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검역’의 책임을 버렸나

[한미FTA-위생검역및식품안전]① 협상 정리

식품위생및광우병안전연대, 한미FTA반대국회의원비상시국회의,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30일 한미FTA 위생 검역 및 식품안전 분야 협정 검토 결과를 분석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들은 한미FTA 협상으로 인해 국내 검역 체계가 붕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생검역 및 식품안전 분야의 협상 결과는 미국의 요구가 대거 반영됐고, 공개되지 않은 양해각서들에는 독소조항들이 즐비했다.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미FTA 협상은 한국의 검역체계를 붕괴시켜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유전자조작식품, 조류독감 닭고기, 농약 범벅 먹거리와 항생제 범벅 돼지고기가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측의 요구 일방적으로 관철된 최종협정문

25일 협정문이 공개됐다. 한글과 영문의 협정문 원문과 부속서, 부속서한이 공개됐다. 정부는 한미FTA협상과 관련한 일체의 문서를 전부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미 양측의 초기 입장을 담아 작성했던 통합협정문과, 협상 과정에서 작성된 양해각서(Understanding)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동물위생과 축산제품의 검역 조치에 관한 양해각서와 ‘위생검역(SPS) 분과’의 통합협정문이 공개됐다.

통합협정문을 비교분석한 결과, 위생검역 분과 최종협정문은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됐음이 드러났다. 단체들은 “정부가 협정문 초안과 통합협정문을 3년 동안 꼭꼭 감추어두고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통합협정문과 최종협정문을 비교해야 협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X장으로 시작하는 통합협정문은 한국 측과 미국 측의 주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목적
본 장의 목적은 양 당사국의 영토 내에서 사람, 동물 혹은 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고, [양 당사국의 SPS협정 이행을 증진하며](한국 측 반대), [양자 간의 위생 및 식물위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위원회를 제공하는 것이다](한국 측 반대)

제 [ ] 조 다른 협정들과의 관계에 부가하여, 양 당사국은 SPS협정에 따른 상호간의 현존하는 권리와 의무를 확인(한국 측 반대) [재확인](미국 측 반대) 한다.


이런 식으로 명기 돼 있다.

통합협정문에는 의견 차이가 있으면 어느 측의 입장인지 구분돼 있고, 정해지지 않은 내용들은 공란으로 표시돼 있다. 각각의 항목에 대해 한국 협상단과 미국 협상단이 어떤 입장이었고, 무슨 내용을 주장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 통합협정문과 지난 25일 공개된 협정문을 비교해 보면, 우리 정부가 각 분과와 항목별로 어떻게 협상을 진행 했는가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어느 협상단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 절충, 철회 됐는지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생검역 분과(SPS) 협정문의 분석 결과, 8개의 세부 쟁점 중에서 목적, 적용범위, 정기적 기술회의 개최 여부, 위원회 설치여부 등 6개의 쟁점은 미국 측 안이 그대로 관철됐다.

그리고 절충된 것으로 보이는 ‘동물 및 식물위생에 관한 기술회의’ 개최‘와 관련한 내용도 미국이 애초에 주장했던 ’동물 및 식물위생에 관한 기술회의의 정례화‘나 ’특별작업반 설립‘ 요구의 강도를 낮춰 절충 됐다.

제 8.3조 3-사 항을 보면, 위원회는 ”동물건강, 식물건강과 육류, 가금육 및 가공계란 제품 연례 기술협의에 관한 진전사항을 포함하여, 그러한 사안을 담당하는 양당사국의 기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위생 및 식물위생 사안을 다루는 것에 관한 진전사항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절충된 한 개의 조항도 미국 협상단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미국의 거대 축산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일방적 퍼주기 협상 이었다”는 평가는 지극히 타당하다.

  한미FTA 협정문 제 8장 '위생및 식물위생조치' 한미간 쟁점 최종 분석 결과

그나마 제 8.2조 양당사국의 권리 및 의무 규정이 유일하게 미국의 요구를 방어한 조항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미FTA 협정문의 제 21장 ‘투명성 조항’의 일반적 적용 문제를 놓고 분쟁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지속적인 개입 창구가 될 위생및식물위생위원회

한미FTA 협정을 통해 17개 가량의 부문 위원회들이 구성될 예정이다. 각 부문 위원회들이 어떤 식으로 한국 사회와 행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 8.2조 위생 및 식물위생 사안에 관한 위원회의 내용을 보면, 한국 측은 접촉창구(contact point)'를 미국 협상단은 ’위생및식물위생위원회(SPS committee)'를 주장해 왔으나 결국 위원회를 설립키로 정리됐다.

이 위원회는 협정 발효 후 45일 이내에 각 당사국 수석대표를 확인하고, 위원회의 위임 사항을 규정하는 서한 교환을 통해 설치하게 된다.

협상 초기, ‘접촉선’과 ‘위원회’ 논란을 두고, 한미FTA에서 협상 쟁점을 피하기 위한 ‘단기 협상 종결용 카드’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한 위원회 구성으로 인해 행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과 입법 권한에 대한 침해를 경고했던 시민사회단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가 구성됐고, 미국이 이 위원회를 통상현안을 해결하는 압력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위원회 설립 조항에는 위원회 구성, 권한, 역할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추후 위원회에 대한 해석과 위원회 위임사항과 권한 등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협정문에는 ‘무역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수 있는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개발 또는 적용에 관련된 사안에 관한 협의를 해야 한다’(8.3조 3-나항)고 명시하고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SPS 조치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되고, 위원회 협의가 의무 사항이 됨으로써 검역 주권이 침해될 소지가 높다”고 주장했다.

제 8.4조 분쟁해결
어떠한 당사국도 이 장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도 이 협정상의 분쟁을 이용할 수 없다.


특히 위생검역 조치가 원칙적으로는 투자자-국가 제소(ISD)로부터 예외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투자 챕터를 비롯한 다른 분야의 위반 또는 비위반 조치를 이유로 위생검역 조치가 투자자-국가 제소(ISD)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 예로 NAFTA 협정에 따라 Lindane 함유 종자 소독제 사용금지,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쇠고기 수출 금지 등의 위생검역 조치가 투자자-국가제소(ISD)대상이 된 사례가 확인됐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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