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반핵평화운동만이 핵확산 막는다"

핵민족주의를 넘어 평화를 향한 연대로

한국의 사회운동이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26일부터 27일까지 서울대에서 열린 반전반핵평화 국제회의 4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이틀간의 국제회의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공동행동을 모색했다.




그 동안 한국에서 반핵 운동의 중심이 핵 발전, 핵 폐기장 저지 투쟁에 머무르면서, 핵 문제 자체를 ‘반전평화’의 의제와 직접 결합시키는 대중적 토론의 장이 열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제회의는 많은 기대를 받았다.

특히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참가자들은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서 한-일 사회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번 국제회의는 ‘동아시아의 핵 확산 방지 및 기존의 모든 핵 폐기’ 및 전쟁과 군사주의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번 회의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평화 단체인 원수폭 금지 일본 국민회의와 원수폭 금지 일본 협의회가 참가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일본 측 참가자들은 “한국에서도 반핵을 이야기하는 진보진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대단히 놀랍다”며 이후 한일 연대에 대한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조직위원회 사무국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도 “2/13합의조치가 이행된다고 해도 한반도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며,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동아시아 연대의 과제로 ‘반전반핵평화’를 제시한 것 자체가 성과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중적 반핵평화운동만이 핵을 막을 수 있어”

임필수 집행위원장은 1부 ‘동아시아 핵 위험과 반핵평화운동’의 발제를 통해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발표한 직후, “신동아 2006년 12월호가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과 일본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동맹관계 확장을 주장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한국 보수세력의 논리구조”를 설파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핵 민족주의 경향에서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다.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임필수 집행위원장은 “핵이 최소한의 억지력이자 협상용 수단”이라고 불가피하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경향에 대해서도 미국과 북한이 “핵 격차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핵에서 정의와 불의의 구별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보유가 핵전쟁을 막는 유일한 무기라는 주장은 용인되어서는 안 되며 “대중적 반핵운동이 핵을 막는다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토론 참가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상호군축 합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국 정부에 압력과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도 핵우산에서 벗어나야”
“비핵일본 선언이야 말로 최대의 국제 공헌”


일본에서온 히로시 타카쿠사키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사무국장은 “미국의 부시 정권이 핵의 압도적 우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필요한 장소에서 언제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일본정부가 걸어온 길이 일미 동맹에 기초해서 전 국토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고, 일본을 미군의 자유로운 출격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히로시 타카쿠사키 사무국장은 “비핵일본의 선언이야말로 최대의 국제공헌”이라며 8월 6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한국 활동가들을 초청하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처장은 “북핵을 핵확산 자체로 보기보다는 복잡한 국제관계속에서 특수한 한반도의 정치적 사안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핵도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이상훈 처장은 반핵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야하며, “국제적으로 평화세력은 NPT체제를 넘어 포괄적인 핵물질 통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평화헌법에 대한 급진적 확산이 필요해"

준비된 발제와 토론이 끝나자 참가자 토론이 이어졌다.

일본 측 참가자는 “일본 정부는 피폭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은 일본 국민 모두가 져야 한다며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일본 정부가 미국의 핵계획에 따라 핵우산 속에 있으려고 하는 것은 피폭국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행동”이라며, 8월 80일간 1000킬로미터를 걷는 10만 명 규모의 평화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국제회의 참가자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 평화헌법 9조 개정이 가지는 위험을 공감하고, 개헌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본 평화헌법이 가지는 의미를 각국에서 재평가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나아가 일본 평화헌법을 발본적으로 검토하고 급진화 하자는 데 공감했다.



일본 평화헌법에 대해서 급진적으로 재해석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을 한 발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김대중 정권 당시 추진되어오다 중단되었던 한미 원자력 협정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한국 내 핵재처리 시설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둘째 날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반기지 운동 등에 대한 분과별 토론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담아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참가한 활동가들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미국 등으로 제한되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자리였지만, 동아시아에서 한일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반핵반전평화’의 과제를 동아시아 지역에 대중적으로 제출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회의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국제회의가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는 한국과 일본의 사회운동에게 남겨진 과제다.

