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을 찾아서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5) 사용자 책임

[편집자 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4조. 진짜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얻으려는 자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들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삼성전자의 제품을 수리합니다. 이로 인해서 이윤을 얻는 이들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용자로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학청소노동자들을 일시키고 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대학총장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에 나오기를 거부합니다. 사장으로서의 권리는 다 누리되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 고용형태가 바로 ‘간접고용’입니다.

바지사장들 끼워넣어서 사용자책임을 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바지사장들은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요구하면 도급금액이 작아서 어쩔 수 없다면서 원청회사 핑계를 대고, 원청회사들은 자신이 사용자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놓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릅니다. 이런 간접고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 파견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는 이 파견을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치니까 이제는 ‘사내하도급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모든 간접고용을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해야 합니다.

현대·기아차 그룹에서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경차’를 외주화할 때, 그들도 이런 실험이 과연 성공할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그것을 합의해준 현대·기아차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노하우와 기술, 그리고 책임감이 없는 비정규직들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비정규직‘만’으로 만들어지는 기아자동차 ‘모닝’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카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다. 수년째 생산목표를 초과달성하고 있고, 최단시간에 완성된 차량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의장공장의 편성률(공정/시간)은 98%를 상회하고 있다. 한사람이 하는 일도 많을 뿐더러, 실제 인건비 역시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된다. 한마디로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공장이다. 정말로 꿈의 공장이다.

자본에게는 ‘꿈의 공장’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절망의 공장’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이 배후에서, 동희오토를 앞세워, 17개 업체장들을 통해서, 1,400여 비정규직 노동자로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고 있다. 업체의 1년 계약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해당 부서의 노무담당자 정도의 역할을 하는 업체장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장시간·저임금 노동, 그리고 살인적 노동강도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들로만 공장을 운영하면 불법파견 논란을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기에, 합법을 가장한 이런 간접고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미 ‘동희오토 모델’은 제조업공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미 현대모비스 울산·이화·아산·서산공장은 비정규직만으로 자동차의 핵심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경기도 포승의 현대위아 엔진공장 역시 마찬가지이며, 서산에 대단지 공장 신설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곳도 비정규직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동희오토 옆에 있는 현대다이모스 역시 2공장을 신설하며, 비정규직만 채용할 것이다.

완성차와 핵심부품사가 이런 형편이니 2·3차 부품사들은 더욱 거침이 없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거나 외주화를 한 이후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면서 그 공정에는 전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기아차등의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도적으로 투쟁을 했지만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못하는 부품사 노동자들은 어느 순간 사내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심한 경우 ‘맨파워’등의 파견회사에 고용된 비정규직이 되어 날품팔이처럼 팔려나가고 있다.

처음 동희오토가 만들어질 때, 누구나 이런 기형적인 고용형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못 배우고 능력이 없으니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당연한 것이고, 정상적인 고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완성차를 만드는 동희오토 비정규직은 납품업체 비정규직보다, 혹은 파견으로 팔려다니는 날품팔이보다는 훨씬 좋다고 자위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광범위하게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비정규직 안에도 서열과 차별이 확연한 지금! 돌이켜보면 겨우 십여 년만의 일이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집단적으로 요구하고 스스로 조직되는 것은 이제 꿈도 꾸기 어렵다. 한두 명이 권리를 말하면 계약해지가 자행되고, 조금이라도 뭉치면 업체장만 바꾸면서 집단해고를 하는 현실! 원청과 하청업체의 이중 감시 속에서, 권리를 말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이의 허세로 취급될 뿐이다.

분명, 지금은 압도적 자본의 힘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압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노동력을 통해서 이윤을 가져가는 이가 원청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묻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지난 투쟁을 통해서 확인했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는 현대·기아차그룹이라는 것을! 하청업체와 동희오토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음을, 결국 ‘진짜사장’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봉쇄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다시금 반격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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