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쪽, 국가폭력 그리고 은폐된 진실

[칼럼] 재개발, 자본의 강탈적 축적과 폭력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땅에 투자한다. 전두환 시절 그 유명한 빨간바지부터 지금 이명박 시절 박미석 전 사회복지정책수석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금언이다. 사실 그들이 하는 짓이란 농토를 사서 형질변경해서 집을 지어 이득을 보든, 개발·재개발지역에 투자해서 이득을 보든 일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돈이 있고 개발될 지역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아니면 권력을 동원하여 개발을 시키면 되기에 우리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렇듯 욕망과 이윤이 점철된 투기는 농민을 그리고 재개발지역 주민과 상인의 삶의 밑천을 훓어내는 강탈적 축적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시주변 비공식부문으로 내몰아내는 계급, 계층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급계층 분화과정은 실업과 비정규직을 넘나드는 극단적인 노동유연화와 연동되어 있으며 동시에 공간이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 배제된 자들은 수도권 전철 확대구간과 맞물려 서울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오산, 평택, 천안으로 내몰리고 있다.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보든 아니면 88 올림픽을 계기로 환경정화를 내세운 상계동 등지에 대한 재개발과 같이 과거에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개발, 재개발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건설회사가 한 지역에 대한 개발, 재개발 프로젝트를 내고 은행에서 돈을 조달하는 소위 파이낸싱을 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28조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용산참사 현장에 인접한 용산국제업무지구도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경제공황으로 비용조달을 못해 지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공황에 접어들면서 아파트의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이 은행의 부실을 가져올 정도로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이렇듯 건설자본과 은행을 포함한 금융부문이 나서서 개발, 재개발을 할지라도 이는 이미 구조화되어버린 투기를 바탕으로 한다.

한편 이렇듯 자본의 강탈적 축적과 이에 따른 계급계층분화는, 일방적인 토지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그리고 용역과 경찰을 동원한 폭력이 가능하게 하는 도시정비법, 경비업법과 같은 법제도에 의해 가능하다. 따라서 주거환경개선과 같은 거주자의 요구는 제도적으로 배제된 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적, 공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서울에서만 550여 군데에서 재개발이 진행되어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철거민운동은 재수없어 당하는 철거민의 아우성일 뿐이다. 용산의 철거민도 폭력을 피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망루에 올랐을 뿐이다.

3천쪽, 강부자를 위한 국가폭력의 은폐

지난 1월 20일 용산참사 이후 86년 건대사건 이래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27명의 검사가 동원되어 수사를 했고, 망루에서 살아나온 철거민들은 경찰 1명을 죽이고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힌 죄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미 짜여진 각본에 결론은 예정되어 있었다. 신원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가족의 동의도 없이 실시된 전례없는 부검조차도, 예정된 결론에 어긋나는 증거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유족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증거자료로 제시된 진압과 함께 따라 들어간 채증반의 영상은 웬일인지 결정적인 순간에는 음성이 나오지 않거나 찍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검사는 공소장의 기초가 되는 1만 쪽 정도의 수사자료 중 3천 쪽 정도의 분량을 내놓기를 거부하고 있다. 변호사는 수사자료 3천여 쪽을 내놓기를 재판부에 요청했고 재판부는 허용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검사는 거부를 하고, 재판부는 단지 검사측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말고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 불이익을 줄래도 검사측에 유리한 자료밖에 없는 상황에서 입에 발린 협박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변호인단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여 재판이 파행이 되고 있어도, 3천여 쪽이 나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예정된 결과를 향한 경로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PD수첩에서 방영된 바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증인을 채택하기 위하여 증거개시절차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개한 4백여 쪽에는, 시너와 같은 위험물질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진입한 특공대원과 출동한 소방대원의 진술, 매트리스와 같은 안전장구도 없이 그리고 필요한 300톤 크레인을 못 구해 100톤 크레인으로 강행했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발화지점에 대한 특공대원의 어긋난 진술들을 나중에 입을 맞춤으로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결정적 단서를 구성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진데, 주로 김석기를 비롯한 경찰지휘부, 특공대장을 비롯하여 현장에 진입한 특공대원,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 용역들에 대한 조사가 담겨있는 3천여 쪽에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많은 의혹들이 해명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들이 담겨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성장소에 위험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이 소진되기를 기다리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도 없이 바로 그 다음날 진압에 들어가는” 무모한 작전을 비판하면서, “외부의 압력이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상규에 어긋나는 진압이라고 밖에 할 수없다”는 전 경찰종합학교 교장 박종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3천여 쪽의 내용은 명확해 보인다. 결국 검찰의 수사자료 3천여 쪽 공개거부는 자본의 강탈적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폭력이자, 빨간바지 그리고 강부자체제의 구조적 폭력을 은폐하고자 하는 발악일 뿐이다.

수장을 직접 임명한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 막강한 권력, 검찰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한다면 용산참사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단지 철거민뿐만 아니라 조만간 나의, 우리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기에, 그 시금석은 3천여 쪽의 수사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