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까지도 약속한 행정부의 자신감

[한미FTA-금융서비스]② 협상 정리

정부가 공청회 논란을 뒤로 하고, 한미FTA 협상 개시을 선언한 며칠 뒤. 2006년 2월 17일 재정경제부는 자본시장통합법(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거친 뒤 6월 30일 입법 예고했다.

그리고 한미FTA 2차 협상 중인 지난해 7월 김종훈 수석대표는 ‘신금융서비스’에 조건부 합의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제한적인 수준에서 개방하자'는 원칙에 양국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금융서비스와 자본시장통합법(안)(자통법)은 같이 맞물려가는 톱니바퀴 같은 관계이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자통법’이 입법화 되면 신금융서비스의 조건이 유명무실해 진다고 지적했고, 정부가 한미FTA 협상에 얹혀 국내법 개정,폐기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미FTA협상이 종결 선언이 됐음에도 자본시장통합법(안)은 여전히 입법화 되지 않았고, 6월 임시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25일 공개된 협정문에는 ‘자본시장통합법(안)’의 입법화를 약속하는 내용의 구절이 담겨져 있다.

한미FTA와 맞물린 국내법 개정작업.. 자본시장통합법

재경부는 자본시장통합법(안)을 발표하며 금융시장의 발전의 명분을 내세웠다. 금융공공성 강화와 투기자본 규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 내용은 없었다. 정부는 ‘골드만삭스’를 예로 들며 장밋빛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선전 했다.

현행 법체계는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신탁회사 등 금융회사별로 금융 투자업을 세분화 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 투자업 상호간에는 겸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안)은 자본시장과 관련한 6개 광역 금융업의 상호 겸영을 허용한다. 말 그대로 자본시장 내 존재했던 장벽을 제거하고 하나로 통합한다는 얘기다.

자통법의 주요 내용은 △현재 자본시장의 모든 금융업 상호간 겸업을 허용함으로 ‘대형 금융투자회사’ 육성 △금융상품 포괄주의로 전환 △금유투자회사의 송금, 결제 등 부가서비스 제공 허용 △펀드 운용과 관련한 규제의 대폭 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상 M&A와 구조조정을 통한 겸업화, 대형화를 추구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정부가 난관을 봉착했다. 자통법의 증권사의 지급결제 허용을 두고 검사권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한국은행과 수입 감소를 우려한 은행들이 반발하고 나섰던 것. 결국 한국은행과 재경부가 선별적 지급결제 허용에 극적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6월초 국회 통과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사무금융연맹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입법 반대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한미재계회의나 주한미상공회의소가 제기했던 내용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5년 정책보고서 및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를 보면 △개방화된 겸업주의 금융시스템으로의 전환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환경에서 네거티브 규제환경으로 전환 △금융서비스 부문 노동시장 유연성 증대 △외국계 금융기관이 정통한 신상품 및 신금융서비스 도입에 대한 사전 승인 폐기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의한 외환거래나 파생상품 거래에 관한 제약 폐지 △노동시장 문제 해결 및 노사분쟁 축소, 규제 투명성 강화 등 경쟁 등 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 오지도 못한 내용을 ‘입법’ 약속한 행정부

한미FTA금융서비스 협정문 부속서한 ‘국경간 무역, 신금융서비스 등’에 따르면

금융서비스 이니셔티브
자국을 지역 금융허브로 확립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서 이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이 취하고 있는 긍정적인 조치를 인정하면서, 미합중국은 진행 중인 대한민국의 세 가지 주요 규제 이니셔티브를 환영하였다.

가.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예외목록 규제방식으로의 전환
나. 방카슈랑스 규제의 제2단계의 이행, 그리고
다. 보험서비스 공급에 있어 외환보유 요건의 추가적 자유화


이 조항은 사실상 정부가 미국에게 ‘자본시장통합법’ 입법 및 방카슈랑스 확대를 미국에게 약속한 결과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으로 되어 있는 금융서비스를 예외목록만 규제하는 방식(네거티브)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본시장통합법(안)을 입법화 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무역대표부가 협정문 공개와 더불어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이 방카슈랑스 개혁, 네거티브 규제 등과 같은 규제 개혁을 약속(committed) 했다”고 적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안)을 놓고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협상에 나선 행정부 협상단이 자본시장통합법(안)의 입법을 서면으로 약속 한 셈이다.

부속서 13-나(구체적 약속) 제 9절(보험의 신속한 이용 가능성)에는

미합중국은 상품신고절차에 대하여 예외목록 접근 방식(네거티브리스트 방식)에 기초한 정책 및 절차를 이 협정의 발효 후 1년 이내에 채택하기로 한 대한민국의 계획을 환영한다

마찬가지로 부속서한의 내용과 부속서의 ‘환영한다’는 내용을 고려할 때 협상단은 방카슈랑스 이행, 보험업법 개정 등 규제 개혁에 대한 약속도 구체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금융연맹은 자통법과 보험업법 개정 등 “현재 입법화 되지 않은 내용들을 가지고 행정부가 나서서 ‘입법’을 약속하는 등 국회의 입법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자통법과 함께 오는 신금융서비스

한국에서 판매되거나 거래되는 대개의 금융상품은 사실 금융주도국인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주가지수연동예금이나 주가연계증권 등의 기초적 파생금융상품 조차도 대개는 외국 금융회사가 설계한 것을 국내 금융기관이 판매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도의 수학, 통계학적인 실력 차이뿐만 아니라 금융업의 역사와 경험 등 뛰어넘을 수 없는 세월과 경험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협정문의 ‘신금융서비스’는 미국에는 있으나 한국에는 없는 금융서비스 및 상품을 의미한다. 즉 금융서비스의 모든 새로운 형태의 제공방법과 그 나라의 영역에서 판매되지 아니하는 모든 금융상품 판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타결 내용은 △상업적 주재가 있어야 하고 △상대국 법률의 제․개정을 요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며 △건별로 금융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원칙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신금융서비스 개방도 국내법 체계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즉, 새로운 법률을 도입하거나 기존 법률을 변경할 필요가 없이 자국법 체계 내)에서 허용하되 ...국내법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내법상 이를 변경하지 않는 한 추가적으로 개방할 금융상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은 “정부는 한미FTA 금융협상이 보수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는 것처럼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금융서비스 도입은 단서조건을 붙인 제한적 도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바로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입법 추진을 강행하고 있는 자통법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통합법(안)이 금융상품의 범위를 기존의 열거주의 방식에서 포괄주의 방식(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대국 법률 재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와 ‘건별로 금융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요건은 자본시장통합법(안)이 입법화 될 경우 요건 자체는 사문화 된다.

또한 ‘상업적 주재’와 관련해도 이미 상당수 미국계 금융기관, 투자 금융회사들이 국내에 진출해 있다는 상황이다. 이미 금유시장 개방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기 때문에 이 조건은 별다른 ‘제한적 조건’이 되지 못하는 셈이다.

사무금융연맹은 “추가적으로 개방할 금융상품이 거의 없다는 협상단의 얘기와 달리, 상업적 주재를 전제로 한 모든 금융사품을 다 개방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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