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도 100일 지나 사람이 되었다

[미디어충청] 발레오공조코리아 공장엔 사람이 살고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구별에 사는 사람은 2010년 2월 8일 68억1464만231명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도처에서 여자 친구와의 100일째 만남을, 아이가 태어난 100일 날을 기념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기아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이의 죽음 100일을, 원치 않는 대통령이 선거에 당선된 100일,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어”라며 강가 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연속에 충남지역에서도 공장을 점거한 채 100일 넘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있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가에 자리 잡은 자동차부품공장 발레오공조코리아. 프랑스 발레오 자본이 이윤이 덜 남는다며 공장을 청산하고, 노동자 전원을 해고해 100여명이 공장을 지키고 있다. 사측은 노동법을 고려해 11월 30일 노동자 전원을 재해고 했다. 이미 10월 27일, 3일 뒤인 30일자로 퀵서비스를 이용해 근로관계 해지를 통보했으므로 노동자들은 내용적으로 10월 말 해고되었고, 그때부터 공장사수 투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되짚어보니 8일경이 100일째 되는 날이다.

산 중턱에 새순이 돋아나 봄을 알리는 요즘,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은 무엇을 기념하고 있을까?

100일

공장 한 모퉁이에서 3명의 포장마차멤버(일명 포차멤버)가 모여 있다. 포차멤버는 회사가 청산절차를 밟아 식당이 폐쇄되자 동료들의 식사를 해결해주기 위해 결성한 멤버다. 연대 온 사람들이 있으면 짬뽕, 콩나물국 등을 만들어 나눠먹고, 투쟁하는 동료들을 위해 틈틈이 간식도 준비했다. 그런데 요즘엔 포차멤버들이 별로 할 일이 없다. 업체에서 매끼 1인당 1,300원가량 하는 밥을 배달해서 먹기 때문이다. 얼마나 투쟁이 더 끈덕지게 갈지 모를 일. 노조는 투쟁기금을 생각해 비용이 적은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00일이요? 몰랐네. 그러네. 날짜 가는 걸 모르겠어요. (공장)안에만 있다 보니까. 직장 생활하면 주말엔 쉬고 하니까 알았는데….”

  포차 멤버들이 포장마차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 미디어충청]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배달해온 밥을 배식해서 먹고 있다.


35~6세 또래인 한씨, 최씨, 정씨 모두 공장에서 잠을 잔 지 100일이 지난줄 모르고 있었다. 그 뭐 좋은 일이라고 날짜를 일이리 꼽을까 하는 식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잠을 잔 지 100일이라니…. 그들에게 100일은 기념하는 날이 아닌 기억을 곱씹고, 분노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100일 동안 우린 무엇을 했을까? 한 계절이 지나도록 얼굴을 마주 보고 잔 동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 사측은 왜 대화하자는 요구조차 외면하는 것일까…. 어느 찰나의 생각들은 이들을 잠시 침묵하게 했다.

“돌아보니 100일 동안 밥도 하고…(웃음). 여기 저기 매일 1인 시위에, 일본, 프랑스 원정투쟁, 한국에 있는 발레오 사업장 타격 투쟁하면서 부산, 창원 등 다니고. 지역에서 집회하고, 사측에 대화하자며 직접교섭 요구하고, 공장에서 매일 잠을 자며 사수 투쟁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났어요. 우리 상황을 밖으로 알리는 것이 중점이 되었다면 이젠 돌파구를 찾기 위한 투쟁들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실 프랑스의 경우 2차까지 원정투쟁을 했지만 많은 성과가 있을 거라곤, 사측이 바로 직접교섭에 나올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어요. 주변 동료들은 6개월 정도, 더 길게 투쟁해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측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대답 없는 메아리

투쟁이 길어지다 보면 작은 일에 예민해지기도 한다. 100여명이 공장안에서 규율을 만들어 공동생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월급도 안 나오고, 가족들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오히려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다. 춥고, 몸이 무겁고, 스트레스에 머리도 아프고, 동료가 코를 골아 잠을 못 자기도 하고…. 그런 것들 말이다.

