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의 저항권"

류은숙 인권활동가,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특강

노동자에게 노동권이 있다면 사용자에겐 노동권에 대항할 권리인 경영권이 있다? 교원노조에서 노동권을 내세운다면 학생들에겐 수업권이 있다? 자기 동네에 장애인학교나 실업계 학교가 세워지면 주민들은 반대할 권리가 있다?

9일 오후 7시 전교조울산지부 교육관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특강에서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는 "인권이란 언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노동권과 이른바 경영권을 똑같은 '인권'으로 볼 수 없다. 학생들에게 있는 건 수업권이 아니라 교육권이다. 장애인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권리라는 건 사실 '집값 사수권' 같은 거다."

류은숙 활동가는 "인간의 권리라는 언어를 갖고 사익을 포장해서는 안된다"며 "인권을 침해하는 외부의 적에 맞선 저항의 언어이자 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정당성으로서 '인권'이라는 언어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만들어졌다. 햇수로 60년, 환갑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인간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 선언으로 시민권을 추구했던 '근대'와 구별되는 '현대'가 시작됐다.

세계인권선언은 '저항권'을 가장 강조한 전문과 대원칙, 자유와 평등권, 이 권리들을 실현할 조건들로 구성돼 있다.

자유권은 시민으로서 누릴 권리와 정치적 권리다. 여기에는 인신의 자유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들이 포함된다.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평등권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다. 경제적 권리에는 노동권과 단결권, 단체행동권이 포함된다. 노동을 통해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권은 곧 생존권이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도 사용자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여기서 나온다. 오로지 개인의 인권만 보장했던 이전 시기와 달리 여기서 비로소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가 인정됐다.

사회적 권리에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부양을 요구할 권리인 사회보장권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을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권리인 교육권이 포함된다. 류은숙 활동가는 "한국에는 교육권이 없다"며 "학생들은 공교육의 탈을 쓴 사교육 시장에 소비자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다.

문화적 권리에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들어간다.

세계인권선언 29조는 인권을 가진 자로서 지켜야 할 인간의 의무를 다루고 있다. 류은숙 활동가는 이 대목에서 법질서를 잘 지키는 의무가 아니라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같이 싸울 의무, 동료 인간과 연대할 의무를 강조했다.

1948년 당시와 지금의 인권지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류은숙 활동가는 국가권력이 시민과 맺는 관계에서 초국적 기업이 힘없는 다수 개인과 맺는 관계로 인권지형이 변화했다고 지적하고 낯선 곳에서 무권리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이주민의 권리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