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 도시락 투쟁기

서울대병원은 청소노동자를 인정하고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야

“휴~ 정신이 하나도 없네”

서울대병원 본관 지하 1층 직원전용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청소노동자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저는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에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 30분이면 병원에 도착해요. 병원이 문을 여는 오전 9시 전에 내 구역 청소를 끝내놔야 하거든요. 밤새 쌓여 있던 쓰레기들을 치우고 바닥을 닦고 하다보면 어느새 8시가 되요. “휴...” 두 시간 만에 큰 숨을 돌려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좋을 텐데 장소가 없어요. 제가 잠깐 잠깐 쉬는 곳은 모아놓은 쓰레기며 대걸레 등이 가득한 청소물품보관실이에요. 쓰레기를 치우고 자리를 만들면 겨우 앉을 자리가 나오죠. 다른 곳이 없으니 이곳에 잠깐 앉아서 숨을 돌려요. 아침 8시부터 9시까지가 공식적인 휴식시간이지만 언제 호출이 올지도 모르고 해서 밖에 나가 공기를 마시는 것은 꿈도 못 꿔요.

잠깐 쉬고 있는데 노동조합 간부가 찾아왔어요. 저는 민들레분회 조합원이거든요. 분회장이 오늘 점심은 직원전용식당에 내려와서 먹으래요. 얼마 전 우리가 집회를 했었거든요. 밥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소리쳤었어요. 그랬더니 서울대병원이 “아줌마들이 귀찮아서 그렇지 직원식당이 있다”고 했데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귀찮아서 그렇다고요? 언제 호출이 올지 몰라서 숨도 제대로 못 돌리는데 밥을 어떻게 지하까지 내려가서 먹냐구요.


화가 나서 옆 병동 조합원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어요. “우와 사람 정말 많네” 들어가는 입구부터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줄을 쫙 서있어요. 다들 식권을 들고 있네요. 우리는 도시락을 들고 내려왔어요. 아침에 반을 먹고 점심에 먹으려고 남겨둔 도시락이에요. 한 달에 백 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데 매일 3천 원짜리 식권을 사서 두 끼를 먹을 수는 없어요.

사람들을 뚫고 식당으로 들어서요. “안녕~ 이리와! 여기 앉아!” 이리저리 우리 조합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요. “오늘 몇 명이나 내려온 거야” 옆에 앉아있던 분회장에게 물어봤어요. “60명이 넘게 내려왔네” 서로 밝은 웃음을 나눴어요. 다들 도시락을 펴 놨어요. 누구는 직접 담근 된장에 고추를 가져오고, 누구는 맛있는 계란말이를 해왔네요. 오늘은 다들 특식을 준비해왔어요.

노동조합 간부가 와서 물어요. “여기 와서 밥 먹으니까 어때요?” “어휴 정신이 하나도 없네. 다들 식권으로 밥 사먹는데 눈치도 보이고.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또 얼른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져요. “내일도 꼭 내려와. 자꾸 모여야지 우리 공간도 생기는 거야” “알겠어요”

“도시락 싸 오는 거 힘든데 식권 사가지고 밥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 참 시원하고 좋네. 우리도 이런 곳에서 눈치 안 보고 휴식시간에 쉴 수 있었으면...”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한숨 섞인 말을 쏟아놔요. 옆 병동 조합원도 고개를 끄덕끄덕 거려요. 내일도 같이 직원식당에 내려가기로 약속을 해요.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22일부터 직원전용식당에서 도시락을 먹는 싸움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22일부터 직원전용식당에서 도시락을 먹는 싸움을 하고 있다.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와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이 지난 21일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를 언론에 알리자 서울대병원이 반박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결과 청소노동자들이 밥 먹을 곳이 없어 청소물품보관실이나 비소독물실 등에서 밥을 먹는 등 최악의 노동환경이 드러났다. 비난 여론이 일자 서울대병원은 “청소아줌마들이 귀찮아서 그렇지 직원전용식당에서 밥 먹으면 된다”고 반박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환자보호자에게 알리는 사진전도 서울대병원은 폭력적으로 막았다.

직원전용식당은 수 년 간 노동조합이 병원과 싸운 끝에 얻어낸 공간이다. 그러나 겨우 98평에 불과하다. 서울대병원 직원만 3천 5백여 명이 사용해야 한다. 이곳에 청소노동자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라는 것이다. 병원은 점점 커지지만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단 한 평도 늘지 않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확보 투쟁은 서울대병원 노동자 전체의 휴게공간을 확장하는 싸움이다.

한편 서울대병원 측은 부랴부랴 실태조사를 하겠다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는 눈으로 보이는 몇 가지를 해주고 근본적인 문제는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공식적이고 안정적인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과 휴게시간 보장이다. 청소물품보관실이나 비공식적인 작은 공간에 선풍기 하나 달아준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민들레분회’는 원청 인 서울대병원에 △식사, 탈의 등 휴게공간 마련 △실질생활임금 보장 △휴일, 휴가 보장 △노동안전 보장 △근무복 세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원청인 서울대병원이 보장해야 할 것들이다. 청소노동자들도 서울대병원을 함께 만들어가는 노동자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가로막고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은폐하지 말라. 서울대병원이 국가중앙병원이고, 대한민국 대표 공공병원이라면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