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투쟁 반년째를 맞는 강남성모 비정규직 조합원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가 ‘각하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이명박 ‘각하’께서 강남성모병원 불법 파견 문제를 더는 참다 못해 지노위에 몸소 강림하시어 힘든 ‘결정’을 내려 주셨다는 말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각하’는 ‘자기 주먹 맛이 최곤 줄 아는 꼰대’만을 가리키는 낱말이 아니었다.

법률 용어로서, 소(訴)나 상소가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부적법한 것으로 하여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을 종료하는 일을 ‘각하’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각하 결정’에서 ‘이명박 각하’를 떠올릴 수 있었던 내 유머 감각은 돌연 참을 수 없는 짜증기로 변해 마치 팥죽을 들이부은 듯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미 여기저기 언론에 많이 퍼졌겠지만,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의미에서 한번 더 지노위의 결정문을 간추려 훑어 보기로 하자.

“주요쟁점은, 첫째, 사건 사용자들이 근로자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지위에 있는지 여부, 둘째, 사용자들이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은 것이 해고에 해당하는지 여부, 셋째, 해고가 정당한 조합활동을 이유로 이뤄진 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있다.”

“중앙의료원과 강남성모병원은 가톨릭학원의 시설에 불과하여 당사자 적격이 없으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 피신청인 자격이 있는 사용자는 학교법인인 가톨릭학원뿐이다.”

“가톨릭학원의 경우 이 사건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 중 간호조무사의 업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파견법상 금지대상 파견직종이어서(다만 그 위반시 과태료 제제만 있음) 고용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가톨릭학원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이상 직접 근로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근로자들에 대한 파견전환, 파견근로계약 종료 등의 과정이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가톨릭학원과 이 사건 근로자들 간에 직접 근로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직접 고용의무 불이행은 파견법상 과태료 부과처분 대상에 해당할 뿐 해고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무슨 고양이가 개껌 씹는 소리란 말인가? 다시 읽어도 낯이 뜨겁다. 멀쩡한 노동자들을 졸지에 파견직으로 바꾸어 버리는 과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니? 가톨릭학원이 실제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 더구나 파견직 노동자들을 막무가내로 잘라 버려도 ‘파견법상’으로 가볍게 돈만 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정리된다니?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지노위 사람들이 모두 낫 놓고도 디귿자라고 하는 바보 맹추들이어서, 자신들이 내린 각하 결정이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악과 맞물려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눈곱만큼도 짐작 못하고 있었을 경우. 그리고 지노위 사람들이 실은 강남성모병원 측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깥에서 자꾸 어떤 ‘압력’이 들어오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병원 측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을 경우. 아무래도 앞엣것보다는 뒤엣것이 더 있을 법한 일이긴 한데, 정말 ‘압력’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 ‘압력’이 어디서부터 나왔을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내가 조금 전에 말했듯 ‘각하 결정’이란 것이 정말로 그 ‘각하’가 ‘결정’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짜증으로 잠시 변했던 유머 감각이 이제는 숫제 섬뜩한 공포로 변해 나를 짓누르려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편파결정 규탄 기자회견

3월 16일, 황사는 도시의 빈 공간이란 빈 공간은 모조리 흐릿하게 만들어 놓아 너무나도 적나라했고, 적나라한 만큼이나 그것을 두고 암울한 시대를 상징한다느니 끝끝내 뚫고 가야 하는 현실이라느니 하는 진부한 상징으로 표현하기란 오히려 쉽지 않았다.

강남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지노위 앞에서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이 오전부터 기자 회견을 하고 있었다. 눈으로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편파결정 규탄 기자회견’이라 적힌 현수막을 보며 콧속으로는 후추 통을 통째로 들이붓는 듯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은 결코 좋을 수 없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웬 시꺼먼 양복을 입은 장정이 몰래 사진을 찍다가 조합원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어느새 점심밥 때가 되었는지 지노위 정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시끄럽게 뭐 하고 있나 하는 눈으로 흘긋거리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조합원들과 지원대책위원회 사람들은 관세무역개발원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서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친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는 조합원들과 한데 엉기어 다시 노조 사무실로 돌아와, 이번에는 조합원들끼리 또다시 논의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슬슬 회의가 끝나는 듯싶어 나는 박정화 조합원을 부여잡고 버릇처럼 이것저것 캐물어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병원 안에서 하는 투쟁은 안 하기로 했으니 대신 다른 투쟁 사업장 연대를 많이 다녔죠. 우리가 그동안 정말 많이 받았잖아요. 수많은 동지들이 우리가 싸울 때 연대를 와 주셨어요. 그게 뼈저리게 고마워서....... 요즘은 우리 투쟁을 잠시 접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니 다른 사업장들에 많이 결합할 수 있었어요. 연말부터 쭉 그래 오다가 그 와중에 용산 사태가 터졌는데...... 처음부터 투쟁 과정이 없이 한 명 한 명 집회에 나갔다면 멋쩍어서 잘 나가지도 못했을 텐데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의 연속선상에서 같이 활동하다 보니 용산에도 많이 나가게 된 것 같아요. 다른 비정규 사업장은 물론이고........”

