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왕십리뉴타운1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왕십리1구역 세대위) 위원장은 몸소 경험한 뉴타운 사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세입자, 10세대 중 8세대 '뉴타운'으로 밀려나
서울시가 김세웅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계획이 수립 중인 2곳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총 24곳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총 27만7천 세대 중 세입자들은 20만 세대로 72%에 달한다. 그런데도 세입자들에 대한 주거대책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왕십리 뉴타운 지역 세입자들처럼 법이 있어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개발 지역의 경우 세입자들은 어떠한 보상도 없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다.
민간개발 지역은 차치하더라도 공익적 성격을 갖는 뉴타운 사업이라면 응당 주민의 절대다수인 세입자들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법에 명시되어 있는 임대주택건설비율 조차 지키지 않는 곳도 허다하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 국토해양부 장관 고시 등의 규정에 따르면, 주택재개발사업의 경우 임대주택을 전체 세대수의 17% 이상 건립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지역의 임대주택 건립비율을 보면, 17%를 채우는 지역은 은평 뉴타운 등 6곳에 불과하다. 특히 뉴타운 사업으로 6천400세대가 신규로 공급되는 천호 뉴타운의 경우 임대주택 건립 세대수는 126세대인, 1.97%에 불과했다. 천호 뉴타운의 기존 세입자 비율이 84%인 점을 고려하면, 세입자 100세대 중 단 3세대만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또 2차 뉴타운 지역인 노량진, 아현, 가재울, 영등포 등의 임대주택건립 비율은 9%에 채 미치지 않고 있다. 결국 24곳의 뉴타운 지역에서 총 26만5천 세대가 신규로 공급되지만, 임대주택은 3만8천 세대로 15%가 채 되지 않는다. 서울시 뉴타운 지역의 총 세입자 세대수가 20만 세대인 점을 감안하면, 기존 원주민 세입자 10세대 중 8세대는 살던 지역을 떠나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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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이 지정한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지난 5일 서울역에서 집회를 개최한 철거민 단체 등 빈곤.사회단체들이 "집은 인권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참세상 자료사진 |
"뉴타운 임대주택 임대료, 서민들 감당할 수 없어"
임대주택의 절대적 공급량 부족과 함께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 점도 문제다.
이은정 위원장은 "왕십리 인근 황학동 롯데캐슬의 경우 10평(약 33㎡)정도 되는 집이 전세 5천만 원, 월세로 보증금 2천6백만 원 정도에 월세가 25만 원 수준"이라며 "여기에 관리비 까지 더하면 월 50만 원 가까이 내고 살아야 하는데, 이를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황학동 롯데캐슬을 비롯해 2007년 이후 건립된 재개발 공공임대아파트의 전세전환금은 대부분 5천만 원을 호가한다. 또 월세로도 황학동 롯데캐슬, 길음 SH-ville, 미아 SH-ville 등의 임대보증금은 2천만 원을 넘고, 월 임대료가 20만 원 이상이다. 여기다 관리비 등 기타 비용을 합하면 월 30만원 을 훌쩍 넘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이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서울의 뉴타운 지역 대부분이 도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곳임을 고려할 때, 임대주택의 높은 임대료는 원주민의 재정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이유로 뉴타운 지역에 살던 기존 세입자들의 재정착율은 턱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원호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조직2국장은 "최근 입주가 이뤄진 은평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율은 17%에 불과하다"며 "뉴타운 지역 주민의 절대다수가 세입자인데, 실제 개발사업 과정에서 이들은 철저히 배제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까다로운 세입자 보상 기준.. 그나마 '있으나 마나'
또 세입자들의 재정착을 위한 대책이 부실한 것과 함께 까다로운 세입자 보상 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15일 서울행정법원은 뉴타운 지역인 서울 흑석동 세입자 박영자 씨가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라"며 흑석제6구역 주택재개발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씨는 서울 동작구 흑석1동에 지난 2005년 10월 15일에 전입신고를 했다. 박 씨는 다음 해인 7월 해당 지역에 재개발사업 시행인가가 고시되면서 이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재개발조합 측은 박 씨가 전입하기 이전에 이미 재개발 사업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주거이전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버텼다.
현행 토지보상법은 세입자에 대한 주거이전비 보상기준 시점과 대상을 '구역지정공람 당시 또는 사업시행인가 당시 3개월 이상 거주한 세입자'로 정하고 있다. 그간 재개발조합은 더 과거 시점인 구역지정공람일을 기준일로 관례적으로 적용해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을 최소화해왔다. 그러나 재개발 사업 초기인 구역지정 단계에서는 세입자는 물론이고, 지주들조차 개발 및 보상 정보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이번에 법원이 박 씨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즉 세입자에 대한 보상은 재개발 여부가 불투명한 구역지정일이 아니라 사업시행인가일 기준으로 지급해야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박 씨와 왕십리 뉴타운 세입자들과 같이 대부분의 개발 지역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조합과 세입자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쟁 발생 시 역할을 해야 할 지자체들은 소극적이다. 임대주택건립 비율 등 법률에 명시된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을 조합 측이 마련하지 않더라도 행정관청이 이를 묵인하고, 사업시행인가를 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은정 위원장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재개발조합은 태생적으로 탐욕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법을 만든 지자체와 국가는 이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구청은 세입자와 조합 간 싸움을 붙여놓고, '누구든지 이겨서 대충 타협봐라'는 식"이라며 "지자체가 전향적 자세로 개발에 따른 세입자와 조합 간의 분쟁에 개입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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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에 세입자 참여 확대와 공공의 역할 강화해야"
이원호 국장은 개발 사업에서 세입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강화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재개발 사업은 공익사업임에도 공공에서는 땅따먹기 할 선만 그어주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에게 넘긴다"며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 지역 재생의 관점에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주거권의 관점에서 개발사업 전 과정에 세입자들의 참여가 확대되어야한다"며 "주민들이 생활권을 이탈하지 않고, 지역 내 임시주택에 거두하다 개발 이후 부담 가능한 임대아파트로 입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원호 국장은 "집, 주거는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 상품이 아니다"며 "이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권리"라고 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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