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으로 생사 갈림길, 그 곁에 있는 삼성

[미디어충청]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20층 중환자실로 간 박지연씨

“지연이가 아니야. 못 알아보겠어”

저녁 7시에 20분간 중환자실에서 면회를 마치고 나온 박지연씨 어머니 황금숙씨가 소리조차 못내고 꺼이 꺼이 울다 엘리베이터 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리고 “아이고 우리 애기” 소리만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하루 하루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박지연씨.

BTM-ICU(골수이식 중환자실) 문이 열릴때마다 온갖 의료기구를 몸에 꽂고 있는 박씨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박씨는 현재 폐의 기능이 정지됐다.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며 떨어지는 혈압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투입하고 있지만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신장 투석조차 할 수 없어 온 몸은 붓기로 가득하다. 면회를 한 이들은 박씨가 입술을 깨물어 입술이 바깥쪽으로 붙여진 상태이며, 눈의 초점도 흐리다고 했다. 주말에는 팔다리를 움직여 묶어두었지만 이제는 움직일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며 고개를 떨궜다.

오전 11시, 오후 7시 하루에 두 번 단 한 명씩만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에서 박씨는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두지도 못하는 백혈병은 외로운 병이다.

위로의 말조차 건내기 어려울 정도로 30일 병원 20층 중환자실 앞은 그렇게 슬픔으로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삼성반도체 공장의 실상을 세상밖으로 알리겠다는 사람들 역시 황씨를 부둥켜 앉고 “어머니가 힘 내셔야 해요”라며 슬픔을 나눌뿐이었다. 삼성측 직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성 역시 황씨 주변을 가만히 서 있거나 취재진을 향해 “사진 그만 찍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박지연씨의 어머니 황금숙씨가 오후 7시 면회를 하러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사망, 그리고 사망, 또 사망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만 23세의 박씨는 2007년 9월 백혈병이 발병해 예닐곱 차례의 항암치료를 잘 견뎌왔다. 강경여상 3학년에 온양공장에 입사하고, 21살 되던 해에 백혈병이 발병했으니 햇수로 고작 3년만이다. 어렵게 골수이식도 했지만 2009년 9월 백혈병이 재발, 치료 도중 27일 새벽 갑자기 뒤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왔다.

박씨는 온양공장에서 역한 화학약품 냄새를 참아가며 힘든 노동을 견뎌왔다. 그래봐야 O/T 달고, 12시간 주야맞교대를 일주일동안 4일 해도 13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몰드공정과 피니시 공정에서 일한 박씨는 백혈병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소인 방사능과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일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몰드공정의 QE룸에는 2대의 방사선 발생장치가 있었고, 피니시 공정에서는 화학약품을 사용해 도금 접착성을 실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측은 백혈병 진단을 받을 당시 담당의는 박씨에게 "화학약품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9년 12월까지 확인된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자는 22명이다. 기흥공장 14명, 온양공장 4명, 수원사업장 1명이 조혈계 암에 걸였으며, 기흥공장 6명, 수원사업장의 1명이 사망했다. 건강한 성인 남녀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집단적인 조혈계 암에 걸린 사건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을 일이었다. 박씨가 앓고 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역시 젊은 사람에게는 인구 10만명 당 1~2명이 걸리는 희귀병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삼성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앓고 있는 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승인해야 한다며 전국을 누비며 활동해왔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산재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씨를 비롯해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3명과 투병중인 노동자 3명은 지난 1월 1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소송’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박지연씨 곁에 있는 삼성

면회가 있기 전엔 오후 1시경부터 먼지 한 톨 날아다니지 않을 것 같은 병원 중환자실 앞에 싸늘한 긴장감이 돌았다. 박씨는 중환자실에 누워 한치 앞도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고, 삼성측 직원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얻은 병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말하지 않는다.

  삼성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 책임지라며 박지연씨 병원에서 밤낮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맘 놓고 슬퍼할 겨를도 없을 만큼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반올림 소속 활동가들은 돌아가면서 병원에서 잠을 자며 박씨와 그 가족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던 삼성측 직원들도 어제부터는 24시간 병원에 있단다. 어머니 황씨는 2명의 직원들이 4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박씨의 곁에 있는 것일까.

