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상반기 타임오프 투쟁 끝

단위사업장 각개격파 투쟁으로...8월 기아차 1점돌파도 안개 속

21일 오후 5시께 종로 보신각 앞 민주노총 결의대회 무대에 선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오늘 투쟁을 시작으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단식투쟁을 전개하는 김영훈 위원장과 함께 8월 투쟁으로 돌파해 내자”고 호소했다.

보신각 앞은 방석복을 입은 경찰의 방패로 둘러싸였고 천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뜨거운 열기를 쫓아내기 위해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 천여명 중 무대 왼편에는 지난 6월말까지 강남에 위치한 최저임금 위원회의 뜨거운 보도블럭 위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농성을 벌였던 노란조끼의 여성연맹 조합원 150여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머지 850여명중 500여명이 금속노조 조합원이었다. 타임오프와 전방위적인 노동탄압으로 인한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김영훈 위원장의 단식 10일째 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다. 무대 단상엔 비장미가 감도는 음악과 민주노총 대형 깃발이 휘날렸지만 결의대회는 민주노총의 상반기 투쟁의 끝을 알린 꼴이 됐다.



나순자 위원장은 “민주노총 전체의 힘으로 어려운 사업장을 함께 돌파해 나가자. 하반기 노조법 재개정 투쟁으로 몰아쳐 가자”고 결의발언을 던졌다. 이어 사회자는 “오늘 투쟁하는 동지들을 확인했습니다. 동지여러분 기운 나십니까? 힘찬 함성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함성 시작~”이라고 이날 투쟁이 끝났음을 알렸다. 30도를 넘는 더위 속에 지친 1천여명의 노동자들의 힘찬 함성은 몇몇이 조금 내지르는 입속에서 맴돌다 사그라 들었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 곳곳에선 이미 분주하게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담고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투쟁중인 동지들만’ 대부분 참석했다. 투쟁 사안이 없는 단위노조 조합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나마 여성연맹 조합원들 정도만 투쟁 사업장 비율로 따지면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셈이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이번 주엔 단위사업장 교육 등으로 너무 바빠 조합원들을 잘 챙기지 못했는데도 의외로 조합원들이 많이 참가했다. 여성연맹은 최저임금에 이어 또 투쟁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여성연맹은 두 개 사업장이 타임오프 한도로 투쟁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여성연맹 A사업장은 타임오프 한도상 2명의 전임자를 보장 받을 수 있지만 회사는 1.4명을 얘기하고 나섰다. 지난 6월 24일 두 명으로 합의했지만 사쪽은 합의를 뒤집었다. 여성연맹의 B사업장은 0.5명만 인정하겠다고 나섰다. 0.5명도 사용자에게 업무보고를 해야 한다고 나서 쟁의조정 신청서를 내놨다.

민주노총은 이날 5천여명이 참가하는 총력투쟁을 계획했지만 기아차가 8월로 투쟁을 연기하면서 금속노조도 21일 총파업을 지부별 파업으로 전환했고 민주노총 투쟁은 소규모 결의대회가 됐다. 금속노조는 구미에서 ‘KEC지회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영남권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로 결집했다.


이날 집회를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상반기 개악노조법 재개정 쟁취 투쟁은 빠르게 휴가 일정으로 가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 새벽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강행처리한 이후 3개월여가 지나는 동안 민주노총 전체가 움직이는 전면적인 투쟁을 벌이지는 못했다. 그나마 지난 달 23일 '타임오프 철회, 최저임금 인상' 결의대회에서 도심 몸싸움을 벌인 게 전부였다. 6월 말과 7월엔 금속노조가 4시간 부분파업 등으로 단위사업장에서 타임오프의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현대기아차 그룹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사업장은 노사 간 타임오프 한도 요구 차이가 커 휴가 전 타결은 물 건너 간 상황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전체가 나서는 총파업은 어려운 상황이라 8월엔 기아차를 중심으로 집중 투쟁을 전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핵심쟁점이었던 타임오프 한도 문제는 단위사업장이 각개돌파하는 형식으로 투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휴가 기간이 끝난 8월에 얼마나 노조법 재개정 투쟁을 전면적인 쟁점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6월말 7월 초엔 타임오프 한도로 인한 노사갈등 문제가 정치적 쟁점화 되는 상황이었지만, 7.28 보궐선거에선 타임오프 한도 문제가 쟁점이 되지 못할 전망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은 노조법 재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노동부를 질타 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개정 의사가 전혀 없다. 이 상황에서 단위 사업장에서 어느 한 곳이라도 강한 투쟁을 벌여야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현대자동차 임금협상이 휴가 전이든 휴가가 끝난 후든 무파업으로 타결에 이를 가능성이 커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임금단체협상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기류로 8월에 기아차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타임오프 한도 문제는 더 이상 전체적인 쟁점이 되지 못하게 된다. 동시에 민주노총의 노조법 재개정 요구도 언론 등에서 쟁점화 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제 총파업을 할 동력이 만만치 않다고 토로한 바 있다. 김영훈 위원장은 “조합원들은 총파업을 하면 노조법이 개정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노조법 전면 재개정은 의회권력을 바꿔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안다”며 “지금은 전열을 가다듬으며 퇴각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기아차에 민주노총이 집중해 1점돌파로 승부를 걸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현대와 기아차의 단협시기를 분리한 현대기아 그룹의 전략이 민주노총보다 한발 앞선 상황이라 민주노총이 1점돌파의 정세도 만들지 못하고 무력한 하반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