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피눈물이야”

[인터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그 집 앞에 서면 도종환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을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수천 개의 담쟁이 잎을 이끌고 가는 담쟁이 잎 하나 같은 선생님이 사는 집. 서울 종로구 명륜동 4가 133번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건너편, 종로약국 옆에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담쟁이로 뒤덮인 2층 양옥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애초 하얀색 판에 시시 때때로 좋은 글귀가 적혀 대문 앞에 걸려 있던 곳. 세상에 관심 없는 대학생들이 낙서를 하고 욕을 써놔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곳에 쓰여 있던 글귀 하나에 힘을 얻었던 때가 있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4가 133번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건너편, 종로약국 옆에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담쟁이로 뒤덮힌 2층 양옥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집이 통일문제연구소다. 그리고 백기완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다. 이 집이 헐릴 위기에 놓였다. 낡은 것은 몽땅 없애고, 낡지 않아도 몽땅 없애고, 돈만 된다 하면 집이고, 나무고, 풀이고, 강이고 다 몽땅 없애버리는 신새마을운동주의자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에 이 집도 헐릴 위기에 놓인 것이다.

“내가 젊었던 날이야. 1967년 쯤 되었을 거야.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잘못된 것들 다 모아보니 우리 땅이 둘로 꺾여 있는 것에서 오더라구. 그래서 통일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 분단 모순을 없애야 우리가 바라는 자유다, 해방이다, 인권이다 하는 것들이 아울러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어. 통일문제를 파고드는 연구소를 만드는 게 어떨까 생각했지. 그래서 통일문제연구소 발기 준비모임을 한다고 종이에 써 붙여서 대문에 붙여 놓으니 밤에 누가 와서 불을 지르고 갔어. 통일에서 통자만 말해도 막 때릴 때야. 그래서 등에다가 통일문제연구소를 써서 지고 다녔지. 그래서 내 덧이름이 백통일이었어. 백통일”

백기완 선생님에게 통일문제연구소는 어떤 곳일까 듣기 위해 담쟁이 집을 찾아갔다. “일 년에 한 번도 잘 안 찾아오면서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거야” 선생님의 구박에 넙죽 절을 하고 댓거리(인터뷰)를 했다.


“박정희 타도운동을 하다 보니까 감옥에 갔어. 감옥에 갔다 오니까 연구소가 없어졌더라구. 집 주인이 박정희한테 압력을 받아서 월세를 비싸게 받고 했나봐. 그래서 보증금도 다 깎아 먹고 쫓겨난 거지. 그래서 연구소를 다시 열어야 겠다 했는데 돈이 없잖아. 근데 어느 날 큰 딸이 피아노를 띵똥땅땅 치고 있는 게 보여. 신문을 보니까 피아노를 산다는 광고가 나와 있어서 얼마 줄거냐 물어보니까 오십만 원을 준데. 당시 그 돈이면 사무실을 열 수 있었거든. 그래서 가져가라 했지. 그랬더니 딸애가 일주일 동안 말도 안하고 지 방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아. 딸애를 앉혀 놓고 말했지. 야 지금이 피아노 때리고 있을 때냐. 죽어가는 민중의 가슴을 쳐서 민중을 일으킬 때야. 내가 네 것 팔아먹어서 안됐지만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랬더니 다음 날 그 꼬마가 학교에 가더라고. 그렇게 달구름(세월)이 20년이 넘게 지났어”

선생님에게 그 집은 피눈물이고, 삶이고,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만의 것이 아니다.

“1988년 이야. 사무실을 빌리기만 할 게 아니라 집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그래서 통일마당집 한 돌 쌓기 운동을 했지. 한 돌에 오백 원. 당시만 해도 대학이니 노동현장에 내가 가면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모일 때야. 젊은이들한테 눈물로 얘기했지. 한 돌만 사다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전철표를 내놓고, 담배 한 가치를 내놓고, 미국에 있는 동포들도 내고, 독일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 간호사들이며 탄광에서 일하는 일꾼까지 돌을 쌓았지. 백범 할아버지가 나한테 써준 붓글씨가 있었어. 그거 내놓고 돈 내고 가져갈 사람 있냐 해서 주고. 그렇게 해서 이 집을 산거야”

“이 집은 피눈물이고, 이 땅의 자생적이고 자주적인 해방통일운동의 근거지고, 재야의 본거지야. 이러니 내가 생각할 때는 문화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집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하고, 꾸지람에 겁을 먹기도 하고, 보지 못한 세상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집은 그저 사람이 먹고 자기위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 아니라 수십 년간 민중운동이 걸어 온 길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선생님도 이 집에서 하제(희망, 내일)를 생각했다.