참가자들은 26일 4시부터 용산미군기지앞 집회를 가지는 것으로 국제회의를 마무리했다.

“평화체제 논의가 상층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돼”

여름(이윤보다 인간을)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 국제회의 두 번째 날 행사는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

7개의 분과회의 중 내가 들어간 한반도 평화체제 분과회의는 인권단체연석회의 반전평화팀과 사회진보연대, 일본 원수금의 주최로 25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모여 논의를 진행했다.

평화체제 분과회의에서는 2/13합의 이후 봇물 터지듯 진행되고 있는 평화체제 논의 양상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로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발제는 ‘북한의 핵위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수열 사회진보연대 활동가가, 두 번째 발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성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했다.

강성준은 이번 토론문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6자회담의 구도와 의제에 갇혀 있어, 이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의제를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평화체제 논의가 정전선언과 평화협정 등 법제도적 측면에 중점을 둔 것이나, 비핵화 논의가 한반도 비핵화만으로 축소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강성준의 발언에서 주목할 점은 현재 평화체제 논의가 국가 간 협상이나, 상층 세력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있어 대다수 민중들의 이러한 구도에 개입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는 평가이다.

강성준은 평화체제 논의의 출발은 “거창하고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나, 한국군 해외 파병 반대 투쟁, 한미합동군사훈련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등의 현실 문제와 평화체제 구상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했다.

더불어 평화체제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평화의 권리는 “협상이나 조약문구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운동 운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쟁취해야할 권리”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후지모토 원수폭금지 일본 국민회의 활동가는 최근 일본에서 진행되는 헌법9조 개악 반대운동 등 일본평화운동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교직원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한 후지모토는 60년 전 일본 교육이 전쟁수행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에 우려하며, 아베정권이 애국심을 교육조항에 넣어 정신교육을 실시하려 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해외주둔미군의 재편 전략에 호응해 미군과 자위대가 군사일체화를 추구하고 자위대를 군대화하는 일본 정부의 처사가 극동아시아의 평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평화헌법9조와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꼭 막아내겠다는 의지도 내보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온 한 여성참가자는 한일여성단체들 간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평화로운 아시아를 만들어가는 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후쿠오카와 규슈 현 경계에서 진행하는 평화도보행진의 마지막 종착지를 부산항을 지나 한국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2007년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 국제회의 공동선언문

핵과 군사패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동아시아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에 따라 한국, 일본, 미국 등의 평화운동 단체 및 활동가들이 2007년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서울에서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국제회의는 동아시아의 핵 확산 방지 및 기존의 모든 핵 폐기,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반전 운동 그리고 군사주의, 군사동맹 강화에 대하여 공동 인식 틀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동아시아 차원에서 ‘반전반핵평화운동’의 실천적 연대를 지향하고, 안정적인 소통망의 구축과 공동실천 프로그램 모색에도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번 국제회의를 계기로 평화로운 동아시아 건설을 위한 동아시아 차원의 공동 행동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동아시아 평화운동 단체들의 상호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2. 세계적 차원의 핵 폐기와 동아시아 비핵화를 위한 공동 실천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3. 동아시아에서의 핵 확산, 군사동맹․군사기지 확대, 군사주의 강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확장하고 반전반핵평화 운동의 연대를 공고히 하기로 하였다.
4. 세계 평화를 파괴하고 민중의 염원을 짓밟는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에 대한 반대와 모든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기로 하였다.
5. 동아시아 평화와 환경을 위협하고 플루토늄 확산을 초래하는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공장 가동의 전면 중단을 촉구하기로 하였다.
6. 인류와 핵무기는 공존할 수 없는 바, 피폭자들에 대한 문제 인식을 널리 확산시키고 일본정부에 대한 보상 요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7. 이상과 같은 공동행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강화 유지해 나가기로 하였다.


2007년 5월 27일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 국제회의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