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되는 존재는 없다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②] 감염병위기에도 검사와 치료에서 예외가 되는 장애인, 홈리스, 이주노동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문제는 코로나가 확산 추세이든 감소추세이든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국가의 조치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는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지만 국가는 관심이 없다. 경제회복의 논리로만 일상 회복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존엄할 수 없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위 문제의식으로 당사자들과 함께 낭독극<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을 만들었다. 낭독극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기를 되새기고자 코로나19와 인권의 현실을 연재한다. (편집자)

※ 낭독극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은 9월 3일 오후 2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후원행사에서 상연된다.


  낭독극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를 연습하는 장면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낭독극 두 번째 모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장애인자립센터 판의 안소율 활동가도 왔다. 회의실이 길쭉한 형태라 휠체어가 들고나기가 조금 불편했으나 회의는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애인접근권을 신경 쓸 때 턱의 유무만이 아니라 휠체어를 돌릴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함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자연스레 코로나가 재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감염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소율 활동가는 장애인들은 코로나 검사부터 어렵다고 말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검사를 하려고 병원에 가도 휠체어가 들어가는 병원이 있는지, 선별검사소에 턱이 있는지 등을 미리 알려주지 않으니 갈 수가 없어요. 어떤 병원은 2층에 있어요.”

많은 장애인이 PCR검사와 치료에 있어 장애인접근권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장애인단체들의 문제 제기로 휠체어이용 장애인이 갈 수 있는 병원이나 검사소를 안내해주기도 했지만 접근성이 확 넓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21년 11월부터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을 기조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에 대한 기본치료방침이 ‘재택치료’로 전환된 후 장애인들은 여전히 고위험군으로 보지 않아 검사도 치료도 알아서 해야 했다. 장애인의 생명과 건강뿐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못하게 하는 방침이었다.

감염되면 병원이 아닌 집에서 활동지원도 없이 홀로 있어야 했다. 장애인들은 재택치료가 치료포기라며 장애인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애인단체들이 있는 일부 지역의 장애인들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활동지원사도 없이 집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다. 사실 2021년 4월 만든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개정판)’에는 이동지원과 생활지원을 지자체가 하게 돼있으나 지자체마다 달라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촘촘한 장애인 지원체계는 3년이 지났지만 구축되지 않았다.

“장애인자립센터에서 활동하던 시각장애인 소장님도 PCR 검사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대요. 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하나도 없어요.”

“맞아요. 제가 알고 있는 노들에서 활동하는 장애인활동가도 혼자 사는데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열흘을 그냥 견뎠다고 해요. 보건소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며 전화했는데 병원 입원도 안 되고 긴급돌봄도 받지 못해서 배달음식으로 때웠다고 해요. 이게 무슨 재택치료냐고요.”

소율 활동가와 나는 주변에서 코로나에 걸려 사망한 장애인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20년에는 빵 하나로 열흘을 화장실도 기어가며 보낸 이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옆에 있던 아랫마을홈리스야학의 로즈마리 학생회장이 첫 모임 때 말한 홈리스들의 코로나 경험 이야기와 비슷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시설이나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려니까 PCR검사를 받아야 하잖아요. 받았더니 딱 코로나(양성)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이제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생활치료센터는 싫고 병원에 보내달라고 했는데 병원에 못 갔어. 보건소인지 왔는데 병원에 보내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리에) 그냥 거기 계속 있으라고. 그러다가 경찰이 두 명이 이만큼 떨어져서 감시했어요.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지금 양성이니까 다 오지 마세요’ 그런 말을 했어요.”

공공의료의 공백과 사회적 소수자의 생명과 건강

코로나에 걸린 노숙인을 병상이 없다고 거리에 방치하고 경찰을 불러 감시하는 모습에서 한국 정부에 노숙인은 치료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차단해야 할 감염원일 뿐이냐고 묻게 된다. 로즈마리 학생회장은 “서울역 인구 많은 거리에 그냥 두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에도 노숙인은 노숙인 지정병원이 있어 병원에 가기 어려웠는데 코로나로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지병이 있는 노숙인들이 참 많거든요. 그런데 코로나하고 겹칠 수도 있고 그래요. 일반 사람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병원에 가잖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 노숙인들은 자기가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하고 노숙인 지정병원에만 가야 해요. 지정병원이라도 소견서를 받아야 하고요. 적십자 병원이나 보라매 병원 동부시립병원 서울의료원 그렇게 몇 군데가 있어요. 암에 걸린 아픈 사람이 지방에서 못 고치고 서울로 가라서고 해서 왔나 봐요. 서울에서는 우리 병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가라고 해서 또 지방으로 갔어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다리 아픈 노숙인이 동부시립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요. 코로나 전담병원이라고 나가라고 했대요. 이 사람은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아직 회복도 덜 돼서 걷기도 어려운데, 약을 한 달 치인가 뭔가 주고 그냥 내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공공병원의 부족은 노숙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료공백을 더 심각하게 했다. 이주노동자들도 백신 접종이나 코로나 검사도 쉽지 않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인들이 먼저고, 그다음에 비자 있는 합법 노동자들,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라며, “기다려라, 기다려라”가 전부였다고 했다. 휴게시간이나 휴가도 보장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는 정부의 통제식 PCR 검사 명령조차 지키기 어렵게 했다.
“코로나 검사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어요. 이주노동자들은 집단으로 집에 있으니 한꺼번에 모이잖아요. 검사를 받으려면 나가게 해줘야 하잖아요. 일요일밖에 안 주는데 제시간에 검사받고 검사지를 받기가 어렵잖아요. 불이익받을까 봐 불안에 떨었어요. 이주노동자에게 검사받으라고 행정명령만 내릴 게 아니라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인력도 보충해줘야 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 가면 제시간에 검사받고 결과 받기 어렵잖아요. 너무 무책임합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코로나에 걸리면 이주노동자들은 생존도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고 했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코로나에 걸리면 격리할 데가 없어요. 검사받고 양성 반응인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리고 양성이 나오면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할 수 있게) 데리러 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요.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감염됐어도 오지 않아요. 치료를 빨리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주노동자들은 집단 감염됐어요. 자가치료 받으라고 했는데 안에는 음식 같은 것도 없었어요. 공장이 아닌 곳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여관에 있는 경우도 많았는데 먹을 게 없어서 고생했어요. 여관 주인도 아무것도 가져주지도 않았고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어요. 한국 정부가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장애인이나 홈리스, 이주노동자들은 죽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감염병 위기에서 누구든 건강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받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존엄한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은 2등 시민을 넘어서 생명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뒤에 남겨졌다.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낭독극을 준비하면서 우다야 라이 위원장에게 바라는 사회에 대해 써달라고 하니 이렇게 썼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사회는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국적, 피부색, 종교,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하는 차별들은 멈춰야 합니다. 감염병 상황에서도 이주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해서 더 불안합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 슬픔, 어려움의 문제 해결을 들어준 것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 정부와 사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주노동자들도 하루빨리 평등한 대우를 받고 살아갈 수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인권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다. 아니 들으려는 사람이 없다. 책임 있는 국가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코로나 상황에서 더 위험에 처하고 불평등을 실감한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평등’에 한 걸음 더 내딛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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