“되게 바쁘신가 봐요?”

“바쁘죠. 천막이 아니라 집에서 잘 수 있는 건 좋은데, 여기저기 투쟁 사업장 다니고, 교육도 받고, 이런저런 회의도 하고....... 그러고 살아요. 오직 복직만을 기다리며. (웃음)”


박정화 조합원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조그만 탁상용 달력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작년 9월 17일부터 병원 안에 천막 치고 농성 시작했으니까......”

“그럼 벌써 반년이 된 건가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천막 뜯기고, 로비에서 쫓겨나고, 그러기를 몇 번을 했는지......”


병원 측이 용역 깡패들을 동원해서 천막을 때려부수거나 조합원들을 병원 바깥으로 내동댕이 친 횟수가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다 합쳐 십여 차례는 될 것이다. 상급 단체인 보건의료노조와 병원 측이 평화적으로 협상하는 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작년 11월 17일 이후로는 농성 천막도 없앴고 병원 로비를 점거하지도 않았다.

“잠정적인 합의안이 지난 1월 23일에 나왔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랑 병원장이 구두로 약속한 거였어요. 4월 15일까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평화의 시간을 갖자고. 최소한 그 이전에 복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고.”

“그러면 병원 측에서는 지금 해결 의지를 보여 주고 있나요?”

“지난 달에 보건의료노조와 병원 측이 만났고, 이번 3월 9일에도 만나기로 했는데 못 만났대요. 다음에 또 만나긴 한다는데....... 이거 너무 보도가 깊게 나가면 안돼요. (웃음)”


나는 아까 회의할 때 귀여겨들었던 병원 내 ‘도급’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까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 환자 이송 업무를 도급으로 전환했다는데, 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러니까 원래 간호보조 업무에는 정규직 노동자와 파견직 노동자가 있어요. 환자 이송은 주로 남자 파견직 노동자들이 해요. 근데 이송을 도급에 넘기다 보니 이송 업무를 하던 남자 노동자들을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를 시키는 거죠. 노조와는 전혀 협의하지 않고서요.”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김세영 조합원(나와 동갑내기다)이 덧붙여 설명을 해 주었다.

“간호보조 업무에 이송 업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해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보조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송 업무까지 같이 했는데 이제부터는 그것(중환자실 이송 업무)조차 도급 노동자들이 다 하게 되는 거예요. 즉 간호보조 노동자들의 업무를 빼앗겨 버리는 거죠. 우리 해고 조합원들 중에서도 그런 조합원이 있는데, 나중에 복직하게 되면 이송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되겠죠.”

도급과 파견이라는 개념이 사업장들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현장에 모습을 보이는 탓에 가뜩이나 현장 상황에 어수룩한 나로서는 헷갈리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조합원들에게 다시금 물어 가면서 개념을 잡아야 했다. 파견이란 사측이 파견업체에서 노동자들을 들여오되 통제와 관리를 사측이 직접 하는 고용 형태이고, 도급은 똑같이 사측이 파견업체에서 노동자들을 들여오되 그 통제와 관리는 파견업체가 하는 고용 형태이다. 내가 맞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 측이 간호보조 노동자들을 도급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법적으로 파견직을 고용할 수 없는 간호보조 업무에 도급으로라도 비정규직을 끌어들여 부려먹겠다는 심보를 드러낸 것이다. 병원 측은 ‘파견직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청소, 주차, 경비, 식당, 의무기록실, 교환실 같은 분야에 도급을 도입해왔지만 이제는 간호보조 업무에까지 도급을 들여오려는 것이다. 지난 2월 13일부터 환자 이송팀 사원을 이미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는 3월 23일이면 파견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새 병원이 강남성모병원 건물 바로 옆에서 문을 연다. 새끼를 친 셈이다. 나는 환자식당 외주화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식당도 외주화가 되고 있다면서요?”

