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는 이랜드 사무실이 없다

[이랜드 홍콩통신](3) 홍콩에서의 첫 아침, 그리고 노동절

오도엽 작가는 4월 30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과 함께 이랜드 홍콩법인 홍콩증시 반대 홍콩원정투쟁을 떠났다. 오도엽 작가는 오는 5월 7일 귀국하기까지 홍콩에서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민중언론 참세상'에 매일 전해올 예정이다. -<편집자 주>

홍콩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이랜드 홈페이지에서 나와 있는 홍콩 사무실 주소를 들고 찾아 나섰다. 홍콩노총의 도움으로 쉽게 나탄로(NATHAN ROAD)에 있는 빌딩을 찾을 수 있었다. 건물에 들어가 1106호를 찾았다. 안내판에는 1106호에 이랜드는 없고 다른 업체의 이름이 적혀 있다. 경비실에 문의를 했더니, 이랜드를 모른다고 한다. 홍콩에 이랜드는 없다?

사회진보연대의 한지원 씨가 11층으로 올라갔다. 1101호부터 차근차근 찾아보았다. 1105호에서 찾기를 그만두어야 했다. 1106호로 추정되는 곳은 간판도 없이 복도에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안내판에는 1106호에 이랜드는 없고 다른 업체의 이름이 적혀 있다. 김석원 뉴코아 조합원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홍콩증시에 상장을 하겠다는 이랜드는 홍콩에 아예 사무실이 없거나 아니면 숨어 있는 것이다. 박동식 서비스연맹 대협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음모를 꾸리기에 거짓 주소를 홈페이지에 올려 논 것일까. 무엇이 두려워 숨어서 지내는 것일까. 발길을 돌리는 홍콩원정투쟁단 선발대는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국내에서 불법 카드깡을 하고, 재고 상품을 신상품으로 속여 파는 기업인데, 국외에 나온다고 달라지겠어요. 국내에서 자금줄이 딸리니 해외 투자자들을 속여 자금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졌는데 막상 홍콩 사무실 주소마저 속이고 있는 것을 보니 의심이 확심으로 바뀌네요. 페이퍼 콤퍼니들이 쓰는 수법이잖아요.” 김석원 뉴코아 조합원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이랜드 홍콩증시 상장 주관사가 있는 국제금융센터를 들려 바쁘게 노동절 행사가 있는 빅토리아 공원으로 갔다.

3년 전, 농민들과 함께 WTO 반대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던 장소다. 홍콩노총 주관의 노동절 집회는 동남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복장도, 피부색도, 언어도, 노래도 다양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외쳐도 좀체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지지 않았다. 광둥어와 영어로 집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집에 입주하여 가정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휴일에는 갈 곳이 없다. 휴일에는 일하는 집에 있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시내 중심가 건물 아래 박스를 깔고 모여 앉아있다.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빅토리아 공원에 도착한 원정투쟁단은 준비해온 선전물을 집회장 주변에 설치하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준다.

  빅토리아 공원에 도착한 원정투쟁단은 준비해온 선전물을 집회장 주변에 설치하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준다.


중국에서는 이랜드가 고급 브랜드로 수백군데의 매장과 백화점에 입주를 하고 있어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홍콩시민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홍콩노총의 노동절 집회가 오후 2시를 넘게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한국에서 이랜드 노동자가 왔다며 입을 연다. 한국이라는 말에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류열풍과 WTO 때 한국 농민이 보여준 감동의 기억 때문일 거라고 홍콩노총 후이 시오 레잉 조직간사가 박수의 의미를 설명한다. 무대 왼쪽 편을 가리키며 한국에서 이랜드 그룹이 보인 반노동자 정책의 선전 부스가 설치되었다고 하자 이랜드 선전물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노동절 집회의 첫 발언도 이랜드 원정투쟁단에게 주어졌다. 대표로 김석원 뉴코아 조합원이 올라갔다. 밤새 준비한 영어 연설문을 읽었다. 이랜드 노동자의 지난 300일의 투쟁과 이랜드 그룹의 반노동자 정책과 홍콩증시 상장의 부도덕성을 고발하였다.

