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 촛불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쇠고기 협상, 180도 말바꾼 한국 정부

강기갑 자료공개, "작년 9월 '위험하니 연령 제한' 방침 정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에 따른 논란이 거센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여부 등에 대한 한국정부의 최근 주장과 달리, 정부 역시 지난 해 "30개월령 미만 소로 제한하고, 모든 연령에서 7개의 SRM 부위를 제거한다"는 협상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5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부 측 자료 4건을 공개했다.

강기갑 의원이 이날 공개한 자료는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위험통제국 판정 결정을 내린 이후 농림부에 의해 작성된 자료다. 이번 자료에 대해 강기갑 의원은 "미국과의 협상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 측 전문가들과 농림부 검역당국자들이 기술적.과학적으로 검토한 자료 및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정부, "30개월령 미만조차 위험하다"더니..

이날 공개된 정부 측 자료를 보면, 한국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안정성 여부 등에 대해 현재 입장과는 180도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우선 지난 해 9월 12일 농림부는 축산국장 주재 하에 검역검사과장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 11명이 참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 대비 제2차 전문가회의'(전문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 농림부 축산국이 제출한 자료('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응방안 검토')에 따르면, 당시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과 관련해 △30개월령 미만으로 제한 △30개월령 미만에서도 7개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모두 제거 △위와 창자 등 내장 전체를 수입금지해야 한다고 현재 나온 협상 결과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30개월령 미만으로 제한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의 사료금지 조치는 특정위험물질을 비반추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지 않아 사료의 교차오염이나 재순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며 "광우병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30개월령 미만 조건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SRM의 허용 범위와 관련해서도 농림부는 "광우병(BSE)의 잠복기가 길고 소비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의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7가지 부위) SRM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협상 전 "치아감별법 오류 있다".. 협상 후 "나이 확정에 문제없다"?

특히 당시 농림부는 "한국민의 인간광우병(vCJD) 감수성이 높은 유전적 특성을 고려해 현행 수입위생조건에서 SRM으로 규정한 등뼈 등 7개 부위를 (국민들이) OIE 기준과 관계없이 모두 SRM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OIE 기준에서는 30개월을 기준으로 SRM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30개월령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나, 치아감별법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히고 있다.

이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백인보다 인간광우병에 더 취약하다'는 주장을 농림부도 사실상 인정하고 있었고, 소의 월령 감별에 있어서의 오류 문제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농림수산식품부(농수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 2일 인간광우병에 대한 한국인의 유전적 취약성 문제에 대해 "소에게 감염되는 광우병이 사람에게 감염되려면 소에게 감염되는 경로나 감염량이 다르며, 소보다 많은 양의 SRM을 섭취해야 한다"며 "안전성이 확보된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인간광우병이 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또 월령 감별 문제와 관련해서도 농수부 등은 "치아감별법은 통계적으로 매우 신뢰도가 높고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방법이므로 소의 나이 확정에 문제가 없다"고 '치아감별법은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협상 전 "연령 제한, 과학적 근거 있다".. 협상 후 "과학적 설득력 없다"?

비록 지금은 그 입장이 달라졌지만, 농림부의 의견에 따라 당시 제2차 전문가회의에서는 "월령에 있어 30개월 미만 조건을 고수하고, 모든 연령에서 7개 SRM 부위를 제거"하기로 협상 대응방안을 결정했다.

특히 농림부 축산국 가축방역과가 작성한 '제2차 전문가회의 결과보고' 문건에는 "BSE 연구결과 등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30개월 미만 주장이 가능하다"며 '연령 제한' 주장의 과학적 타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이상길 농수부 축산정책단장은 정부가 수입위생조건을 30개월령 이상 소까지 대폭 확대한 이유와 관련해 "과학적 근거나 기준에 따라 협의가 진행되다 보니 우리 측 주장이 설득력이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이 문건에는 "일부 전문가는 현행처럼 살코기만 수입허용 시 30개월 미만 조건을 유지하고, 갈비뼈 등을 허용할 경우에는 24개월 조건 주장을 건의하기도 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보다 '강경한' 의견도 명시되어 있다.

농림부는 같은 달 21일에 진행된 제3차 전문가회의에서 역시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안정성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지 못하였다"고 재차 강조했고, "30개월 미만의 척수에서 프리온이 검출되었음을 고려할 때 30개월 미만 소의 척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정부, 8개월 만에 "과학적 근거 없이 안정성 제기돼 안타깝다"?

강기갑 의원이 이날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불과 8개월 만에 자신들이 직접 주장했던 내용과 그 근거들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지난 달 18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밝힌 협상 결과는 연령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었다. 또 SRM 수입 제한도 30개월령 이상 소만 7가지 부위를 제거하고, 30개월령 미만 소의 경우에는 편도와 회장원외부(소장 끝 부분)만을 제거하는 것으로 협상은 타결됐다.

협상 결과를 브리핑한 민동석 농수부 농업통상정책관은 "SRM만 제거하면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과학적으로도 그렇게 얘기되고 있다"며 "수치로 얘기한다면 99.9% 이상의 안정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또 지난 2일 정운천 농수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일부에서 확실한 과학적인 근거 없이 제기하는 안전성에 관한 문제들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재개) 합의는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의거해서 이루어졌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 당국이 불과 8개월 전까지 스스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안전성 문제를 제기해 놓고, 이제 와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돌연 쇠고기 협상방침 후퇴한 이유는?

이번 쇠고기 협상 결과와 관련해 강기갑 의원은 "지난 해 우리 측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정부가 결정한 협상방침이 결국 크게 후퇴한 것은 누군가의 정치적 판단 속에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한미FTA 비준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협상 방침을 변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그 근거로 농림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을 인용하며, "(쇠고기 협상이 당초 방침대로 진행될 시) 한미FTA 비준을 위한 미 의회 설득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농림부는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우리 측은 30개월 미만 소에서 생산된 뼈 포함 쇠고기까지 수입을 확대하되, 미국 측이 '강화된 사료금지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월령제한을 해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 측은 한미FTA 비준을 위한 미 의회 설득이 어려우므로,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 공표시점에 OIE 기준 완전수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미국의 요구대로 협상은 타결됐고, 빠르면 이달 중순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유통될 전망이다. 진실은 좀 더 밝혀져야겠지만, 어찌되었건 한국정부는 준비 없이 협상에 임해 결국 다 내어준 '무능한 정부'이거나, 아니면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기만의 정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