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 촛불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경찰 "美쇠고기 집회서 구호·피켓 나오면 처벌"

인권단체 "정치적 구호와 문구의 기준이 뭐냐" 강력 반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대해 사법처리 방침을 내놓아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경찰이 이번에는 '개최 자체는 문제 삼지 않되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 등을 사용하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또 한번의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 "정치적 구호 외치거나, 피켓 흔들면 불법"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촛불문화제 사법처리 방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순수한 문화 행사는 사전에 신고하거나 경찰이 허용하거나 할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청장은 "촛불문화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만약 촛불문화제에서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 등을 흔들면 불법 정치집회로 규정하겠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는 허용하되 문화제가 '정치집회화'할 시 사법처리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 청장은 이날 '불법 정치집회'의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만 했다.

한 청장은 또 지금까지 개최된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와 관련해 "언론 보도를 보면 처음 행사를 주최했던 사람들은 '순수하게 국민 건강을 우려하는 문화 행사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이를 이용해서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보여 세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권단체, "어떤 구호와 문구가 정치적인지 누가 판단하냐"

이날 경찰은 사실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어서 집시법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확대될 전망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전국 38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경찰은 국민의 자유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멈춰야한다"고 경찰의 이번 방침을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날 경찰의 방침과 관련해 "누가 촛불 문화제를 집회로 판단할 것인지, 어떤 구호가 정치적 구호인지, 그 판단과 기준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며 "그야말로 경찰이 분위기 보고 판단해서 집회든, 문화제든 추후에 사법처리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은 특히 "현행 집시법은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허가제를 용인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현행 집시법뿐만 아니라 현재 국회에 상정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개악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촛불문화제에 대한 경찰의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6일 오전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