“여기를 더 크게 만들라고 했거든. 통일문제연구소라 하지 말고 노나메기 문화공원으로 할려고 했어. 강사료며 책판 돈 모아서 2백 명 정도가 앉아서 연극도 보고, 영화도 보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그림 전시회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개새끼들이야. 늙은 할아버지를 깜때(절망)으로 몰아넣고 있잖아. 그야 말로 학살자들이야. 백기완이를 죽이겠다는 학살자들.”

선생님은 깜때하고 있다고 했다. 꺾였다고 했다. 그리고 새파랗게 어린 것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집이 내 꺼라는 생각이 잘못이야. 개도 태어나면 자기 집이 있어. 사람도 태어나면 자기 집이 있어야 해. 소유권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곳 말이야. 근데 다 내꺼다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 아니야. 개새끼도 살다가 죽으면 다른 개가 들어와서 살도록 자기 집을 놓고 가. 다른 놈이 태어나면 주고 간다 말이야. 사람들이 개보다 못해. 집에 대한 들월(개념)을 바꿔야 해”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집이 돈을 투자하면 얼마가 남을까로 계산이 되는 세상. 빈 땅이나 오래된 건물만 보면 싹 없애고 아파트를 지어 팔아먹는 세상. 이런 세상이 대학로 구석 담쟁이 집에 사는 한 할아버지를 절망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길음동이며 용산구며, 은평구 등에 사는 사람들을 절망시키고 있다.

이에 선생님은 이리저리 전자편지를 보냈었다. 통일문제연구소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내 편이다 네 편이다 하지 말고 통일문제연구소 살리는데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 재개발이라고 하는 허울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알로 얘기하면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 종로구청 그리고 큰 집짓는 재벌들이 한 통속으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거든. 그저 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대위가 꾸려지면 이름이라도 올려 달라는 거야. 그래서 몇 백 명 모이면 성명서도 내고 신문에 광고도 내고 말이야. 통일문제연구소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리기라도 해달라는 거야”

선생님은 “너희가 와줘서 고맙다”라며 점심값을 쥐여 주셨다. 우르르 꽝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오는 담쟁이 집. 아리아리 꽝하며 선생님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담쟁이 집. 민중운동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담쟁이 집이 모두의 힘으로 살아남길 간절히 바래본다.

  우르르 꽝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오는 담쟁이 집. 아리아리 꽝하며 선생님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담쟁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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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 재개발 , 백기완 , 민중운동 , 통일문제연구소 , 도종환 , 절망 ,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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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연

    항상 좋은 기사들 많이 보면서 댓글은 처음 남기는 것 같네요..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죽어가는 이 나라의 혼이.. 왜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보다, 값만 보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요?

  • 민주주의

    그 집을 지키려고 하는 백선생님으로 인하여 개발을 원하는 이웃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걸 잘 아시죠 대세에 따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

  •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원칙만 드리밀고 결정하는 모습. 그게 세상에서 가장 저열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국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참답답합니다.내가 할수있는것이없어 더욱더 답답합니다.실용주의에 휘둘리어지는것이 답답합니다.

  • 눈물이 나네요.. 당장 달려가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한돌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 뭔소리

    민주주의가 다수결? 그 뭔 개소리? 다수결은 가끔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법칙일 뿐. 다수결이면 다 장땡? 그딴 개소리가 어딨냐? 공부좀해라

  • 독자

    뭐야 이사람은.. ㅋㅋ 피눈물...ㅋㅋ

  • 지나다

    어디서 줏어들은 다수결? 개발을 원하는 이웃들이 아파트 하나씩 준다는 주택조합에 속고 속아 결국은 쫒겨날 게 뻔한데 사기에 동의하여 순간적으로 개발 찬성하는 게 다수결. 민주?

  • 0000

    어떻게 도와야 하나요?????
    구체적인 방안이라도..후원금이라도 내고 싶네요....

  • 독자님

    난 중립

  • 사는 사람

    명륜동4가 가보셨어요?
    당신 눈에는 낡은 집에서 사는게 낭만이고
    지켜야만 하는 멸종 위기의 유산입니까?

    벽돌 한장 한장 후원 받으셨다고요?
    저희 아버지 40년전에 시골에서 상경하셔서 10년만에..
    땀 한방울,눈물한방울...노동으로 마련하신 집입니다.

    그때 그대로입니다. 리어카도 못지나가는 막다른 골목.

    전 저분 이기심을 민주운동으로 포장한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