“직원 식당은 우리가 투쟁 시작하기 전에, 작년 9월에 이미 외주화가 됐어요. 환자 식당도 올해 초부터 외주화를 하기 시작했죠. 따지고 보면 환자들이 식사하는 환자 식당에서 병원이 더 잘해야 하는 건데.......”


옆에 있던 홍희자 조합원이 더 설명을 해 주었다.

“외주화 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식당 내에서 섞여 일했는데 외주화가 되면서 정규직을 다른 곳으로 전환 배치시켜 버렸어요. 정규직한테 너 전환 배치 할래 말래? 이렇게 병원 측이 물어보면 어차피 정규직들도 돈 벌어야 하니까 당연히 다른 곳에서라도 계속 일하겠다고 하는 거죠. 일단 외주화가 되면 식당 운영 자체가 외부 업체 손에 떨어지는 건데 병원 정규직을 거기서 계속 일하게 할 수도 없는 거구요. 비정규직들은 전환 배치고 뭐고 없이 그냥 해고되는 거고. 아니, 애초부터 식당 일을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을 그렇게 맘대로 전환 배치시켜 버리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식당 내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해고하지는 않는 모양이네요?”

“아무리 병원이라도 정규직 노조가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하죠. 정규직 노동자를 건드리면 노조에서 들고일어날 테니까. 어차피 병원 측은 전환 배치를 하든 외주화를 하든 노조와 합의 같은 거 안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규직 노조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은 하고 있겠죠.”


나는 다시 박정화 조합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반년 동안 투쟁하시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주변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반년 전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나요?”

“음...... 글쎄요. 외부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현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게 있죠. 뉴스를 대충 보는 사람도 있고 유심히 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유심히 뉴스를 본 사람들이 병원에 와서 우리한테 파견법에 대해서 물어본 적도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확산이 되는 게 아닐까 해요.”

“반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자신이 좀 달라졌다 싶은 부분은 없나요?”

“왜 없어요? 많죠. 많은 게 변했죠. 내가 언제 이렇게 팔뚝질을 해봤겠어요? 지금도 어색한데. (웃음) 예전에 투쟁 시작하기 전에도 뉴코아 강남점 파업할 때는 우리 병원이랑 가까우니까 저도 한번 가 보고 싶었어요. 나도 똑같은 비정규직인데. 나도 조금만 있으면 잘릴 거 같은데. 뉴코아 노동자들 도와주고 싶은데....... 그런데 나는 그저 한 개인이었으니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전 그게 아쉬워요. 용산만 해도 범국민대책위가 있고....... 모임이 있고 조직이 있으면 서로 손잡고 투쟁 현장에 같이 나가면 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사실 혼자 현장에 가기 힘들잖아요. 현장에 나가서 함께 하고는 싶은데도 혼자 나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못 나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 (웃음)”

“괜찮아요. (웃음)”

“원래는 구두를 신고 다녔어요. 근데 이제는 많이 걸어도 발 안 아픈 운동화만 신고 다녀요. (웃음) 집회에서는 맨날 책상다리로 앉고, 집회 끝나면 걷고 하니까 구두를 신으면 발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리고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참세상 같은 언론도 접하게 되고...... 그리고 조중동이 왜 나쁜 신문인지 몰랐을 수도 있는데, 내 이야기가, 내가 두눈으로 똑똑히 본 것들이 완전히 잘못 실리니까, 난 초록색으로 봤는데 신문엔 빨간색으로 실리니까, 조중동이 이래서 나쁜 신문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아! 겨울이 이렇게 추운지도 처음 알았어요. (웃음) 원래는 내복도 안 입고 다녔어요.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밖에 나오면 잠깐 걷다가 차 타고 하니까 바깥에 오래 있을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내복 살 일이 없었는데...... (웃음)”


옆에서 김세영 조합원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언니 깔개도 하나 주웠잖아! 깔개에 맞는 가방도 하나 사고.......”

나도 박정화 조합원을 보며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누구 거였는데요?”

