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이라도 있는가

[기고] 여전히 3000쪽이 문제다

숨을 죽이고 재판을 지켜봤다. 판결문을 읽는 재판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지난 6개월간의 치열한 공방의 공판 결과요, 1월 20일 일어났던 용산 참사의 사회적, 역사적 판단이며 정리였기 때문이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발화지점과 원에 대한 얼핏 과학적이고 치밀해 보이는 긴 설명이 안타까웠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망루 안의 아수라장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불이 났는지를 정확히 가리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연히 진술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발화원인으로서 화염병) 일체를 부인하는 철거민들과 상당수의 특공대원들의 진술을 배척했다. 그리고 단순히 화염병을 봤다는 몇몇 경찰들의 증언만 증거로 채택해 철거민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 구체적 행위자를 특정하지 못하자 오히려 공동정범으로 망루에 있었던 철거민 모두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문제는 불이 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 있었고, 원인 제공을 누가했느냐다. 철거민들이 간선도로변의 건물에 망루를 짓고, 새총 등으로 (경찰과 용역을) 위협하고, 폭력단체 수준의 용역들에게 맞서기 위해 많은 인화물질을 가지고 옥상을 점거한 것은 사실이다. 생존권을 위협받은 철거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자기 재산권의 심각한 타격 앞에서 어느 국민이 자유로웠던가. 거기에 대응하는 정부와 우리 사회의 태도가 문제다.

만약 이런 일이 (정부가) 그토록 따라 배우려는 미국이나 일본(좀더 품격 높은 사회인 유럽은 아니더라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미국 연방경찰이나 일본 자위대 대테러 특공대가 투입되어 과잉진압을 했을까. 아니면 평화적 해결을 위해 시간을 가지고 대화와 설득의 노력을 했을까.

묻는 내가 어리석다. 문제는 과잉진압이다. 재판에서도 밝혀졌지만 망루에 투입되었거나 현장에 있었던 하급지휘관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무리한 진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차 진입에 실패하고 경찰이 나왔을 때, 그 때라도 새로운 판단을했었다면 이런 참사는 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보호장비도 없이 들어갔다고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나 2차 진압 시에는 1차 진압의 실패로 경찰들이 개인장비(분말소화기, 방패 등)를 소진하거나 망실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그 경찰을 다시 망루로 등을 떠밀어 들여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그래서 경찰과 철거민 6명을 죽게한 직접적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이번 재판에서는 이런 문제의 진실을 파헤쳐야만 했다. 재판부가 문제 없다고 한 조기투입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현장 지휘관들이 반대한 무리한 작전지시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결정했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검찰이 제출을 거부하는 미공개 수사기록 3000쪽에 있다. 왜 검찰이 재판부의 명령에도 그토록 숨기려고 하겠는가. 그건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 검찰이 언제 피의자나 참고인 등의 인권을 그리도 귀하게 여겼는가. 신정아 사건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서도 오히려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 정보를 흘려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던가. 자기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가 아니라면 검찰이 그렇게 완강하게 3000쪽을 붙들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재판부도 3000쪽을 내놓지 않는 검찰에게 재판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으나 무기력한 대응이었다. 판결문 머리에 ‘검찰이 3000쪽을 제출하지 않아 아쉽다’는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어가다 피고인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를 적용하는 부분에서 잠시 울먹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왜 그랬을까.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동료가 동료를 죽인 꼴이 되기 때문에 그 가혹한 현실 앞에 잠시 감정이 격해졌던 것인가. 아니면 이 참혹한 현실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 아니면 그렇게 하는 자신이 안타까워 그랬을까. 이명박 시대에 판사로서 살아남는 일이, 법관으로 더 출세하는 일이 그다지도 어렵고 큰일이었을까. 그 순간 나 자신도 혼란스럽고 안타까웠다. 다만 이 재판이 정성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전히 문제는 3000쪽이다. 거기에는 짐작컨대 경찰 고위간부와 검찰, 청와대의 개입과 조기 진압에 대한 무리한 판단과 명령 등의 과정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 세녹스 유증이 자욱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망루 안으로 무리하게 2차 진입을 지시한 명령과 판단착오 등을 누가 저질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야 심지어 용역과 경찰이 어떻게 공조를 했고 건설 재벌과 정치권력이 어떻게 유착했는지 밝혀질 것이다. 절차와 과정이 불법이면 결과도 불법인 것이 법의 논리가 아닌가.

재판부는 판결을 하면서 법의 사회적 책무를 얘기했다. 그것은 사실을 밝혀 진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존재하고 그들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는 데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오히려 국가권력을 비호하고 과도한 권한 행사를 고무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이것이 사회적 책무인지 제대로 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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