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 수급자 증언대회, “들을 귀 있는 자, 들어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위한 ‘수급자 증언대회’ 열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수급자 증언대회’가 지난 21일 이른 11시,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어떠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행위가 어떻게 ‘증언’이 되는가? 엄기호 씨는 자신의 저서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서 “권력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권력에 맞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에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며 “증언은 사람을 옹호하고 사회를 폭로”한다고 기술한다. 따라서 “증언은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적 행위가 된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대학생이었던 양유진 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였다. 양 씨가 ‘수급권자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휴학도, 외국여행도, 대학원 진학도 할 수 없었다. 그 선택을 하나씩 할 때마다 양 씨의 수급비는 삭감되거나 박탈의 위기에 처했다. 이십 대 양 씨의 모든 삶의 선택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라는 제도가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그 삶을 번번이 무너뜨렸다.

휴학도, 외국여행도, 대학원 진학도 할 수 없는 자들

양 씨는 대학 시절, 혼자 배낭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대학 3학년 때 휴학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휴학하면 실제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노동능력이 인정되어 수급비가 삭감된다는 것이다. 양 씨의 아버지는 장애인이었다. 양 씨는 “어떻게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해 소득을 잡느냐”라면서 “아무리 일을 해도 나는 아버지를 먹여 살릴 만큼의 돈을 벌 수가 없다”라고 따져 물었지만, 결국 수급비는 삭감됐다.

양 씨는 더는 불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소득신고가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만 하루 3개씩 했다. 그러나 최저생활비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대학 등록금과 학자금대출, 그리고 한 달 생활비를 대는 것은 힘겨웠다. 양 씨는 수급권자라는 ‘제도권’ 안에 머물기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양유진 씨가 영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양 씨는 틈틈이 돈을 모았고 마침내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단 3개월 만이라도 스무 살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간 그 순간, 또 한 번 전화가 왔다.

“일단 외국에 나갔기 때문에 추정소득이 잡혀서 수급비가 삭감될 수 있다는 거예요. 아, 돈 없는 사람은 여행도 못 가는구나... 제가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나간 건데, 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고 돈도 마음대로 못 버는구나 싶었죠.”

대학 졸업 후, 양 씨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수급권 문제와 부딪힌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근로능력이 있다고 파악된대요. 결국 수급자에서 탈락했어요. 그때 가족들이 다 지쳤고, 그렇게까지 수급권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제가 대학원 진학하면서 아버지가 일을 시작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그만두셨다가 몸이 조금 좋아져서 다시 일 나가시고. 그런데 다시 그만두신대요. 몸이 못 버티니깐. 아버지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저도 구체적으로 잘 몰라요. 전 한 번도 제가 아버지의 부양의무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제도 때문에 부양의무자임을 인식하고 강요받았죠. 지금 제가 사는 집도 제집이 아니라서 내년이면 집도 없어지는데 어디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 소득을 어디서 충당할까, 이런 딜레마에 빠지는 거죠.”

양 씨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택함으로써 결국에는 ‘수급 권리’를 ‘박탈’당했다”라며 “다시 수급자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자 증언대회’ 열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수급자 증언대회’가 지난 21일 이른 11시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증언대회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주관으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잘못된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미래를 박탈당한 양 씨를 비롯해 총 다섯 명의 수급권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증언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시설이 어려워진 중증장애인, 잘못된 소득조사와 너무 낮은 최저생계비로 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는 이들,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탈락해 노숙생활을 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까지. 부양의무자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얼마나 빈곤의 삶을 다시 한 번 옥죄는지에 대해 이들은 자신의 삶 자체로 이것을 증명했다.

부모가 자식 기다리듯 수급 날을 기다립니다

  이대진 씨
이대진(54세) 씨는 중구 중림동에 있는 쪽방에 살고 있다. 이 씨는 이날 자신의 집에서 국회까지 “버스 타고 오면 더 편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왔다”라며 “왜냐하면 무료승차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현재 이 씨는 한 달에 45만 원의 수급비를 받으며 그 중 25만 원을 쪽방비로 낸다.

“쪽방비, 너무 비쌉니다. 국거리도 너무 비쌉니다. 국이 먹고 싶으면 새벽 일찍 야채시장가서 남들이 이야기하는 쓰레기를 주워 와서 맛있는 ‘쓰레기국’으로 전환해 영양을 섭취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듯, 전전긍긍하며 20일 수급 날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반복의 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씨는 이날 참여자들에게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시가로 얼마 될 것 같나”라고 물으며 “수급권자에게 새 옷은 꿈도 꿀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 씨는 “천 원, 이천 원짜리 옷을 조금이라도 더 품격 있게 입기 위해 지하철 타고 동묘로 쇼핑가는”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옷에 각자의 영혼이 담겨있다면, (남들이 버린 헌 옷을 입는) 제겐 오만 사람의 영혼이 있습니다. 새 옷은 꿈도 못 꿉니다. 사치입니다. 한 때는 꿈도 많았고 의기양양했던 이대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에게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씨는 “기초생활보장법은 인간에게 최저한의 삶도 보장하지 않는다”라면서 “물가상승률에 따라 생계비가 책정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더욱더 빈곤으로 떨어지는 한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날 증언대회에 앞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김선미 책임간사는 최저생계비가 계측과정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김선미 책임간사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좌장을 맡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대표.

김 간사는 최저생계비를 측정하는 표준가구 대상에 대한 오류를 지적했다. 현재 표준가구로 선정된 4인 가구는 ‘중소도시에 전세로 거주하며 부모 40대, 자녀는 9세, 11세’로 설정되어 있다.

