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부른 고용문제, 노동-환경 연대로

사회포럼, 환경과 노동의 양립을 위한 노조 개입 등 논의

이호동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대표(전 발전노조 위원장)는 “10년 전만 해도 한국전력의 사수대로 ‘한전 해체’를 주장하던 환경 활동가들을 막았다. 원자력 발전소 정문에서 사측 지시로 삿대질을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서로 적대로 싸워야 했던 아픈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2002년 발전파업을 전후로 다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은 “2002년 발전노조 파업으로 환경과 노동은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이해했다”면서 “민영화로 한전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환경단체의 발상은 지극히 나이브하고 자본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비판했던 노동운동은 환경운동이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발전파업 막바지엔 공동선언문을 내는데 까지 발전했다”고 밝혔다.

2002년 3월 27일 발전노조 파업 31일째 되던 날 이렇게 환경단체와 노동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전력산업 민영화 유보와 친환경적인 전력산업구조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노동단체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충돌과 이견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왔다. 이런 ‘어색한 공존’을 이어왔던 노동과 환경이 보다 진일보한 연대전략을 고민하고, ‘고용’과 ‘기후협약’의 양립을 모색했다. 28일 한국사회포럼 2009는 기획토론 ‘환경과 노동, 차이를 넘어 소통’이란 주제로 토론을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친환경과 친노동의 양립을 위한 ‘노동-환경’의 연대전략을 모색하고, ‘포스트 교토’ 체제를 맞은 ‘고용과 기후변화’의 조화를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또 △녹색 전환 거버넌스 구축을 둘러싼 ‘노동-환경’의 연대전략 △국내 환경단체와 노동계의 바람직한 네트워크 설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등 각종 회의에서 국제노총과 협력방안 모색 △온실가스 규제와 녹색일자리 전환에서 노동의 개입전략 모색 등이 제기됐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노동계 목소리를 대변해온 아나벨라 로젬버그 국제노총 지속가능한 개발부서 정책국장은 기후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노동조합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아나젤라 로젠버그 국장은 “준비 안 된 기후변화정책은 빈곤,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가장 취약한 집단에게 가장 가혹하게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러한 상황은 매우 불공정하며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우리는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나벨라 로젠버그 국장은 기후변화 의제에서 노조가 우선해야 할 과제 네 가지를 제안했다. 그녀는 △기후변화에 관한 노동조합의 확고하고 적극적인 입장과 행동 필요 △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원칙하에 반노동적 전환을 저지할 것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노동 내부의 대화를 강화하고 공식화할 것 △작업장 내 배출 감축 노력에 집중을 제시했다.

‘노동과 환경의 연대 사례와 노동조합에 제언’을 발제한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은 “환경과 노동은 88년 15살 소년 노동자 문송면 군의 급성 수은중독 산재사망을 계기로 연대하면서 우호적인 관계였다”며 “노동운동은 인간 사이의 불평등을, 환경운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에 주력하면서 관심사와 접근 방식이 달라 점차 연대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이상훈 위원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과 에너지 공공성 강화라는 주제는 지금 환경과 노동의 공통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녹색 일자리를 말하지만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한국의 노동과 환경계는 2000년 독일의 녹색연정이 원전 폐기정책을 수립하면서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어떤 협의를 진행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환경과 노동의 양립을 위한 노조 개입의 전제’를 발표했다. 이정호 국장은 “한국사회에서 제조업 비중은 줄어드는 데도 불구하고, 기계공업(+21만명), 화학공업(+5만명), 전기전자(+17만명)업 등 탄소 과다 배출업종에선 오히려 취업자 수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호 국장은 “제조업은 축소되고 서비스업은 확대되지만 저탄소 지식산업에 속하는 통신, 금융, 교육, 보건복지 부문의 비중은 낮은 반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 운수창고업의 비중이 전체 서비스업 취업자의 30%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며 “줄어든 중위 소득군 제조업 일자리를 대신해 늘어나는 서비스업 일자리는 소득 측면에선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국장은 또 “기업경영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홍보와 달리 기후변화, 사회적 책임경영 등 외생변수를 기업내부로 옮겨다 놓고 상시적 인력 구조조정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기업경영자들은 ‘자발적’이란 관용어구를 붙여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는 지연 전술로 일관하면서 ‘지연’이 먹히지 않을 때 ‘산업의 해외이전’을 주장하며 정부와 노동을 협박한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국장은 기후변화에 조응하는 산업구조 재편의 전제로 △친환경 노동 △노동자가 고용안정망을 통해 회색일자리에서 안전하게 녹색일자리로 옮길 구조 △거버넌스 구조 개입을 제시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제조업 중심의 고용과 성장구조 전환시 고용감소에 직면하기 때문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선순환 구조조정을 위한 산업정책 마련과 개입이 필요하다”며 “자본 주도의 기후변화 대책을 바꾸고 노동과 환경이 공동으로 정부에 정책전환을 위한 산업정책개발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은 “노동조합은 에너지의 공공성에 대해 보다 폭넓게 해석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지속불가능한 산업은 축소하고 녹색산업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탄소세 등 환경세를 도입 강화하고 근로소득세를 줄이는 조세개혁을 단행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재각 부소장은 “고용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노사정 대화체를 구성해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과 이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노동자들이 참여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호동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대표는 “에너지 산업의 노동과 환경의 소통은 해왔다지만 환경운동의 연대의지에 노동운동의 실천으로 답해주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실질적 연대 진전을 시켜내는 과정이 요구된다. 발전과 가스같은 단위 사업장을 넘어 상급단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