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교섭, 왜 중단되었나

사측과 정부의 일방적 태도가 사태의 장기화 불러

이랜드 노사의 이틀간의 교섭은 분리협상이라는 방법까지 사용해 세부적 쟁점까지 논의하려 했지만 결국 성과없이 중단되었다.

교섭 중단을 놓고 사측은 “오늘(18일) 정오까지 농성해제”를 또 다시 전제조건으로 달았지만, 노사 모두 오후 7시로 예정되어 있는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조는 이틀 동안 진행한 교섭에 성과가 없기 때문에 농성을 풀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도 쓰지 않고 있는 ‘교섭 결렬’이라는 표현까지 공식적으로 써가며 공권력 투입의 의지를 밝히는 등 오히려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어 정부의 태도가 이후 상황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홈에버 상암점 점거농성은 19일째에 접어들고 있으며, 뉴코아 강남점 점거농성은 10일째에 접어들고 있다.

사측, 점거 풀 명분도 안 주면서 '선 농성해제'만 고집

이틀간의 교섭, 왜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을까?

일단 사측이 교섭 처음부터 ‘선 농성해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문제다. 이는 노조에게 사측의 여러모로 불확실한 약속을 믿고 ‘백기투항’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아 노조로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사측은 어제(17일)도 교섭을 재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농성해제’를 들며 “농성을 풀지 않으면 불법 점거 해제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까지 밝힌 상황이다.

이런 사측의 태도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교섭의 의지가 있는가”라며 “만약 해결의 의지가 있다면 사안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되지 왜 농성해제를 조건으로 다는가”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랜드 사측은 지난 10일 열린 교섭에서도 ‘선 농성해제’ 입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교섭은 결렬 되었으며, 이에 노조가 추가 협상을 요구했지만 “농성을 해제하지 않으면 추가협상은 없다”라며 일주일 동안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

물론 점거농성을 유지하는 것은 노조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점거농성을 지속하기 위해서 노조도 현실적으로 식사문제 해결 등 많은 돈이 드는 것은 물론, 정부와 사측의 공권력 투입 압박, 그리고 거의 감금수준에 이르는 농성장 봉쇄 등으로 조합원들도 매일을 불안에 떨며 보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고 등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조합원들의 선택은 점거농성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또한 농성의 지속으로 조합원들에게 내려진 손배가압류, 징계, 고소고발 등에 대한 취하를 노조는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법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농성을 풀고 싶어도 풀 수 없는 상황을 사측이 만들었다. 이에 대해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위원장으로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 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니냐”라며 “농성을 해제하면 수십 억의 손배가압류와 징계, 그리고 해고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무슨 수로 조합원들에게 농성을 그만하자고 하겠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사측은 노조가 점거농성을 풀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농성을 풀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동안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태도 때문에 교섭은 중단을 거듭하고 있다.

사측의 교섭안, 현행대로 거나 오히려 후퇴

또한 사측이 제시한 교섭안도 그간 지키지 않았던 것을 지키겠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과도한 조건을 걸고 있어 노조는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코아 사측은 노조에게 “외주화를 중단하겠다”는 전향적인 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까지 “계산원 업무에 대한 외주화는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등 대규모 외주화에 대한 반대 여론의 압박이 사측을 물러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안은 전향적인 안이 될 수 없다. 사측은 ‘1년 유예’라는 전제조건과 이를 위한 정규직의 임금 삭감 등의 고통분담을 노조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측은 일단 현재 진행 중인 외주화는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외주화는 지난 4월, 1년을 단위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 기간이 끝나야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사간 신뢰가 깨질대로 깨진 상황에서 ‘1년 후의 약속’을 믿으라 한다면 노조가 이를 그냥 받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새로 여는 홈에버 광주의 경우 관리직원 몇 명을 제외하고 거의 전 직원을 외주로 뽑겠다며 외주화 추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는 더욱 ‘1년 후의 약속’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외주화 중단이 아니라 오히려 외주화가 일 년 연장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홈에버의 경우 노조는 3개월 이상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과 24개월 이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18개월 이상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약속한 것이어서 노조 입장에서 이를 진전된 안으로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사측은 “단체협약에 대한 해석이 다르지만 일단 수용하기로 했다”며 일정 양보한 안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단체협약에 대한 해석은 작년 10월, 홈에버가 21개월 근무한 노동자를 해고한 것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결을 함으로써 이미 법적으로 보장된 바이기도 해 설득력이 없다.

또한 2003년부터 규정되는 인사규정에는 네 번째 계약자로서 15개월 또는 21개월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고용보장을 하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한때 사측은 이 규정을 모른다고까지 했으나 결국 시인하는 과정도 있었다. 결국 홈에버 사측은 그간 지키지 않았던 것을 지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랜드 사측은 전향적이라고 하는 안도 수많은 전제조건으로 전향적이라는 의미가 ‘퇴색’된 안을 제시하거나 이미 지켜야 했을 약속을 이제 와서 지키겠다고 하면서 이를 노조에게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이 모든 논의의 전제조건에 ‘점거농성 해제’라는 불가능한 안을 제시하고 있어 교섭을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태악화의 한 몫한 정부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중재는 중재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분위기다.

어제 교섭 중단 직후 정부 브리핑에서도 “노조가 농성을 유지하며 고용보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섭이 ‘결렬’되었다”라며 노사 양측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결렬’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노조 측으로 돌리고, 오늘(18일) 오전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공권력 투입 임박을 시사했다.

이런 정부의 태도를 노조는 ‘명분쌓기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몇 차례에 걸쳐 이랜드 노사의 교섭 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측의 교섭안을 먼저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사측과 미리 교섭안을 만들어 이를 언론에 알리고, 이후 교섭이 중단되면 “사측은 양보를 안해 교섭이 결렬되었다”라는 발표를 하고 이를 구실로 공권력 투입의 명분을 만든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오전 브리핑을 통해 “사측이 양보를 했으니 이제 노조측이 양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불행한 사태(교섭 실패)가 일어날 경우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음”을 밝혔다.

결국 이번 사태는 사측의 양보 없는 교섭 태도와 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공권력 투입 등으로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점거농성은 더욱더 장기화되거나, 더 많은 비정규직의 투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