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수사 정부 비판글 봉쇄 목적

관련 법상 처벌의 요건도 못갖춰

“용산사건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적극 참여 요망 : MBC 백분토론 시청자 투표”

지난 1월 28일 오전 광주지방경찰청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당시 MBC의 '100분 토론' 제403회 방송 <용산참사, 무엇이 문제인가>의 인터넷 투표에 대응하기 위한 전국 경찰의 ‘여론 조작’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실제 용산참사 원인에 의견을 묻는 이 투표에는 다른 설문보다 월등히 많은 4만149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경찰의 해명이나 이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MBC 100분 토론 '시청자 투표' 설문 목록 [출처: MBC]

경찰은 17일 ‘조회수 조작’ 혐의로 다음 아고라 네티즌 3인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비도덕적으로 인터넷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를 받고 있다.

논란 중 하나는 개인이 인터넷 토론방에 올린 글의 조회수를 조작했다고 그것을 ‘여론 조작’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치 판단을 떠나 개인 홈페이지 방문자 수나 게시물 조회수를 일부러 올리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쇼핑몰이나 기업체 홍보를 위해 ‘조회수 조작’은 지금도 빈번하다.

한 기업체의 웹프로그래머는 “사이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방문자가 많은 것처럼 게시판 조회수를 인위적으로 높이기도 한다”며 “이는 하나의 마케팅”이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개인 홈페이지 조회수를 부풀리는 건 인정받고픈 욕망의 발현이라고 설명한다. 황규만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온라인에서 개인의 지위나 인지도는 보통 조회수나 덧글 수로 판단되기 마련인데 이것은 가상공간에서 관계맺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진단했다. 이어 “따라서 네티즌들 사이엔 조회 수 조작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보통신망법 제71조 제5호, 제48조 제3항에 따르면 ‘대량의 신호, 데이터 전달 및 부정한 명령 처리 등으로 정보통신망에 장애를 발생하도록 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에 대해 “정보통신망에 장애 발생이 구성요건이므로 설령 조회 수를 조작했다 하더라도 장애가 발생한 일이 없는 이상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순 있지만 법적 처벌의 요건을 갖추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아고라 네티즌 3인의 혐의가 확인되면 ‘다음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입건할 계획이라 밝혔다. 하지만 ‘조회수 조작’만으로 형사처벌을 강행하겠다는 경찰 방침에 많은 사람들은 그 속내를 궁금해 한다. 즉 ‘다음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업무방해죄라는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18일 오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일반화된 조회수 조작 문제에 대해서 다 접근한 게 아니고 특별히 대통령 비방에 대해서만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 주로 주목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변도 17일 성명서를 내고 “무엇보다 경찰이 인터넷상의 정부 비판적 글쓰기를 봉쇄하려는 목적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의 통제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3월 18일자 10면 기사
중앙일보는 17일에 이어 18일에도 “한 네티즌은 지난달 20일 용산 농성자 사망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이제는 끝장을 보자’고 선동적인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해당 네티즌의 글은 MBC뉴스, 프레시안 칼럼, 한겨레신문 기사, 참여연대의 공개질의서, 일간지 만평, 패러디 만화를 순서대로 올려놓은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선동적인 글이라고 주장한 ‘이제는 끝장을 보자’라는 문구마저도 한 인터넷언론의 칼럼 마지막 문장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민변은 “이번 사건은 향후 수사기관이 인터넷 상에서 조회수가 높은 정부 비판적 게시글에 대해서 언제든 IP 추적은 물론 압수수색까지 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러한 수사가 노리는 것은 수많은 네티즌의 손발을 묶는 ‘냉각 효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