김 간사는 “거주형식이 전세로 설정되어 있기에 주거비가 낮게 측정되며, 사교육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중·고등학생이 아니기에 교육비 또한 제외된다”라면서 “4인 가구 기준이라 1인, 2인 가구의 욕구와는 맞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계측하고 있다. 계측하지 않는 해에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책정한다. 그런데 최저생계비로 책정된 금액 자체가 수급권자에게 지급되지는 않는다.

수급권자 실제 통장에 들어오는 것은 ‘최저생계비 대비 현금급여액’이다. 현금급여액이란 최저생계비에서 현물로 지급되는 의료비·교육비 및 타법령에 의한 지원액(아래 타법지원액)과 가구 소득인정액을 제외한 금액이다.

4인 가구에 맞춰 교육비, 급식비 등이 타법지원액에 이미 포함돼 있어서 교육비 등에 해당하지 않는 1인, 2인 가구에도 이 금액이 타법지원액이라는 명목으로 공제된 뒤 통장에 입금된다.

지역별, 가구별 욕구에 따른 개별급여가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55만 원’이지만, 최저생계비에서 타법지원액을 뺀 뒤 1인 가구 수급권자가 받을 수 있는 현금급여액은 현재 45만 원가량이다.

또한 수급권자 손에 쥐어지는 것은 현금급여이기에 최저생계비 자체의 인상률보다는 최저생계비 대비 현금급여율 상승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가 매년 최저생계비 인상을 이야기하지만, 수급권자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진 이유는 바로 현금급여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김선미 책임간사
김 간사는 “현금급여율이 2007년도에는 85.5%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도에는 83.7%, 2011년에는 81.9%까지 떨어졌다”라면서 “정부는 당시 공공요금이 많이 인상되었으니 그에 대한 지원이 더 높아졌다며 현금급여율을 낮췄다. 따라서 수급권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김 간사는 “제도 시행 이후 10년 동안 수급자 비율이 3% 안팎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 3% 이하로 떨어졌다”라면서 “이는 상대적 빈곤, 소득격차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예산에 맞춰 지속적으로 수급권자를 걸러내고 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복지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김 간사는 이러한 문제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부양의무제를 꼽았다.

정부는 올해 부양의무제 때문에 수급권자에서 탈락했던 이들을 감싸 안기 위해 부양자의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 130%에서 185%로 확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김 간사는 이러한 정부 정책이 “‘부양능력 없음’으로 판정되면 수급자가 되는데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되면 부양받을 수 있는 만큼의 비용을 깎은 후 현금급여를 준다”라면서 “정부는 바로 그 구간만 늘린 것”이라고 밝혔다.

김 간사는 “그러나 정부는 실제 부양하고 있는지는 조사하지 않으며, 탈락한 자들에 대한 적극적 보호조치도 없다”라면서 “수급자 본인이 직접 부양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나를 고쳐야 하나요? 사회를 고쳐야 하나요?”

  김현수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시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9살부터 20년 넘게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한 김현수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시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씨가 생활하던 시설 운영자가 시설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뒤, 김 씨와 함께 생활하던 많은 동료가 시설에서 나가 자립생활을 하고 있으나 김 씨를 비롯한 몇 명은 아직 시설을 나오지 못했다.

김 씨는 “수급권 문제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시설에서는 김 씨가 시설수급자로 수급비를 받을 수 있으나, 시설 밖으로 나오면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김 씨는 혼자 힘으로 탈시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파트 계약금을 힘들게 마련한 뒤 보증금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수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했다.

결국 김 씨는 동생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동생을 통해 김 씨의 자립생활 소식을 알게 된 부모의 만류로 자립생활은 좌절됐다. 김 씨는 결국 아파트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이 사건 이후로 현재 부모와의 대화가 단절됐고 외출·외박도 하기 싫은 상태”라면서 “중증장애인이 탈시설해 살기 위해서는 시설생활수급자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연계될 수 있도록 기초법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세상 사람 절반이 장애인이라면, 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혹은 모두가 장애인이고 몇몇만 비장애인이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이 창피해하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는 장애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사회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배우지도, 일하지도, 연애하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고 시설에 사는 거예요. 나를 고쳐야 하나요? 사회를 고쳐야 하나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오늘날 가난은 ‘빈곤’이 되었으며, 빈곤의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은 관계의 소외와 상대적 박탈감, 고립감, 생존에 대한 불안뿐이다. 불안만이 삶의 언저리에서 소름 끼치게 입 벌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면서 완전 고용의 환상은 깨어진 지 오래며, 실업률의 가파른 증가, 그로 말미암은 사회적 부의 양극화는 필연적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이 빈곤의 공백을 누가 채울 것인가? 이날 증언대회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 책임의 몫이 “국가에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수급자 증언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민주통합당이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강한 복지’를 말하고 있으며,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도 ‘맞춤 복지’를 이야기한다”라며 “이렇듯 ‘복지’라는 단어가 정치에 넘쳐나고,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떠벌리고, 앞으로 대한민국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복지를 강조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자살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만약 이들이 듣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 권리가 시혜와 동정의 찌꺼기로 쓰레기통에 나뒹굴지는 않을 것”이라며 “복지의 기본은 국가의 책임이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부양의무제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 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을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대표 역시 “현재 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비를 받기 위해 부모도 죽이고 자식도 죽여야 한다”라면서 “현재의 법은 가난한 사람을 죽이는 제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증언대회를 주관한 공동행동은 현재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35일째(9월 24일)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휴=비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