  노동절 집회의 첫 발언도 이랜드 원정투쟁단에게 주어졌다. 대표로 김석원 뉴코아 조합원이 올라갔다. 밤새 준비한 영어 연설문을 읽었다.

집회 사회자는 한국농민들이 전수한 사박자 구호 외치는 법을 참가자에게 가르쳐준다. 또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동지가’를 부른다. 홍콩 노동자와 한국 농민이 맺은 인연은 이랜드 노동자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농민들과 삼보일배를 하던 거리에서 노동절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행진을 한다. 경찰이 쳐둔 폴리스라인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평화행진이다. ‘최저임금 제정하라’를 외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고스란히 배여 넘친다. 홍콩노총이 당면한 최대 이슈는 이주노동자를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홍콩 정부에 최저임금을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게 압력을 넣는 것이다.

행진의 마지막도 홍콩중앙정부청사 앞이다. 참가자들은 평화적으로 청사의 정문을 통과하여 건물 앞 공터에서 마무리 집회를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건물 바로 앞인데 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 경비 업무를 맡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노동자에게 정문을 열어주고 마당을 내어주다니. 오성기가 새겨진 건물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오늘 한국에서 진행될 노동절 행사가 궁금해졌다. 행진을 불허하니 어쩌니 하던 출국 전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최저임금 제정하라는 홍콩노총의 중심 구호 꼭 뒤에 따라가는 구호는 ‘이랜드노동자를 지지한다’다. 이 구호가 외쳐질 때 전 세계의 노동자는 하나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달라도, 언어는 달라도, 조직은 달라도, 노동자의 마음은 하나라는 생각이다. 일하는 사람만이 일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피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행진의 마지막도 홍콩중앙정부청사 앞이다. 참가자들은 평화적으로 청사의 정문을 통과하여 건물 앞 공터에서 마무리 집회를 한다.

마무리 집회에 현수막을 들고 원정투쟁단이 단상에 올랐다. 연설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홍콩 노동자들도 함께 불렀다. 언어는 달라도 박자는 꼭 맞았다. 노동자의 마음처럼.

이 날 원정투쟁단은 현수막을 펼쳐들고 거리행진 대오의 맨 뒤에 섰다. 홍콩노총과 홍콩 NGO 단체 사람들이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였다.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눈은 원정투쟁단의 현수막에 유독 오래 머물었다.




노동절 집회를 마치자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RE)의 회원들이 함께 하는 자리를 갖자고 요청을 했다. “지난 번 한국농민들이 보여준 이상의 감동을 이랜드 노동자들이 꼭 홍콩에 남겨주고 가세요.” 한 회원의 말은 아직 이랜드 홍콩 사무실의 위치조차 알아내지 못한 원정투쟁단의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숙소에 돌아오니 밤 열 시. 오늘 오전 11시부터 꼬박 8시간을 걷고 난 뒤에서야 저녁을 먹었다. 회의를 마치니 밤 열 두시. 등을 바닥에 눕히자마자 모두들 코를 곯기 시작한다. 5월 2일 내일은,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은 홍콩노총과 오전에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시민 선전전을 할 예정이다.

“이랜드는 사무실마저 전 세계 사람을 속이고 있지만 더 깜짝 놀랄 방법으로 이랜드의 부도덕성을 파헤쳐 폭로하겠다”는 모종(?)의 방법을 세운 원정투쟁단의 계획이, 이 새벽 무척 궁금하다.

이랜드의 기업이념은 나눔, 바름, 자람, 섬김입니다. 바름은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이 지름길입니다. 기업은 반드시 이익을 내야하고 그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정직해야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거짓된 사무실 주소를 버젓이 홍콩 사무실이라고 내세우는 이랜드는 자신의 기업이념조차 스스로 뒤집는 일을 하고 있다. 홍콩증시에 상장하는 진짜 이유가 진짜 궁금하다. ‘이랜드가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망신살을 뻗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던 김형근 서비스연맹 위원장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