“박지연씨의 백혈병이 재발되고 나서 병원비는 삼성에서 결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신 조건이 있었데요. 인터넷에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올림에 연락하지 말아라, 산재 처리 되면 다시 비용을 토해내야 한다 등 협박을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정말 그러냐’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했어요. 지연씨는 병가신청건으로 회사에서 시골 강경까지 찾아왔었다고 했어요. 산재가 불승인 되고 우리가 지난 1월 11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삼성측은 법무법인 ‘율촌’ 대리인으로 피고보조참가인을 신청했어요. 삼성측은 백혈병을 개인 질병으로 몰아가는 데 산재로 승인되면 보험요율에 불이익을 받으니까. 보험료가 비싸진다는 이유, 삼성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이 소송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면을 보면 회사는 어머니를 시골 강경까지 찾아가 회사차를 대고 병원으로 모셔온데요. 어머니가 울면 휴지를 건네고, 이불 사줬데요. 어머니와 밀착해 있어요. 그들도 고용된 사람들이고, 인간적 도의로는 마땅하나 조건을 달고 병원비로 힘들게 하고…. 치료에만 전념하지 못하게 모든 것이 신경쓰이죠. 처음부터 그렇게 좀 관심가져 주지. 이중적이예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이같이 말하며 한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삼성’만 생각하면 눈물을 쏟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3월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병원에 와서 삼성측을 만나면 “여기 왜 와 있는지 묻고 싶다. 개인적 질병이라고 발뺌 하더니 지금은 왜 와 있는지, 화학약품 안 밝히는 이유가 뭔지 말이다. 묻고 싶은 게 한 두 개가 아니다.”고 했다. 기흥공장에서 10년 이상 일하고, 같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31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역시 “그들이 애도하기 위해 병원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 보고하고, 삼성 백혈병 문제를 사회와 차단시키기 위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애기 우리 애기

어머니 황씨는 인터뷰를 부담스러워 했다. 회사측이 치료비를 대고 있는데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을만큼, 황씨는 너무 가난했다. 박씨도 빨리 사회에 나가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 정말 가난은 가난을 낳는 걸까.

“병원비? 상상을 초월해. 처음에는 계산을 했는데…. 억대 넘은지는 벌써지, 벌써야. 지연이랑 나랑 벌어도 여유 없이 살았는데. 지금 못 벌은 지가 벌써 몇 년이예요. 그리고 빚이 있어. 우리 애기가 시골에서는 도저히 치료를 할 수가 없어서. 우리 집이 강경 아주 시골이예요. 차가 하루에 두 번 밖에 안 다녀. 빚을 내 전세로 얻은 집은 강경서도 교통이 안 좋지만 그래도 시내권이예요. 우리 집은 재래식 부엌에다 재래식 화장실인데요. 근데 백혈병 치료는 아주 깨끗한 곳에서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돈이 없어서 깨끗하게 집을 사서 꾸밀 수는 없고. 전세를 얻어서 살고 있어요. 애기 아빠 혼자 놔두고. 우리 애기 아빠는 술을 좋아했지만 지연이로 인해서 폐인이 되가지고 누구하고도 대화가 안 돼요. 저도 지금은 신경과 약과 혈압약을 계속 먹어야 해요. 학교 급식 다니는 데 그것마저 놓칠까봐. 거기다 나 자르지 말고 사람 대체해달라고, 3일 갔다 온다고 하고 왔어요.”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황씨는 기적을 믿고 있었다. 기적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딸아이가 숨쉬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랑, 그러니까 우리 애기 외할머니랑 얘기 중에 그랬어요. 오전에 면회하고 너무 슬퍼서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우리 애기는 어린 것이 돈 때문에 왔다가 돈 때문에 가는 구나 하더라고요. 그니까 우리 애기가 이 세상에 살려고 온 게 아니라 너를 도와주려고 왔다가 갈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래요. 참…. 우리 애기 얼굴이 많이 부었어요. 팔이 내 두배예요. 참 근데 손은 이쁘더라…. 뼈만 앙상했는데 부어서. 통통해서 이쁘더라. 우리 얘기가 살아있을 때 빨리 (산재)판정났어야 하는데. 우리 애기가 산다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서 병을 얻었는지 밝히지도 못하고…. 나도 지연이 보내고 나면 내 맘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또 하나의 가족’ 아닌 ‘또 버린 가족’

삼성반도체는 지난해 매출액으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5월 말까지 이미 3조원이 훨씬 넘는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격으로 선주문을 받아놓고 있는 데다 반도체 경기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반기 중 영업이익 4조원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3년간 반도체 사업부가 올린 영업이익을 모두 합친 수준이다. 또한 반도체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경우에 대비해 생산량을 늘리거나 설비 증설 검토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백혈병’에 관한 언급은 없다.

반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삼성 유럽본사 건물에 올라가 삼성이 약속을 파기했다고 글자를 붙이며 시위했다. 암 직업병 유발 물질을 작업장에서 폐기하겠다고 2004년 약속했지만 삼성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 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TNC)는 한국정부가 백혈병 노동자들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묻고 공정하게 보상할 것과 반노동자 정책을 항의하며 한국정부가 삼성에 책임을 물을 것을 담은 항의서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국에서는 일주일간 반도체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이 열렸고,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청원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모두 3월 한달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 가운데 박지연 씨가 있다. 과연 백혈병은 개인의 질병일까? 삼성이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을 넘어 그 이익을 남겨준 노동자들의 죽음에 책임있게 대응할 때만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삼성왕국’의 왕좌의 권위를 인정받을 게다. 그래야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 ‘또 버린 가족’으로 들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