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랑이 있어요

[이수호의 잠행詩간](36) 다시 용산에서 6

그날
포근한 눈조차 얼어붙어
마른 깡추위 몰아치던 날
하늘로 오르는 망루에 올라
여기 사람이 있어요
소리치며 불탈 때
나에게는 왜 몇 번 그 외침이
여기 사랑이 있어요
라고 들렸을까?
꽃다지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 부를 때 나는 가끔 왜
사랑이 꽃보다 아름다워 로 들릴까?
확실한 어원은 잘 모르지만 아마
사랑에서 사람이 나왔거나
사람에게서 사랑이 나왔음은 틀림없다
결국 사람과 사랑은 같은 말이다
생각해보면 망루에 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가장 절실히 사랑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적당히 살 수도 있을 텐데
그 사랑이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아 안타깝게도
탐욕과 무지는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사랑은 죽일 수 없어서
깨진 향수병에서 넘치는 향내처럼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용산 4지구를 넘어 서울 전체로
아니 전국 방방골골로 넘쳐흐르고 있다
용산의 사랑은
고결한 분노로 끝없는 동지애로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하고 싶어 한다

* 용산에서의 학살, 반년이 지났다. 책임을 숨기고 떠넘기기 위해 비열하게 모른 척하며, 유족과 범대위를 탄압하기만 했지만, 그 진실은 꽃향기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