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람들이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100명도 안 되는 숫자가 용역과 병력을 상대하기엔. 지독히도 추운 날씨, 방송차도 견인되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 옆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이미 단전 단수가 된 공장안은 암흑뿐이었고 언제나 우리와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이 담을 사이에 두고 얘기했던 공간은 용역깡패들이 차지하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금속인데, 그래도 산별인데, 이렇게 안 올 수는 없지…….
그러나 그게 다였다. 물론 적은 수이긴 하나 금속노동자들이 그 추위를 뚫고 달려는 왔다.
하지만 우리의 연대는 그것뿐이었다.
어둠속 창문안의 동지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많이 부끄럽고 또 슬픈 밤이었다.
2001년 세원테크 투쟁, 12월 12일 충남지역 총파업이 생각났다. 수백 명의 용역깡패들에게 들려나와 논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세원테크 노동자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 작은 논 밭길사이로 깃발을 펄럭이며 달려왔다는 충남지역 노동자들. ‘이것이 노동자의 연대라는 것이구나’라면서 눈시울 붉혔던 그 몇 년 전의 기억이 이제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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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의 거리에서 만났던 세원테크 노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나 그리운 이현중, 이해남 두 동지의 이름도 잠시 내뱉어 보았다. 왜 그리 허망하게 가버렸냐며 가슴을 쳤다. 그 연대의 빚을 갚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세원테크 투쟁이 승리가 아니었다 해도 노동자의 연대의 힘이 무엇인지 투쟁과정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맞다.
사람은 많은데, 높으신 양반들도 많은데, 난 아직도 이해남 동지가 생각이 난다. 노조를 만든 계기가 아침 조회 때 반장에게 걷어차이는 이현중 동지를 본 후라고 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세원테크 노동자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어린 시다들의 배고픔과 지옥 같은 노동현실을 바꿔보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결국엔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것처럼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전태일인 이해남이 나온 것이다.
“우리가 죽였다”고 울며 병원을 뛰어다니던 당시 많은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두 동지를 차가운 땅에 묻힐 때 우리는 다짐을 했었다. 열사정신과 노동자의 연대를! 그때부터 5년이 지났다.
여전히 싸우고 있고 우리의 노동자들은 쫓겨나고 있다. 열사정신이 살아있다면 그 어둡던 부평의 한 공장에 150명의 노동자가 갇혀 캄캄한 공장을 연대의 열기로 밝히고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열사 정신은 어디에 살아있는가.
벌써 가을이 끝을 달리고 있다. 아직 가을다운 가을 한번 느껴보지 못한 채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나보다. 뭐 때문에 이렇게 아둥 바둥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다가도 열사들 생각이 나면 멈칫거리는 날 발견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산공원으로 향했다. 산꼭대기쯤에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차다. 노래도 불러주고 얘기도 하고. 그런데 너무 외롭더라. 이 사람들이 왜 여기에 누워있는가. 그리고 살아있는, 아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며 바닥을 기어가는 우리는 뭘 하고 있는가. 아무 할 말도 없고 애꿎은 유리함만 닦다가 잘 있으라고 얘기하고 돌아섰다. 나는 다시 사람들에게로 가는데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누워서 내게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밖에 없는 사실이 날 너무 아프게 한다.
이현중, 이해남 열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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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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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디어충청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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