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 오잘란" 그 한마디에

[기고] 디야르바크르 시장의 시장직 상실위기

제가 사는 디야르바크르는 약 2천여 년 된 아름다운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입니다. 이 성의 내부지역을 관할하는 시청(우리의 구청에 해당)의 시장은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 신임 시장으로 당선된 '압둘라 데미르바시'씨는 5년 전 지방 선거에서도 시장으로 당선되었었습니다. 그가 시장 재임 시 시정을 펼치면서 쿠르드어 사용을 포함한 다문화 정책을 펼치다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터키의 헌법에는 터키에는 오직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민족만이 존재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구의 약 1/3에 달하는 쿠르드족과 다른 소수민족의 존재 자체가 무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소를 당하여 시장 직을 상실한 바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사연은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압둘라 데미르바시 씨가 이번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시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가 시장직을 상실하고 야인으로 있던 때에 쿠르드 위성방송인 로즈(Roj)TV에 출연하여 '브레즈 오잘란'이란 단어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었는데, 시장에 당선 되자마자 2년 반의 실형과 함께 모든 언론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나도 잡아가라" 캠페인 열려

쿠르드족 무장 게릴라인 쿠르드 노동자당(PKK)를 창설한 압둘라 오잘란은 터키 정부에 의해서 테러리스트의 수장으로 취급되며 현재 섬 하나를 통째로 압둘라 오잘란 만을 위한 감옥으로 만들어진 곳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브레즈'는 한국말로 번역하면 '친애하는' 정도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Dear'보다는 'Mr.' 에 가까운 표현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의례적으로 붙이는 존칭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와 비슷한 법안이 터키에도 존재하여 터러단체(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빨갱이)의 수장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에 출연하여 공식적으로 테러리스트의 수장인 압둘라 오잘란에게 '브레즈'라는 존칭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압둘라 데미르바시는 두 번째로 시장 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압둘라 데미르바시 씨가 기소를 당한 후 터키의 쿠르드족 사회에서는 작가들이 그의 글에서 '브레즈 오잘란'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정치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인터뷰를 자청하여 '브레즈 오잘란'을 언급하는 등 소위 '나도 잡아가라'는 캠페인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바 있습니다.(이점 역시 한국과 비슷하죠?)

물론 상고를 하고 상고에서도 패하면 유럽연합의 재판소까지 끌고 갈 것이긴 하지만, 터키의 상급심에서 판결이 내려진다면 일단 시장 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후에 유럽연합 재판부에서 압둘라 데미르바시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더라도, 터키가 아직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기에 판결을 무시했을 때는 유럽연합 가입 협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 이외에 이를 강제할 수단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터키의 상급심에서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압둘라 데미르바시는 곧바로 시장 직을 상실하게 되고, 그러면 정치적인 이유로 두 번째로 시장 직을 상실하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제가 이 시장을 방문했을 때, '나 이번엔 2년 반 먹었다'라면서 씁쓸한 얼굴로 푸념을 하더군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 눈앞에 닥쳐있기에 터키의 상급심에서 압둘라 데미르바시 에게 2년 반의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이지만, 시장 직 박탈을 선고할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설사 두 번째 시장 직 박탈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쿠르드족 정당(DTP)소속의 다른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는 압력의 효과는 이미 충분합니다.

이에 덧붙여서 디야르바크르 주 전체를 관할하는 시장(우리의 광역시장에 해당) 역시 선거운동 기간 중 지방 방송에 출연하여 쿠르드어로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최근 기소를 당했습니다.

쿠르드족이 지방선거에 승리한 후 쿠르드족 정당인 사회민주당(DTP)과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터키 정부의 보복성 공격이 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지난 글에 몇 가지 덧붙여

지난 메일에서 마르딘 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44명이 '마을수비대' 체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후 마을수비대에 관해 몇가지 사실을 더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터키의 군사통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인지라 다시 짧게 전합니다.

터키의 인권단체(IHD)에서 이 사건 이후 '마을수비비대'가 그간 저질러왔던 일들에 대한 짧은 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992년에서 2009년 사이에 터키 군에 의해 조직된 '마을수비대' 제도에 의해서 38개의 마을이 파괴 되었고, 14개의 마을에서 주민이 완전히 소개되었으며, 14건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였고, 22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 마을 수호자에 의해 293건의 마을 습격작전이 펼쳐졌었고 이로 인해 236명의 민간인이 사살을 당했으며 263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외에도 50명이 납치당한 후 살해당했으며, 민가에 대한 약탈사건이 70건이 발생했었고, 562건의 고문이 자행되었습니다.

마르딘의 마을에서 44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한 후 이 마을을 방문코자 하였으나 군의 통제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근의 마을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트럭운전을 하면서 이 마을을 자주 방문하였던 한 사람이 증언하기를, 이 마을이 '마을수비대'를 받아들인 이유는 터키 군의 비밀 조직이 마을 지도자의 친척 6명을 사살한 후 쿠르드족 게릴라(PKK)의 소행이라고 거짓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친 PKK 성향이었던 이 마을의 지도자는 이후 PKK에 앙심을 품게 되었고, 터키 군이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면서 PKK에 저항해 싸우도록 조직한 '마을수비대'가 되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마을 지도자는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동족을 상대로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지른 후인지라 되돌릴 수 없었고 더욱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주변 다른 마을들을 더욱 위압적으로 대하면서 괴롭혔다고 합니다.

이후 지방 신문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전 '마을수비대' 한사람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면서 이 증언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 인터뷰에 의하면 전 마을 수비대였던 이 사람도 자기 친척이자 마을 주민이었던 사람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 터키 군이 PKK에 의한 짓이라는 거짓 정보를 알려준 후 '마을수비대'를 자처하였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이 사람은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서 진실을 알게 되어 마을수비대를 그만뒀지만 그는 군에 의해서 자신의 마을에서 추방되어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날자의 신문에 또 다른 기사가 실렸더군요.

마르딘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우르파란 도시의 한 시골마을에서 역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마르딘의 사건이 발생한 후 '마을수비대' 시스템에 관해 언론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여 더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 마을에서 '압둘케림 오락'이라는 '마을수비대'가 세 아이의 어머니인 33살의 여성과 이 여성의 76살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죽이면서 '마을수비대'가 이렇게 장담을 했다고 하는군요. "내가 잔끄르테(마르딘의 마을 수호자간의 충돌로 44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한 마을)와 같이 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악랄하게 할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 '마을수비대'를 경찰이나 군이 체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살해당한 여성은 압둘케림 오락의 전처였었는데, 이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마을에 살던 이 두 가족의 농장은 서로 이웃하여 있었는데 이혼으로 쌓인 앙금이 농장의 영토분쟁으로 비화되어 이 두 사람을 죽게 만든 것입니다.

'마을수비대'의 배후에는 군부가 있고, 터키는 군부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정부보다도 훨씬 크기 때문에 터키에서 군부의 비호를 받는 이를 경찰이 체포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압둘케림 오락이 살인을 하면서도 이토록 호언장담을 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간 그가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쭉 그를 미워했었기 때문에 받았던 충격은 그만큼 크군요.

그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후 '이라크 철군이 이뤄질 때까지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공언하고서 5년을 넘게 한마음으로 그를 미워하면서 버텼었기에...

미움도 사랑이라고 했던가요?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그를 원망하는 마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미워할 대상이 사라져버린 후에야 그에 대한 미움이 그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음껏 미워할 기회마저도 주지 않고 가버린 그를 앞으로 더욱 미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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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 PKK , 디야르바르크 , Diyarbak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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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미움도 사랑이라... 이명박은?

  •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터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