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21일 사의를 공식 표명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사표 수리입장을 밝혔다. 유 장관이 보건복지부의 수장이 된지 1년 3개월여 만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연계해 장관직 사퇴 카드를 던진 지 한달 반여 만이다.
유시민, “장관직 사퇴, 열린우리당에 복귀하겠다”
유시민 장관은 21일 오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관직을 사퇴하고 열린우리당에 복귀하겠다”며 장관직 사퇴를 선언했다.
유 장관은 사퇴 배경에 대해 “(자신에 대한)정치적 공세가 계속 돼 복지부에 남아 있는 것이 복지정책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사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유시민 장관은 장관직 사퇴 이후 향후 거취에 대해 “장관직을 벗어나면 열린우리당 당원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밝힌 뒤 “당분간은 복지부 장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들을 담아 책을 집필하는 데 매달릴 계획”이라고만 말했다.
“간곡하게 요청드리”며 ‘명예퇴장’하는 유시민 장관
일견 예견된 퇴장이지만, 유 장관의 이번 사퇴는 전격적인 면이 없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유 장관은 여러 차례 자신이 정책 추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는 토로해왔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된 직후인 지난 달 초 유 장관은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걸림돌이 되어서 중요한 법률(국민연금법) 개정이 어렵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직 계속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겠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인터뷰 직후 유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노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책실패에 따른 유시민 장관의 불명예 퇴장을 막은 셈이었다.
그러나 유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장관직 사의를 수용해줄 것을 절차를 밟아 (노 대통령에게) 간곡하고, 강력하게 요청을 드렸다”며 “이번에는 아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사퇴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외부로부터 사퇴를 종용당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사퇴를 ‘간곡하게 요청 드리는’ 모양새였다. 때문에 유 장관의 사표가 공식 수리되더라도 이제는 정치․정책적 실패, 즉 ‘불명예 퇴장’으로 비춰지지 않게 됐다. 물러나 복귀할 분위기는 만들어졌고, 청와대는 이날 오후 유 장관의 사표 수리 입장을 발표함으로써 신속하게 퇴로를 열어주었다.
또 그간 장관의 ‘사퇴 의지’와 대통령의 ‘만류 의지’가 교차됨으로써 유 장관은 노 대통령의 적자라는 인상도 얻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지지율 30%대의 여권 내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후광을 얻는 게 곧 여의도로 돌아갈 유 장관에게도 손해될 게 없어 보인다.
“친노 완장차고 개인 이익 위해 설쳤던 유시민”
친노세력의 맹장인 유 장관의 사퇴와 당 복귀는 향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유 장관은 향후 거취와 관련해 “당분간 집필활동에 매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대권출마와 관련한 질문에 “과거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본 적이 없고, 하겠다고 말 한 적도 없다”며 “한번도 대통령되는 것을 목표로 정치해본 적 없다”고 펄쩍 뛰었다.
유 장관의 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모르는지 열린우리당 내부는 유 장관의 복귀전부터 자중지란의 기색이 역력하다.
정동영 전 의장계로 알려진 정청래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친노 완장차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설쳤던 유시민 장관”, “대통령 팔아서 자기정치를 하고 다닌다”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유시민 장관을 포함해 친노진영을 맹비난했다.
이처럼 정청래 의원이 유 장관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남북열차 시험운행 초청자 명단에 정 전 의장이 배제된 것과 유 장관의 홈페이지에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의 비난성 설문이 진행된 게 발단이 되었다.
또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대통령은 유 장관이 대선에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정 의원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정 의원은 유 장관이 스스로 대선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유장관이 99.9%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행적을 보았을 때 안 한다면 하고, 한다고 하면 안 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대선출마를 절대 안 한다고 하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처럼 유 장관의 복귀는 벌써부터 친노-반노세력 간 치열한 쟁투를 예고하고 있다.
유시민 복귀, 친노세력 핵분열의 신호탄?
뿐만 아니라 유 장관의 당복귀는 친노진영 내부에서도 주도권과 노심(盧心)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을 촉발시킬 전망이다.
친노인사 중 잠재적 대선주자인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전 경남지사 등에게 있어서도 유 장관은 경쟁상대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들 입장에서는 유 장관이 내각에 머물지 않고, 열린우리당에 복귀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이를 의식한 듯 한명숙 전 총리는 최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유시민 장관을 만났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을 계속 하고 싶어했다”며 “참여정부에서도 지속적인 장관직 수행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장관직을 더 오래하지 않을까하는 잠정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이광재 의원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 장관의 내각잔류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해왔다. 같은 친노진영이지만 이광재 의원은 유 장관과 달리 열린우리당 내에서 의정연구센터에 가담하고 있다.
이 같은 한 총리와 이 의원의 발언 때문에 유 장관의 당복귀가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난무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즉각 사표 수리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들의 전망은 그저 ‘희망사항’에 머물게 되었고, 대신 친노세력의 핵분열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리틀 노무현’, ‘노의 남자’ 등으로 불리는 유시민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다. 그가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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