“가장 큰 힘든 거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사는데, 가정사 등 개인적으로 힘든 데 속내를 모르니까 상처를 주기도 하죠. 그리고 수입이 없다보니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저는 지난 6월에 쌍둥이 낳았어요. 내가 직장을 다니고, 투쟁을 하다 보니 돌봄 노동자들을 오라고 하려 했는데… 나라에서는 지원도 안 되고…. 그러면 한 달에 160~170만원이 나가요. 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도 70~80만원 이래요. 그러니 우리 같은 생산직 노동자가 어떻게 돌봄노동자를 오라고 하겠어요.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지금은 수입이 없어 돈을 까먹고 있죠. 앞으로가 더 문제예요. 이별 아닌 이별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애들을 시골로 보낸다거나…. 아내가 힘들어 하는 건 애들이 아빠를 보면 생활해야 하는데 아빠를 못 보니까…. 불만 아닌 불만 섞인 인 말투로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러나 “투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노동자, 가족들의 바람은 메아리쳐 돌아온다. 사측은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공장에서 전기세 등 부대비용이 들어간다며 노동자 100여명에게 개인당 400만원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1월 23일경 우편으로 통보했다. 4억원 가량이다. 직접교섭을 촉구하는 노조의 요구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지만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자주 우편을 보낸다. 정씨는 얼마 전에 집에 갔다가 또 우편물을 한 장 들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전자우편을 각 가정으로 보내는 데 내용은 노조가 대화를 회피한다는 것이예요. 가족에게 통지문 보내 불법 점거 하고 있다는 둥… 노조가 대화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으면서 가족들에게 걱정과 염려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경영상의 위기라고 하면 차라리 인정하겠어요. 고통 분담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협상자리에서 일단 얼굴 맞대고 대화하자는 것이에요. 1차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장 정상화를 위해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자는 거죠.”

  회사에서 개별 집집마다 보내는 우편 중 일부

최소한, 그리고 최대한

“조합원들이 뚜렷하게 목적이 있지만 조금 힘들어 하기도 해요. 그리고 노조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측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투쟁을 해야 하죠. 모 아니면 도, 이판사판이예요. 연대를 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금속노조 사업장이라고 해도 어용노조 같은 곳이 있어요. 어용 노조가 너무 판치고 있는 세상이라…. 그래서 형식적인 연대보다는 실질적인 연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죠.”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투쟁을 고민한다. 또한 작은 냇물이 바다를 이루는 연대를 바라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꿋꿋이 투쟁하는 노동자의 길을 가기 위해 마음을 다 잡고, 노동자의 무기라 불리는 ‘단결’과 ‘연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도무지 공장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평균 10년 이상 일했어요.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열 받고. 경제위기라고 하는데 어딜 나가나? 나라 정책이 개판인 세상에서…. 나가는 것도 두렵고, 나가자니 열 받고. 하루아침에 짤려서 황당하면서 억울하다.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는 노조에 가입했어도 어린 나이에 철없이 일했어요. 돈 주니까 일만 했죠. 해가 거듭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 나도 노동자니까 이런 일 겪고 보니 막막한 거죠. 최소한 여기서 해 볼 때까지는 해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쟁하는 거예요. 최대한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보고, 그런 다음에 뭐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미안해서 동료들 그냥 두고 나가지 못해요.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인데….”

100일이란 날짜 그 차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100일이란 물리적 시간과 동시에 그 기간 무엇을 했고 무엇이 변화되었는지가 중요하다. 100일 동안 노동자들은 변한 듯 보였다. 몸과 마음은 힘들어도 공장을 사수해야 한다는 목표가 더 뚜렷해졌고, 사측을 향한 비판의식 또한 높아졌다. 톡 쳐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심지가 굳어졌고, 매서운 겨울에도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동료애 혹은 동지애를 가졌다.

그러나 노사 관계는 변한 게 없었다. 노사는 한 번도 직접 대화를 한 적이 없고, 노조는 여전히 투쟁을, 사측은 여전히 탄압을 하고 있다. 곰도 100일이 지나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 말 못하는 짐승도 변했다는 데….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의 투쟁이 끝나는 것은 오로지 사측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일 넘게 작업복이 의자에 걸쳐 있다. 기름때가 묻어야 할 작업복. 언제 이들은 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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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오공조코리아 , 자동차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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