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들의 생의 감각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마침내 돌아온 자이툰, 다이만 부대 병사들

이라크에서 고생하던 자이툰, 다이만 부대 병사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르스름한 군복을 입은 채 활짝 웃으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찡하게 울려 왔다. 애국도 감동도 자랑스러움도 뭣도 아닌 그 감정은 벌써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밤의 기억으로 나를 끌고 거슬러 올라갔다.

스물 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입대해 나보다 너댓 살씩 어린 고참들 밑에서 호된 막내 생활을 견뎌 내던 어느 날이었다. 난데 없는 추가 근무 명령이 떨어졌다. 늘 한 자리에 붙박여 눈을 빛내고 있는 CCTV처럼 군부대 이곳 저곳에는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씩 돌아가면서 군인들이 24시간 경계 근무를 선다. 차고 쪽에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쪽 야간 근무 한 짬을 누구로든 채워 넣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밤에 근무가 없는 인원들 중 둘을 뽑았다고 했다. 운 나쁘게 뽑힌 나와 내 바로 윗고참이던 어느 일병은 찍소리 못하고 네 알겠습니다를 복창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세 시가 넘은 컴컴한 한밤중이었다. 시커먼 군용 트럭이 처박혀 있는 차고 안은 괴물이 쿨쿨 잠 자고 있는 동굴 같았다. 한 시간 반을 어떻게 때우나 막막해 하고 있는데 일병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나 이번에 자이툰 부대 가는 거 신청했다.”

“이라크 가는 거 말입니까?”


자이툰 부대에 지원할 병사를 모집한다는 공지는 막사 복도에 있는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고참들은 이라크 가면 한 달에 얼마 받는다느니, 생각보다 위험할 것 같다느니, 절대로 위험하지 않고 그냥 놀다 오면 되는 거라느니, 여기든 거기든 군대는 다 힘들다느니 자기네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거기 가는 새끼들은 돈 버니 좋겠다. 나는 학벌도 안 되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으니 지원해도 뽑힐 리가 없잖아.” 그리고 학벌이든 보직이든 뭐든 무언가 조건이 맞아 떨어져 자신 있게 자이툰 부대에 지원하는 병사들은 내무실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중대장도 하나 둘 자이툰 부대에 지원하는 병사가 나올 때마다 점점 흐뭇해 하는 낯빛이 되었다.

입대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치며 집회 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나는 이런 분위기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에는 이라크에 한국인 군인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가 빚어낸 대량 학살이고, 한국군 파병은 종속적이고 굴욕적인 한미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라는 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 2005년/참세상 자료사진

그런데 막상 군대에 와 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나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아무도 이라크 전쟁이 더러운 석유 전쟁일 뿐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더러운 전쟁에 파병을 하겠다고 나선 한국 정부 역시 더러운 정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더러운 전쟁에 가겠다고 지원하는 병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은 자이툰 부대에서 주는 목돈과, 이라크라는 머나먼 나라가 주는 이국적 이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답답했다. 바깥에서 하던 것처럼, 이라크 전쟁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부당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파병을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등병은 고참에게 함부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 아닌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이 없다고 해도 나는 기무반이 무서웠으며, 기무반이 없다고 해도 도대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사람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니, 설득은 둘째 치고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라크에 가지 못해서 안달하는지, 파병해 준다니까 얼씨구나 하며 너도나도 지원하려 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지, 그게 궁금해 오금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일병이 자이툰 부대에 지원했다는 말을 하는 순간, 이 시간 이 자리라면 그 까닭을 조심스레 물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동의를 해 주어야 갈 수 있거든. 일단 지원은 해 놨는데.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좀 더 말씀을 드려 봐야 할 것 같다.”

“저..... 근데 말입니다. 이라크에 가시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등병 특유의 극존칭! 글을 쓰면서도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다.)

“뭐? 왜 가냐고? 그거야 뭐...... 일단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파견되는 거니까, 말하자면 국가대표 같은 거잖아. 한 나라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건 명예로운 일이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그런 걸 해 보겠어? 그게 가장 크지.”

“......”

“그리고...... 난 지금껏 외국에 나가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가 보는 거니까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이것저것 새로운 것도 겪어 보고. 근데 거기다가 만만찮은 보수까지 주니 더 좋잖아. 그러니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 너는 안 가고 싶어?”

“......(이등병은 이런 순간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가면 좋은 거지. 너는 학벌도 있으니 아마 지원만 하면 붙을 거야. 이런 것도 원래 다 학벌이야. 아, 졸립다. 지겨워 죽겠네. 몇 분 남았냐?”


