 이행과 같이 구체적이고 좁고 명확한 기준을 정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사회당, 노힘 선거 독립 막아야”

당내 좌파 성향의 의견그룹 ‘전진’에 몸담고 있는 정종권 서울시당 위원장은 “노동자 서민 중심의 진보적 대안을 추진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대선 공조에 나선다는 것을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연합 범위에 대해서는 ‘좌로는 사회당, 노동자의힘부터 우로는 비(非)열린우리당 개혁정치세력’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정성희 위원장 같은 분 때문에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라고 직설 비판하기도 했다.

정종권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대중들에게 알려내지 못해 ‘동반 상승, 동반 하락’했던 지지 경향에 대한 근절과, ‘진보’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집권을 위해 외부 세력을 규합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근거에서 진보대연합 지지자들과 인식을 같이 했다.

그러나 “당 독자성에 근거하지 않는 연합은 야합”이라며 “진보대연합에서 통 큰 게 단결에 적극적이고, 까다롭게 기준을 들이대면 소극적이라는 편견을 부수지 않으면 진보대연합은 안 된다”고 못박았다.

정종권 위원장은 기존 정치권에 문호를 개방해야 된다는 입장에 “과거를 불문하고 합의할 수 있는 권한은 우리가 아니라 대중에게 있다”며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과거와 단절하고 연합하는 것은 대중에게 설득력을 얻어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열린우리당과 구별되지 않는 민주노동당’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어 “미래구상에 후보가 있냐 사회당, 노동자의힘에 후보가 있냐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의미는 미래구상이 우경화돼 구여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 사회당과 노동자의힘 등 비(非)민주노동당 세력이 독립해 별도의 선거를 치르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종권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열고 대선 공조에 대한 대국민적 입장을 표명하고, 나아가 대선 공조를 바탕으로 진보 통합신당을 만들자”며 △5~6월 대선 공조 선언 △7~9월 선거연합 연석회의 구성 및 정치협상 시작 △9~10월 단일후보 조직화 과정 및 대선 대응체제 정비 등 구체적 단계를 제시했다.

  토론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당원들. 자리가 부족해 곳곳에 사람들이 서 있다.


“부잣집 망한다고 그 돈이 내 돈 되나”

당내 좌파 성향 의견그룹 ‘혁신네트워크’의 윤영상 전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토론자 중 진보대연합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윤영상 부의장은 “민주노동당 중심성 강화가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진보대연합 지지자들의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을 포섭하면 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해, 윤영상 전 부의장은 “부잣집이 망해서 불에 타는데 그 위로 돈이 허공에 날아다니는 걸 보고 ‘저 돈 내꺼다’ 하는 것처럼 도취된 생각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우리 당의 능력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어필할 기회를 포기하며 진보대연합에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는 것.

윤영상 전 부의장은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100만 표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고, 한미FTA 반대 여론 역시 한때 40%까지 치솟았지만 실제 투쟁은 뜨겁지 못했다”며 “현실을 직시하고 출발 지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10년간 쌓아온 민주노동당이라는 자산을 날리고 빈 땅에서 통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아우르는 진보대연합은 수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진정으로 한미FTA 국회 비준을 막으려 한다면 범국본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하도록 해 좀 더 많은 정치세력을 끌어당기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영상 전 부의장은 “2004년 원내진출 성공 이후 언론과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냉정한 평가 없이 무조건적인 외연 확대 논의는 되짚어봐야 한다”며 “경선보다는 본선 과정에 집중해, 모든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TV토론에서 민주노동당만의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이를 극대화시킬 세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중경선제에 대해서는 “민중경선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당원직선제를 보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며 “배타적 지지 단체와 비당원 중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국민들로 하여금 경선 과정에서 함께 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FTA 투쟁은 ‘정치적 크림’”

당내 의견그룹 ‘다함께’ 소속인 김인식 중구지역위원장은 ‘반(反)한미FTA 선거연합’을 통한 진보진영 선거연합을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이전투구와 구여권의 이합집산을 비롯해 주류 정치권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당이 진보적 대안을 요구하는 ‘개혁 염원 대중’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김인식 위원장은 ‘개혁 염원 대중’의 성격을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나 소외계층 △급진적 요소와 보수적 요소가 혼재된 채, 민주노동당과 NGO를 포함한 다양한 진보정치적 요소들을 절충한 상태라고 규정한 뒤, “정책 선전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이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과감한 전술로써 선거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도부의 정치공학이 아닌 반전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선거연합을 건설해야 한다”며 “한미FTA 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반(反)한미FTA 선거연합’을 결성하면 30~40%에 달하는 한미FTA 반대 여론을 민주노동당 지지 세력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중심성이 선거 연합의 전제조건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김인식 위원장은 한미FTA 반대 운동을 ‘케이크’에 비유하며 “한미FTA 반대 운동에는 단순히 무역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제도와 관행, 법, 경제 모델 등에 대한 총체적인 입장을 요구해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여과 기능을 하는 ‘정치적 크림’이 있다”라고 밝힌 뒤, “한미FTA 반대라는 ‘정치적 크림’으로 선거연합한 후 전쟁 문제나 민주주의 실현, 국보법 폐지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선거강령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FTA를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이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 “최근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한미FTA에 대해 과거와 다른 입장을 내놓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 반대’로 정치적 기반이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들 정치인이 대중에 유포하는 정치적 환상에 맞서기 위해, 대중과 접점을 만들어가는 취지에서 선거연합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인식 위원장은 선거연합에 대해 “성사 가능성이 높아서 시작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기대이익을 보고 출발하는 것”이라며 “대선 결과가 좋으면 상시적인 공동 전선으로 자리잡을 수 있고 재창당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운을 띄웠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민중경선제와 진보진영 선거연합이 대립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진보진영 선거연합에 민중경선제를 도입한다면 커다란 파장을 내며 진보진영 단결을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