“누구 거긴, 쓰레기였지. (웃음) 스티로폼 두꺼운 거 있잖아요 왜. 찬 바닥에 그냥 앉으면 너무 추웠어요. 살에 얼음을 대고 있는 것처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

너무 뻔한 물음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요새 MB 정권의 논리가 이거잖아요. 취업의 눈높이를 낮춰라.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그런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정화 조합원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파른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해라! 한번 해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정말 그런 말하는 사람들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죠. 그렇게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뭐 해요. 돌아오는 선물은 하나밖에 없는데. 결국 비정규직에게 돌아오는 건 해고밖에 없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있던 박정화 조합원은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다부지게 붙였다 떼고 말을 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양심을 다 바쳐서, 분명 어려운 상황인데도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동안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 사람들 보면서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다 만났으니 이젠 그만 만나야겠다, 뭐 그런 말씀은 아니죠? (웃음)”

“아니죠. (웃음) 물론 너무 많이 봐서 그만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웃음)”


옆에서 김세영 조합원이 나 보고 웃기는 양반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부적절한 농담이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박정화 조합원은 내 실패한 농담에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저도 두려운 게 있어요. 지금까지 투쟁을 해 오면서 내가 쏟아낸 말들을 다 지켜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종교가 없어요. 종교 하나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종교를 가지려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데, 지켜야 하는 것들을 보면 도대체가 그것들을 다 지키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거예요. 괜히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약속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태껏 종교 하나도 갖지 못했어요.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까지 투쟁 현장에서 했던 말들을 다 지켜 낼 수 있을까, 다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참 두렵죠.”

“끝으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정말........ 고맙구요. 고마운 거죠. 제가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아요. (웃음) 조합원들을 보면 그래서 존경스러워요. 고맙기도 하고. 그걸 다 어떻게 표현해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박정화 조합원은 김세영 조합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특별히 세영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세영이가 제일 막내예요. 그래서 세영이를 생각하면..... (여기서 모두가 웃음보가 터져 한동안 고개를 젖히고 웃기만 했다.) 제가 세영이를 좀 편애해요. 투쟁은 한 집에서 한 명만 해야 하는 거잖아요. 가족이 다 하면 너무 힘들고. 아이들도 너무 힘들고....... 세영이도 빨리 복직돼서 연애도 잘하고 시집도 가고 해야 하는데........ 제가 엄마 같은 생각을 해요. (저쪽에 앉아 있는 다른 조합원들을 보면서) 저 늙은 총각들도 빨리 복직시켜서 장가 보내야 하는데...... (웃음)”

나는 그쯤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조합원들과 사무실을 나왔다. 황사는 더 자욱해져 있었다. 숨을 들이쉬니 먼지 알갱이 하나 하나가 코털에 포도송이처럼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아까 기자회견을 하던 지노위 정문 쪽으로 향했다. 나는 박정화 조합원 옆에서 따라 걸으면서 슬쩍 다가가 물어보았다.

“글 제목 좀 지어 주세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음...... 이걸로 해요. 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제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사람은 정류장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사람은 지하철역 쪽으로 가느라 우리는 제각기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투쟁 반년. 작년 가을에 강남성모병원 천막 농성장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수줍음 잔뜩 스민 목소리로 발언을 하던 조합원들은 어느새 출력을 감당 못한 확성기가 지지직 소리를 낼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듬직한 조합원들이 되어 있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어쨌든 반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조합원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마냥 뿌듯해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 내 심정이었다. 조합원들이 투쟁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자신들의 분노를 차분히 정돈해 자본가들을 향해 정확히 겨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연대 단위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기엔 그만큼 마음 든든한 일이기도 했지만, 흉하게 뒤틀려 버린 것이 아직도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는, 그러면서 하루하루 날들만 흘러가고 있다는 조급하고도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힘센 언론들이 다루어 주고 있지 않다고 해서 싸움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잊혀지긴? 어려운 상황일수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진다지만 결국 뭉칠 사람들은 다 뭉치게 돼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남한 땅 이곳 저곳에서 웃음과 눈물로 한 세상 휘몰아치듯 살았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2008에서 2009로 바뀌는 변화는 그저 숫자 하나가 짝수에서 홀수로 바뀌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만 같다. 삶이 계속되는 한 투쟁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다소 진부한 듯한 표현을 노동자들이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도록 자꾸만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 어떤 더러운 힘인지 노동자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넘겨짚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남들의 것이라 여기고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방영될 수 없다.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조합원들과 허물 없이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내 몸을 굴려 보아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는 그 희망이란 것을 곱새기고는 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함께 한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넘겨 짚어도 좋을 그 어우러짐은 정작 나 자신이 뛰어들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 희망이란 것이 별거 있나. 그냥 넘겨짚는 거 아닌가. 더 나은 쪽으로, 더 좋은 것을 위해 넘겨짚는 게 희망 아닌가. 미주알고주알 방어 태세를 잔뜩 준비해 놓은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불안 아닌가. 나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믿는다. 그들이 머지 않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 믿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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