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사장님한테도 가르쳐라

[교육희망] 청소년 알바생의 하루 재구성

  청소년 알바 모집 광고물/ 임정훈 기자
검색창에 ‘알바’를 친다. 19금 표시가 박힌 사이트들이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다시 ‘청소년 알바’로 검색어를 바꾼다. ‘청소년아르바이트 천국 알바헤븐’, ‘청소년알바 노가다’ 등등 사이트가 눈에 띈다. 클릭!

두 달 만에 또 알바를 구하게 됐다. S.C(Shift Coordinator, 준 매니저)가 입에 빵만 쳐넣지 않았어도 그냥 참고 다니려 했는데……. 오늘 돈 받고 바로 때려치웠다. 입만 열면 버라이어티한 쌍욕으로 기를 죽이고 등짝을 때리는 것 까지는 원래 그런가보다 참았다. 하지만 그날은 가르쳐주지도 않은 햄버거 만들기를 시키면서 못한다고 욕하고, 월급을 깔 거라고 협박하더니 급기야 내 입에 시커멓게 탄 빵을 쑤셔 넣었다.

퀴퀴한 냄새나는 크루룸(직원 탈의실)에 쭈그려 앉아 매일 똑같은 버거세트로 10분 만에 허겁지겁 점심을 때운 것도, ‘꺾기(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에만 30분에서 한 시간씩 강제로 쉬게 한 뒤 휴식시간 시급을 깎는 것)’를 당한 것도 생각해보니 열 받는다.

‘청소년 알바’ 카테고리를 클릭하니 알바를 구하는 업체 정보가 실시간 업데이트 중이다.
수탉치킨, 치즈만피자에서는 배달 알바를, 에쓰라인 주유소는 주유원 및 세차원, 우돈 갈비집에서는 홀써빙 할 사람을 구한단다. 급여가 낮거나 협의 뒤 지급한다는 업체, 집과 멀리 떨어져 있는 업체를 스킵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오후 5시 반부터 9시반까지 4시간만 일하면 2만원을 준다는 팥대우 일렉트로닉스의 냉장고 조립이나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하루 바짝 일하면 그 자리에서 6만5000원을 벌 수 있다는 ‘퀵숑 택배’ 야간 택배 분류 작업이 확 땡긴다. 10대도, 여자도 가능하단다. 하지만 택배 분류작업 하러 갔다가 도망친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던 영진이가 생각나 마음을 접는다.

영진이 말을 종합해보면 그런 거다. 20킬로 짜리 쌀을 솜털뭉치인양 거뜬하게 던지며 일을 시작했는데 새벽 2~3시쯤 되니 졸리고 삭신이 쑤시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더란다. 그래서 그냥 튀었다고. 일 다 하고 돈 받고 왔다는 철민이는 하루 꼬박 밤샘했더니 골병든다고, 일 한 거에 비하면 돈 많이 주는 것도 아니라고 입에 거품을 물며 맞장구를 쳤다.

주유소를 다시 가긴 좀 그런데……. 반년 쯤 일하던 주유소를 그만 둔건 발등을 찍히고 나서다. 그날따라 몸이 별로 안 좋았다. 대신 뛰어줄 애를 못 찾아 억지로, 억지로 버티고 일하며 들어오는 차를 유도하다가 차 타이어가 발등을 찍고 갔다.

다쳤다고 이야기했더니 “그게 다친 거면 나는 벌써 수백 번도 더 죽었겠다”며 핀잔을 주는 소장님 보며 알아서 파스 붙이고 말았다. 시급은 3800원이었지만 최저 임금이랑 200원 밖에 차이 안 나는데다가 다른 주유소는 계산 안 맞으면 시급을 깠지만 거기는 그렇게 깐깐하게는 안 해 마음에 들었더랬다.

노동부에서 청소년 알바 10계명이니 뭐니 해서 최저임금 4000원을 챙겨 받아라, 초과근무 하면 50% 가산임금 받을 수 있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호법이나 근로기준법에 따라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애들한테 뿌리는 것을 보면 좀 어이가 없다.

그걸 우리가 백 날 알면 뭐하나 사장은 딴 소리 하는데. 그걸 사장들이 알면 2500원, 3000원 받고 일하는 애들은 최소한 없을 텐데 말이다. 산재보호? 근로기준? 올해 3월 오토바이 배달하다 사고 난 민우는 주인한테 욕만 먹고 병원비 때문에 엄마 속 어지간히 썩이고 치료하느라 알바도 관뒀다.

사이트 뒤져 봤자 답도 안 나올 것 같다.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부대찌개 집에 알바 구한다는 전단지 붙었던데 내일은 거기에나 가봐야겠다.


  청소년 알바 10계명

지난 달 27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 실태 조사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알바 고교생의 이야기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4일 ‘청소년노동인권개선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이수정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는 “청소년 노동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부 근로 기준국에 이를 관장하는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각 지방노동청에 청소년 노동 전담 감독관을 배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단속 위주, 설문조사 중심으로 진행했던 ‘청소년 근로 보호 종합대책’에 대한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노무사는 청소년을 노동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최저임금 현실화 △청소년 노동자 중심의 근로감독 실시 △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후속 조치 강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 청소년 노동 관련법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정규교과에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청소년 따이루 씨도 “학칙으로 학생 노동을 금지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소년 노동자의 실태는 있지만 청소년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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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 최저임금 , 아르바이트 , 알바 ,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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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을 노동하는 주체로 인식,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 청소년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혹은 거친 표현이지만 '민중적 요구'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청소년은 '일하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리의 이면에 보호주의적 족쇄가 있건 혹은 역사적 투쟁의 산물로써 쟁취되었건... 그 권리는 지켜져야되고 확대되야 합니다. 이에 대해 보다 갚은 논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청소년노동문제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것과 함께 청소년에 대한 사회 공공의 보장을 확대하는 교육복지/청소년복지와 같은 접근과 요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