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운 ‘밥 굶기 대회’

[법률가 연속기고]③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노노모)과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비정규법.최저임금법 올바른 개정을 위한 법률가 공동행동'의 글을 연속 게재한다. 노노모 회장인 이병훈 노무사는 지난달 13일부터 비정규직법 개악에 반대하는 단식중이며, 공동행동 소속 변호사와 노무사들도 지난달 27일부터 릴레이 단식에 들어갔다. 구동훈 노무사는 지난 6일 단식을 진행했다. - 편집자 주

어린이날 휴일의 피로가 그대로 쌓인 채 무거운 걸음으로 출근하니 동료 노무사님이 묻는다.

“혹시 아침 드셨어요?”
“아니요”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 단식하시죠~”


오늘 예정된 단식자에게 급한 일이 생겨, 다음날 단식자로 예정된 내가 하루 일찍 단식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다. 먹고 마시는 일을 삶이 가져다주는 팍팍함을 견디게 하는 위로로 생각하는 나이기에,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어쩌면 나는 오늘 동료들을 채근하여 늦은 밤까지 미리 배를 넉넉히 채우는 잔꾀를 부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하루 일찍,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의 개악저지를 요구하는 단식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 일정으로 국회 앞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1시간동안의 1인시위도 하게 되었다. 오늘자 신문은 ‘전날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고온현상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고 하고, 기상청에 따르면 오늘 ‘오후 4시 현재 동두천의 낮 기온은 32.1도로 전날보다 1도 가량 올라 지금껏 5월 상순에 기록된 기온 중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1인 시위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올 무렵부터 몹시도 배가 고팠다. 겨우 한 끼를 굶었다고 퇴근 무렵부터는 머리까지 멍해온다. 그때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시험을 치렀는데 그 결과가 오늘 나왔고, 성적이 아주 좋다며 자랑이다. 빨리 퇴근해서, 피자 한판을 부상으로 내놓으라 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스스로의 권리는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위법한 행위를 관계기관에 알려 그 시정을 요구하였다는 이유로 해고나 불이익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위법행위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짤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짤리지 않기 위해선 참아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 일쑤다.

이번 법률가 릴레이 단식은 비정규직법을 위반하여 노동위원회 및 노동부로부터 그 위법성을 인정받고도, 사용자가 파견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의무나 차별시정의무는 무시한 채, 그 위법성을 개선하고자 요구하였던 해당 노동자가 오히려 해고를 당하는 현실 앞에서,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란 너무도 상식적인 생각이 실현되기를 희망한 데서 시작되었다.

권리 위에 깨어있는 노동자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보다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사용자법’이나 ‘자본법’이 아니라 ‘노동법’으로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은 아직 저 멀리 아득한데, 정부는 그 법조차 개악하려 한다. 이는 막아야 한다.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근로기준법 제1조 중에서)으로 하는 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국민소득 2만달러를 자랑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가입국 중 임시직 비율 2위,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연간 노동시간 1위 (2261시간, 2위 폴란드 1953시간), 비준한 국제노동협약수 28위(비준협약수 14개, OECD 평균 62.1개), 공적 사회복지 지출 24개 국가 중 24위(5.7%, OECD 평균 20.7%)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법은 좀 더 분명히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제대로 된 임금도 지급받지 못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확대하고,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의 법 개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준비(?)할 겨를조차 없이 시작된 갑작스런 단식과 유례없는 더위는 처음 노무사가 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던 것들이 무뎌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좀 더 깊이 반성할 것을 요구한 것인지 모른다. 엄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듯한 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아빠가 “밥 굶기 대회”를 하고 있다니 피자 파티는 내일로 미루어 주겠다는 기특한 얘기다.

문득 딸의 돌잔치 때에 누군가 해준 덕담이 떠올랐다.
아이를 위한 세상을 만들자.
행복하게 노동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덧붙이는 말

구동훈 님은 '노무법인 현장' 노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