일병은 이라크에 가게 되면 군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곰곰이 궁리라도 하는지 근무가 끝날 때까지 말없이 서성거리기만 했다. 나는 일병이 해 준 이야기를 곱새기면서 만일 내가 고참 대 후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이 일병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짜 보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미국이 지금껏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에 쏟아 부은 폭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지금 이라크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전쟁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돈도 좋고 명예도 좋고 경험도 좋지만, 그래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지 않겠느냐.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이지만 어차피 미군이 수행하는 작전에 협조하는 방식이 될 거 아니냐. 미군이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가는 거 아니냐. 미군을 위해 벽돌 한 장 나르는 것도, 주사 한 방 놓는 것도, 밥 한 끼 짓는 것도 결국엔 대량학살의 원흉인 미국을 위하는 행동이 되는 거 아니냐.......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일병의 입장이 되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 거 다 따지면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 지금 전 세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디 이라크에만 있느냐. 북한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수도 없이 많지 않느냐. 나에게도 내 인생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 자이툰에 가서 이라크 군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이라크 가서 돈 벌어 집안 형편에 보태는 것이 뭐가 나쁜 일이냐.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일하며 돈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지만 나와 일병은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자판기 앞에 둘이 서서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그 뿐이었다.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야 했기에 우리는 씻지도 않고 침상 위에 올라가 모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얼마 후 그 일병은 합격 통보를 받았고,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부대를 떠났다. 그 이후로도 병사들 몇 명이 더 지원해 자이툰으로 날아갔고, 내가 상병 계급장을 단 후에도 내 후임들 몇몇이 지원해 이라크와 아프간으로 제각기 실려갔다.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채 환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자이툰 부대 병사들을 보며 옛 기억을 돌이켜 보다가, 나는 어느 시인이 시 속에서 말한 ‘생의 감각’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감각이었다. 무엇을 선택에서 자기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누구나 자기 식대로 지니고 있을 그런 감각이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는 그 일병과 달리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라크나 아프간을 택해 날아간 병사들도 적지 않았고, 나는 그런 병사들을 차마 비난할 수는 없었다. 거리에서는 쉽게 외칠 수 있었던 ‘전쟁 반대’와 ‘미군 철수’, ‘파병 반대’라는 말이 그 병사들의 가슴에 와 닿으려면 훨씬 더 많은 경험이, 논리나 이론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진득한 삶의 경험이 그 말 속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병사들과 뒤섞여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저마다 자기만의 생의 감각으로 삶을 살아갈 뿐이었고 그것은 군대라는 굉장히 비인간적인 공간 안에서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저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의 간격은 너무나 컸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의 감각은 마치 벼랑 위에 있는 꽃처럼 아득한 것이었다. 쉽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무사히 살아 돌아와 TV 속에서 웃고 있는 자이툰 부대 병사들은 겉으로 보기엔 행복해 보였다.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굉장한 일을 하고 돌아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믿음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게 살도록 놔 두는 수밖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기 깜냥껏 세상을 살면서 화석처럼 굳어진 그 생의 감각이라는 것이 내 눈에는 보였다. 어떤 이는 이라크에서 수없이 죽어간 죄없는 목숨에 더 민감할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애국(그 애국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에, 어떤 이는 돈에, 어떤 이는 명예에 민감하기 마련인, 결국 누구나 서로 다른 곳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생의 감각이라는 것이 문득 참으로 간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떠오른 것은 4년 전 이라크에서 죽어 간 김선일 씨의 얼굴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부르짖던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당시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기어이 사람 한 명이 목이 잘려 죽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내 주변에서 자이툰 부대 지원을 이야기하던 병사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군복만 입혀 놓으면 모든 개성과 인격이 지워지는 그들이 마침내 돌아왔다. 삶은 아름답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는 다시 야간 근무를 서던 이등병으로 돌아가 소총을 밤하늘에 두두두두 갈겨대듯 이 세상에다 대고 묻고 싶어졌다. 죄 없는 김선일 씨의 목숨에, 수없이 죽어간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에, 헛되이 순직한 자이툰 부대 병사들의 목숨에,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고 누구 하나 눈이라도 깜짝할까?

  고 김선일 씨를 추모하는 퍼포먼스 중/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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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복귀 , 파병 , 자이툰 , 다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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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화

    전 노대통령에 대한 자이툰 기사를 찾아보다가 이 글을 보고 글 남깁니다.
    이 글을 남길 때와, 지금에서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본인이 세상의 눈속임에 얼마나 어리석게 당하고 살아왔는지 느끼셔야 하지 않을지 싶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이라크 파병을 절실히 반대해온 입장으로서(제 또래 애들은 주로 전역할 즈음에 파병이 시작됐죠) 그때 당시의 우리가 상상했던 이라크 파병의 의미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는, 당시의 파병이 미친 중동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비교한다면 상당히 값진 일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자이툰, 다이만 부대가 중동에서 맺은 결실은 전쟁에 대한 보상만이 아닙니다. 정말 그들 한 명, 한 명이 그 곳에서 국가대표처럼 있었기에 더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철수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항상, 자신의 생각에 빗대어 남을 견주고.. 남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보단, 남의 의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과연 옳았었는지도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병학님 눈에는 그들이 배우지 못해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지원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병학님이 평생 겪어보지 못할 경험은 그들은 해보고 온 것도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 경험은 훗날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지, 누구 한 명의 판단이 무조건 옳고 그름은 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